벧엘로 올라가라 (창 35:1-5)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 시간에 “벧엘로 올라가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그것은 하나님 자녀냐? 아니냐? 복의 사람이냐? 아니냐? 평안할 것인가? 아닌가? 천국에 갈 건가? 아니냐? 를 엿볼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가 예배 시간에 한참 설교하고 있는데 교인들 중 몇이 졸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웨슬레 목사님은 한참 쳐다보다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이야! 불!" 교인들은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눈이 둥그레지고, 자던 교인들은 깜짝 놀라 일어나 물었습니다.
"어디에 불이 났습니까?" 교인들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지만 불이 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웨슬레는 "지옥의 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교 도중에 잠을 자는 사람들이나 정신없이 멍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게 될 지옥불 말입니다." 조금은 무리한 말 같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배에 충실하지 않고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또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와 예배는 분리해서 생각하려야 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합니다. 그래서 시50:5에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그렇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무사히 돌아오면 제단을 쌓겠다고 한 약속을 버리고 세겜에서 양치는 재미에 푹 빠져 살다가 지옥 같은 삶이 찾아왔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그들을 복수하겠다고 아들들이 무수한 살인을 저지르고, 그래서 엄청난 보복의 두려움을 당하는 등 견딜 수 없는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때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이 말씀을 듣고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약속한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 없거나 부족한 삶이 그렇게 됩니다. 영육 간에 혼란과 환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온전한 예배를 위해 극복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세겜을 떠나는 일입니다.
1절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여기 “일어나”란 세겜에서 일어나 그러니까 머물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야곱이 머물던 세겜은 바로 세상이요,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거기서 떠나서 하나님 앞에 마음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재미있어도, 아무리 연속극이 재미있고, 축구 야구 경기가 좋아도 떠나야 합니다. 하는 일이 바쁘고 힘들어도 하나님 섬길 시간이 계획되어 있지 않다면 실패입니다. 예배만 제대로 되면 은혜 받지 않을 수 없고 복 받지 못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부인이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 상태로 생명이 위독할 때 목사가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시켜 목숨을 건졌습니다. 부인은 은혜를 잊을 수 없다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달 교회에 나오더니 예배에 불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왜 빠지십니까?” 그러자 “너무 바빠서요.”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더 재미있습니다. “목사님, 조금 한가해 지거든 열심히 믿어 드릴께요.”
이처럼 믿어 주시기 위해서 나온 분이 계시다면 그 일 그만하셔도 좋으니 이제는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성을 향해 가려면 장차 망할 장망성을 떠나야 합니다. 성도들의 직업 선택도 하나님 섬기기에 지장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이 잘되야 다른 모든 것도 복이 됩니다.
2. 이방 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우상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야곱의 가족들은 아직 밧단 아람의 이방의 냄새가 나는 삶이었습니다. 드라빔이라는 우상도 있었고 신상이나 주문을 새긴 부적 같은 귀걸이도 있었습니다.
자기 식솔들이 갖고 있는 드라빔과 귀걸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거대한 유산과 바꿀 수 있는 보물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것이었으면 라반이 그것을 잃고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추격해 왔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자는 살지 못한다고 했으나 라헬이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목숨 걸고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수치를 당할 대로 당하고 고통을 당할 대로 당한 후에야 '이게 뭐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하면서 그것을 다 상수리나무 아래다 묻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죄악 붙들면 붙들수록 손해입니다. 그래서 골3:5-6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마치 천둥 번개 치는 날 쇠붙이 금붙이 붙들고 있는 거나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 다 십자가 아래 다 매장하고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래서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도 하나님, 바알도 하나님 둘 다 섬겼습니다. 그랬기에 3년 6개월 동안 우로가 그쳤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이슬도 없습니다. 이처럼 예배를 드려도 하늘의 은혜가 없다면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새벽빛보다 더 정확해서 문제가 있으면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옷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2절 하 반절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그들은 우상을 버릴 뿐 아니라 의복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이방의 유행하는 자유롭고 요란한 세속 패션이 아니라 성도의 거룩한 옷을 입었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더 큰 영광을 돌리려면 우리가 더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2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변화되면 드리는 예배가 더욱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김익두 목사가 처음 예수 믿을 때 부흥회에 참석하려고 재를 넘다가 더워서 웃옷을 벗고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 취한 사람이 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온 거야?" 하면서 다짜고짜 김익두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익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매를 맞았습니다.
다 맞은 후에 그 사람에게 "형님, 다 때렸습니까?" 라고 묻자 "그래 다 때렸다. 어쩔래?" 그러자 김 목사는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 내가 바로 익두요." 그러자 깜짝 놀라 살려달라고 빌더랍니다. 이처럼 이제는 때리면 맞아야 합니다. 거짓말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불편한 것 같지만 죄짓고 사는 것보다는 천 배나 낫습니다.
4. 믿고 전진하는 일입니다.
5절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가장 큰 두려움은 주변 족속들의 보복이었습니다. 아들들이 세겜 족속을 죽였으니 동족들이 가만 두겠습니까?
세겜 사람들은 히위족속입니다. 히위족속은 전 가나안에 퍼져서 큰 세력을 이루며 살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히위족속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러므로 벧엘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셔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 하려고 하면 두려운 것이 많습니다. 아들들의 잘못 때문에 추격자들이 두려웠듯이 율법과 양심이 나를 쫓아옵니다. “너 죄인이잖아? 오늘도 죄 많이 지었다. 그렇지 않다 해도 하나님을 망각하며 살았다.” 하면서 우리 심령을 쫓아와 찌르고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인인 줄 다 아시고 십자가 보혈로 이 모습 이 대로 받으신다는 믿음 가지고 담대한 마음 가지고 나가면 아무도 우리를 추격할 자가 없습니다. 죄도 허물도 부족한 것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예배 직전만 되면 속상할 일이 터집니다. 교회 갈 마음을 망쳐놓습니다. 봉사하려고 해도 봉사하지 못할 상황이 생깁니다. 다 사탄의 역사들입니다.
그러나 다 무시하고 흥하든 망하든 살든 죽든 하나님께 맡기고 전진해야 합니다. 주일 지키다 손해 본다면 손해 보리라. 하며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드리다 손해를 봐도 손해 보리라 하며 전진하세요. 양심 지키다 손해를 본다 해도 전진하세요. 잠시 손해 같아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진해야 합니다. 그 사람만이 예배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처럼 시련과 낭패와 실망 가운데 계십니까? 속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예배로서 하나님과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마음 두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두며, 사탄이 우리의 예배를 아무리 방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귀를 막고 예배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배의 제단 열심히 쌓아 모든 방황과 고통은 끝나고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예배의 성공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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