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하나님께로..ε♡з/성경,말씀,설교,묵상

우리의 롤 모델 어린이 (마 18:1-4)

예림의집 2018. 5. 28. 18:24

우리의 롤 모델 어린이 (마 18:1-4)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 시간에 “우리의 롤 모델 어린이”이라는 제목입니다. 요즘 모델이라는 말 대신 롤 모델이란 말이 대세인데 롤 모델(Role Model)이란 role이 ‘역할 배역 임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어떤 사람을 모범으로 삼아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성숙이나 성공을 이룰 때까지 그를 줄 곳 나의 모델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어린이가 곧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이를 제자들 가운데 불러 세우시고 롤 모델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우리의 본이시고 다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이가 본입니다. 여기에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벧전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어린이에게서 배울 것은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어린이가 어머니 젖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때가 되면 젖 달라고 추호도 양보가 없이 울어댑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강력한 생존욕망을 어린이에게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사모가 필수입니다. 사모함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합니다. 세례 받고 교회를 다닌다고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사모하다”라는 말은 헬라어“에피포데오”인데 이 단어는 시42:1에서 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갈망하는 것이 사모란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119:174-175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라고 했고, 시119:103에서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 하나이다.” 했습니다.

어릴 때 주님을 사모하던 그 마음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열심하면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은혜를 갈망했는데 그 때는 영적으로 지도해 주는 사람을 못 만나서 여러 난제의 복병에 걸려서 고생했고 오래 걸렸습니다. 어린이 같은 마음이 있어야 우리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래서 엡4:13-14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2. 겸손한 마음입니다.

3-4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가는데 어린이는 자기를 낮추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약4:6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어린이는 “나”라는 자아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르쳐 준대로 믿고 따릅니다. 사7:16에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그랬듯 자아형성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개성 자기스타일 자기취향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머리가 좀 커지면 그만큼 안 믿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그 사랑은 한결같고 다 같이 예수 믿는데 어떤 사람은 은혜를 풍족히 받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아의 차이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겸손하고 진실할지 모르나 깨뜨려야 할 자아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임재를 체험하고 싶어서 교회에서 살다시피 엎드려 기도하고 집회라는 집회는 다 참석하면서 10년을 갈망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여 차라리 죽자고 할 만큼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기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자기개성과 자기스타일과 자기 취향에 매여 있는 자아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에 신앙생활도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길 원하였지 입을 열어 몸을 드려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으로만 되나요? 입으로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도 기도하면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성전이지만 우리 육체도 성전입니다. 지성소에서 되는 일이 있지만 성소나 바깥성소에서 되는 일도 있습니다.

지성소는 잠잠한 은혜이지만 바깥성소에서는 해결하고 처리하는 강력한 은혜입니다. 자기 주관 못 버리면 평생 믿어도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철저히 자기의 틀을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3. 배움의 정신입니다.

마11:25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셨습니다.

어린이는 무지하지만 무지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놀라울 만치 배우길 원합니다. 어린이들은 너무 물어서 어른들이 대답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것 뭐에요, 이것 뭐에요” 그 때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을 그 때 배웁니다. 아이의 물음이 그치는 순간부터 아이의 지적 성장은 멈추고 말기 때문에 도리어 이거 뭘까? 하면서 아이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자주 던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천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매여 고단한 저주 아래 있었음에도 진리에 대한 갈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학생입니다. 한문으로 보면 학생도 학생이고, 선생도 학생입니다. 인생을 마칠 때 묘비에도 학생이라고 적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것입니다. 늘 배우세요. 바울은 율법의 지식이 많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아라비아로 가서 3년간 예수님께 배웠습니다. 12제자가 받은 3년 반의 교육을 거기서 받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후 그의 삶은 제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성경 보고 앞서간 사람들의 글을 참고할 뿐 아니라, 삶의 일이라도 늘 여쭈시기 바랍니다. 바울도 늘 질문했으리라고 봅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기도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세요.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응답이 옵니다. 알아집니다. 깨달아집니다. 보여집니다. 나타납니다. 문제가 해결 됩니다. 영적으로 어려도 형광등처럼이라도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처럼 늘 배우시기 바랍니다.


4. 열심하는 마음입니다.

눅18:17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어린이는 열심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아무리 주의를 줘도 몇 분을 넘기지 못합니다. 무엇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어린이입니다.

어릴 때 그 엄동설한에 추운데 동상 걸리며 쥐불놀이하고 팽이치고 연 날리고 얼음 지치고 종일 뭘 만들거나 친구와 토굴을 파기도 하고 그러다가 사고도 저지르고 한 순간도 가만있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돈을 주어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이입니다.

여름성경학교를 하면 어린이들이 아침부터 와서 종일 교회를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의 혼을 뺏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오락에 몰입하면 곁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못합니다. 이 어린이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받들라는 말씀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곳마다 이런 어린이와 같은 열심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가 마쳐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옛날 선조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리 유식하지도 않고 내용도 단조롭고 시간도 길고 음향시설도 시원치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흥의 불을 주셨습니다.


5.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시130: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정말 어린이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문가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섯 살 난 어린이는 하루에 300번 웃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웃는 일보다 걱정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세상의 온갖 걱정을 다 짊어집니다. 어린이는 자기 생활이나 인생을 염려하는 것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저 평온한 마음입니다.

무책임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책임지신다고 믿는 믿음으로 현재와 후일을 웃고 평온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염려가 오면 몰아내시기 바랍니다. 염려만 몰아내도 기적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엎드리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은 개척교회 시절 교인이 한 명도 없어 실망할 때 "니가 목회하냐. 내가 목회하지.니가 목회하냐. 내가 목회하지,," 하는 음성을 듣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모든 고민 던져 버리고 정말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일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우리의 롤 모델로 삼고 나갑시다. 어린이와 같이 되면 은혜를 받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린이에게서 사모의 본, 겸손의 본, 배움의 본, 열심의 본, 평온의 본을 배워 하나님께 사랑 받고 큰 은혜 받는 하나님 나라의 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