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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성도 (시 16:1-4)

예림의집 2018. 6. 1. 15:14

존귀한 성도 (시 16:1-4)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이 시간에 “존귀한 성도”라는 제목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지구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현재 지구의 인구가 76억이라고 합니다. 그 중 우리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33%인 23억 정도, 그 중에서 가톨릭과 이단을 빼면 순수한 우리 개신교는 약 7억 명입니다. 세계 인구의 10분의 1이 개신교입니다. 참으로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 7억 명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욱 존귀한 성도는 얼마나 될까요? 성도란 넓게는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이지만 좁게는 죄악에서 벗어난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성도" 역시 히브리말로 ‘카도쉬’ 곧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하나님께서 소돔성에서 찾으려고 했던 그 의인을 가리키는데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죄의 오염에서 구별된 자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소돔 같은 이 땅에서 그런 의인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눅15:7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셨습니다. 믿음 지키기 어려운 죄악 세상에서 의인 노아와 같이 물들지 않고 깨어 사명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존귀한 자는 어떤 성도일까요?


1. 오직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1-2절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이 간절한 구원의 호소 속에서 그가 얼마나 어려운 가운데 처해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고난 가운데 다윗이 믿고 의지할 이는 하나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의 신앙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후1:9에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런 고난 가운데 오직 예수이 신앙이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이 땅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존귀하고 더 나아가 오직 예수로 믿는 사람이 가장 존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비극은 오직 예수라는 신앙고백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말고도 구원의 길은 다양하다는 주장이 바로 종교다원주의신학인데 다원주의가 성립되려면 이방종교의 신이 참신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또 그 종교로서도 충분히 구원을 얻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증명 되어야 합니다.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135:15-18에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했습니다. 더구나 불교는 무신론으로 신을 믿지 않습니다. 가짜들이 무얼 섬긴다 그러지 진짜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냥 정신적인 종교입니다. 이슬람교도 아브라함이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사람들이 섬겼던 토속 우상이었던 월신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교는 그 상징이 초승달입니다.

여기에 대해 신4:19에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 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경고하셨습니다. 신17:3-7에도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의 고백이 확실하지 않는 종교다원주의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진리가 혼탁한 세상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우리의 구주로 믿고 전하는 자처럼 귀한 존재가 있겠습니까? 이 믿음 끝까지 지키시기 바랍니다.


2. 존귀한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4절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세상 우상에게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예배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요4:23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 열납하시는 예배를 날마다 드린다면 그것은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처럼 그런 영광 돌리는 충만한 예배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이런 예배의 성공자라면 내가 변하고 모두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 변할 것입니다.

예배에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리면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고, 신앙교육도 거기서 해결 되고, 하나님의 일군이 생겨나고, 개인의 형통과 교회의 부흥과 국가의 번영이 거기서 일어납니다. 나라와 민족과 세계복음화의 길이 거기서 나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영육 간에 기적을 체험합니다.

1904년 영국의 웨일즈에 일어난 부흥도 예배에 있었습니다. 웨일즈의 광부 이반 로버츠는 시골교회에서 17명의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다가 오순절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으로 30일 만에 3만 7천 명이 주님께 돌아오고 5개월 만에 웨일즈에서 10만 여명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흥의 불길은 영국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우리 한국에까지 1907년에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배하고 날마다 삶에서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며 사십시다. 이런 사람은 정말 하늘의 보배입니다.


3. 존귀한 자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입니다.

5-6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복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복이고 다음은 천국이 기업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늘과 이 땅의 온갖 아름다운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그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복이시고 예수 안에서 온갖 아름다운 것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날마다 기뻐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 앞에 기적이 있고 이 복음적인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보물섬의 보물만 보물인 아십니까? 하나님이 복이시고 예수 안에 온갖 보화가 감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복이시라고 좋아서 기뻐하며 사는 것이 바로 복을 누리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주셨다고 날마다 찬양하며 살아가는 사람 앞에 홍해도 갈라지고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도움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모세와 같고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유일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이 땅에 처한 형편은 심히 어두워도 이 믿음으로 해와 같이 밝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또 누리게 하겠습니까? 이 복음의 생활화를 이루도록 늘 자기를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엔 의심이란 것이 없습니다. 부정이란 것도 없습니다. 낙심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과 감사와 긍정만이 있습니다.


4. 존귀한 자는 십자가 지고 주를 따르는 성도입니다.

7-8절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 구절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밤이고 낮이고 하나님의 훈계와 교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모습입니다. 왜 발전하지 못하고 교만합니까? 목표가 축복과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목표한 것을 이루었으니 이제 교만으로 가는 길밖에는 더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 잘해도 세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대학입학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도 그렇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와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참으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지고 따라가신 예수님을 목표 삼으시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12:1-3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으로 관영한 이 땅에서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존귀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죄악 많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의 믿음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께 상달되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보물 삼고 날마다 해와 같이 기뻐하며, 매일매일 십자가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존귀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