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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8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5. 8. 11:10

예림의집 128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사랑의 전달


담대하고 신실한

믿음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간구해 보세요.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해보세요.

그 이유도 미리 준비하세요.

그리고 놀림받을

마음의 준비까지 하세요.

하나님에 대한 좋은 느낌을

그들에게 전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경배


지금까지 어떤 훌륭한 사람도 자신에 대한 경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존중과 존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경배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자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배할 때 주님께서는 결코 그 경배하는 사람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경을 발견하셨을 때, 소경이 "주여 내가 믿나니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에 이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을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요한게시록 22:6-9).

여기서 우리는 천사조차도 요한으로 하여금 자신을 경배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온 천사조차도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던 가브리엘이 왔었더라도 그를 섬기는 것은 죄악이었을 것이며, 심지어는 미가엘 같은 대천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게 경배하라."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아닌데도 그분을 경배한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33절에 보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때 주님게서는 그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8장 2절에도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5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다른 구절도 많이 있지만, 이 구절들만으로도 우리 주님의 신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리라 봅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루스드라의 이교도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을 고친 것을 보고 화관을 들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 하자 그들은 옷을 찢으면서 자신들은 단지 인간일 뿐이므로 경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엄청난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면 그를 경배하는 우리 역시 엄청난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것처럼 그분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독생자시라면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말슴을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이고 주께서 우리를 대속하신 일에 의지하여 평생동안 그분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예배하고, 무엇을 찬송할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좌절감

 

"이와 같이 성경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좌절감은 '깊은 고질적인 의식이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과 불만족의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좌절감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처럼 보이지 않지만, 로마서 8장 20~21절은 그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자유를 즐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으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니므이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를 이르는 것이라."

당신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음으로 해서 깊은 좌절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나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훌륭한 교훈을 나타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기도로 그분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 좌절감이 생기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좌절한 마음에 주님이 속삭이시는 소망과 평화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것은 조용하게 기도하는 시간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매우 심각한 좌절감을 회복시키는데 있어서 자유를 줄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필요를 완전히 채워주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좌절감이 오히려 주님의 은혜를 깊이 채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좌절감에 빠져 있습니까?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삶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당신이 이 좌절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분에게 물어보십시오. 의심과 혼란은 결코 당신의 감정을 지배할수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여 그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하나님이 당신을 자유케 하십니다!

 

"아빠 아버지, 당신의 성령이 좌절감 가운데 계셔서 기도에 방향을 잡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좌절감이 나를 사로잡을 수 없슴을 고백합니다. 비록 나는 할 수 없고, 능력이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절망스러울 때, 당신에게 가까이 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어떠한 좌절감도 저를 지배할 수 없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찬송은 소중한 예물③


넷째로, “성가곡 청문회”입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은 주일날 성가대원들의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자신이 무슨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 평가해서 말하기를 좋아 합니다. 만약 한 곳이라도 틀리는 날에는 성가대원들에게 왜 죽을 쑤었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아마 그 장로님은 틀리지 않고 제대로 하는 찬송은 밥이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죽이나 누룽지가 되는가봅니다. 그러나 더욱 문제인 것은 많은 성가대원들 조차 그 장로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찬송이 끝난 후 성도들이 아멘으로 힘차게 화답하면 흐뭇해하고, 별 반응이 없으면 속으로 ‘오늘도 죽 쑤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예배의 분위기를 위해서, 또는 성도들의 반응을 의식하며 선곡했고, 연습하고, 불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자기취향대로”입니다. 대개 찬송을 자신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찬송을 주님께 예물로 드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를 위해 선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찬송을 받고 싶어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취향만을 우선하는 경우입니다. 이 역시 찬송이 예물임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제가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찬양 인도를 할 때의 일입니다. “함께 주님을 찬양합시다. <목마른 사슴이>를 부르겠습니다.”라고 하니까 한 자매님이 손을 번쩍 들고 대뜸 말합니다. “목사님 그 찬양 이제 그만 좀 불러요. 너무 불러서 지겹습니다.”이것은 약과입니다. 심지어 일부 찬양 사역자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경쾌한 곡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찬양곡을 불러 드리겠습니다!”누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부른단 말입니까? 이 순간 하나님은 어떠한 표정을 짓고 계실까요? 이는 찬송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대상이 누구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촌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마음속에 ‘도대체 왜 찬송이 예물이란 것일까? 왜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 몇 가지를 저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앞에서 다룬 “찬송은 성도의 의무”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찬송의 시작은 하나님의 명령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송 받기를 기뻐하시고 간절히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찬송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동의하든 안하든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며 진실입니다. 제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해도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찬송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아니라 주의 보좌 앞에 피어나는 향연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다윗”을 보십시오. 성경 인물 가운데 다윗은 찬송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지은 시편의 대부분은 찬송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시편 69편 30, 31절을 읽어 봅시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온전한 자신의 찬송이 살아있는 가축을 예물로 드림보다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찬송이 예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다는 증언입니다

그리고 신약으로 와서 히브리서 13장 15절을 읽어봅시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이는 찬송이 예배의 기본이 됨을 밝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계시록 5장 1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우리를 위하여 속죄 재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께서 찬송을 받으시기에, 찬송은 주님께서 받으시는 소중한 예물인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찬송을 찬송 이외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찬송은 그것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려야 합당한 소중한 예물입니다!

http://cafe.daum.net/HomeOfYE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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