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90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하나님과 교제를
날씨가 굿을 때 산책을 가 보세요.
장대비, 세찬 바람, 진흙탕을
겁내지 마세요.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일자리를 잃었을 때,
사고로 자동차가 완전히 망가졌을 때,
평생 모은 돈을 다 날려 버렸을 때도
당신을 떠나지 않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세요.
당신이 당한 곤경
실망, 실패, 질병, 죽음 등을
혼자서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다윗의 끔찍한 실수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다윗은 그의 반역자인 아들 압살롬에 대해 참담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 때 그를 용서해준 것입니다. 아주 공정치 못한 해우이였습니다. 회개가 없는 곳에는 진정한 화해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은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같은 판단 착오로 인해 결국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왕위에서 내쫓았던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회개란 마음아니 목적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회개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증명된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구원자 예수님만 신뢰하겠다고 자기 자신에게 선포하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믿음은 항상 함께 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회개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충분히 회개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 위해 회개해야 하는데, 이러한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처럼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의 선하심이 당신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당신의 눈물과 고통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당신의 나쁜 생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인 것입니다. 즉, 회개에 이르는 참된 길은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회개를 동반합니다. 만약 회개에 대해 불확실하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끔찍한 살수를 범하지 마십시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사도행전 5:32).
우리는 지금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가 성령 충만을 자기 의지와는 상과없이 성령님께 사로잡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은사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령님에 의하여 저절로 모든 것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사도행전 5:32).
성령 충만의 증거는 어떤 체험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로 분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어떤 것을 명령하시든 순종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기쁨으로 '아멘!" 할 수 있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 받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결심이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통해 강 같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삶에는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은혜의 강을 막고 있는 고집과 불순종이라는 둑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둑이 터질까요? 우리의 자아가 죽어야 이 둑이 터집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로 고백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로 고백했을 때 고집과 불순종 역시 죽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강 같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캐나다나 미국 등에 가서 집회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집회를 하면서 교인들의 경제적인 여건은 매우 좋았지만 신앙적으로는 침체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침체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집회를 인도하면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어느 집회에서나 "아멘!"하는 이는 몇 사람 뿐입니다. 순종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으니 하나님을 만난 간증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신앙적으로 침체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게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싶은 마음과 소원이 없는 데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심 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힘으로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할 수 없어요."하는 것과 "하나님, 용서하고 싶습니다. 제게 용서할 힘을 주시고 사랑할 힘을 주세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한 성도가 이혼을 결심하고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이혼은 안 된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진전이 없어서 근본적인 것을 질문했습니다. "성도님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무조건 순종하시겠습니까?" 그 성도는 머리만 숙인 채 끝까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결국 성령님께서도 그 부부를 붙잡으실 수 없었습니다. 순종의 결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든지 그대로 하실 결단이 섰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명령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네, 저도 순종했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을 해 본 적이 있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어느 종이 주인에게 받은 10가지 지시 중에 5가지를 순종하고 5가지는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 종은 순종한 종입니까 불순종한 종입니까?
다른 예로, 어는 직장에서 자기 직분에 맞는 10가지 과제가 주어졌다고 합시다. 그 10가지 중에 5가지는 완수하고 5가지는 완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일가요? 아닐까요? 학교에서 과제물을 줬다고 가정합시다. 그 학생이 집으로 돌아가 그 과제물을 50%만 완성한 것을 제출했다면 그가 100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다가 실패하고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 실패와 고난이 두려워서 완전히 순종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 두려움이 성령 충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것입니다.
둘째딸이 다섯 살 때 저는 콩쥐와 팥쥐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는 콩쥐가 되고 싶니? 팥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습니다. 딸아이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팥쥐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습니다. 콩쥐가 얼굴이 더 예쁘고 나중에 복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편하게 지낸 것은 팥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딸 아이의 말을 듣고 성도들에게 "여러분 거지 나사로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자, 천국에서는 나사로로 살고 싶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 고난을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리서 5:7-9).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햇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누가복음 22:42).
성령 충만하면 순종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할 때 성령 충만이 온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저녿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도 많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찬양하다가 성령 충만을 경험할 때도 많습니다.
어떤 성도가 전도하기 위하여 성령 충만을 구했지만 성령 충만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을 구하면서도 전도 현장에 나가지 않고 계속하여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만을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구하기만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진실하다고 생각하실까요?
한국예수전도단의 오대원 선교사가 1972년 서울공과대학 앞에서 서울공대 학생들에게 전도할 때 일입니다. 다섯 명 정도 모여서 성경공부와 찬양모임을 가졌는데, 점점 모이는 인원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자신들도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주엥 나가서 전도하라는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전도하기 위해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명동에는 다방이 많이 있었는데, 60-70명이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각 다방마다 다녔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을 만나는게 힘들었지만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도하였을 때 모두 강한 성령 충만함을 받앗습니다. 얼마 후에는 다른 나라에 나가서 세계 선교를 하게 되리라는 확신도 주셨습니다. 그 당시 70년대에는 비자뿐만 아니라 여권도 안 나오는 시기였으나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렵지만 순종해야 한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까?
"아빠 아버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도 기뻐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옵소서. 저에게 참 기쁨과 회복을 주시고,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종종 제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주문하실 때,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전적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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