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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6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4. 23. 09:20

예림의집 126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나즈막한 속삭임


야구장에 가보세요.

야구를 관람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해보세요.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 말구요.

가장 긴박한 순간에,

요란한 환호 속에서

나즈막히 속삭여 보세요.

그렇게 많은 관중들 가운데

당시의 바로 옆,

낮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에

하나님이 계셔서

감사하다고 말해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경고!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경험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제 글이 그러한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구원의 저의 것이고, 저의 경험 또한 저의 것입니다. 저의 경험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자극이 될 지언정 의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 예수님이 십자가만이 당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얻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그대로 이어받기를 원합니다. 그게 훨씬 쉽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쉬운 구원은 없습니다. 회개와 애통이 동반되어야 하고, 자기 안에 전쟁이 일어나며, 많은 희생과 심지어 내 삶의 주인 자리도 내 놓아야 하는 아주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구원은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목초지에서 회심한 친구가 있는데, 그는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목초지에 내려가서 회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리 밑에서 회심했는데, 그는 아무리 질문이 많은 사람이라도 거기로 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묻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 글 속에 주님의 말씀보다 나의 경험이나 주장이 많다면 절 버리십시오. 대신 성경을 여십시오. 제 글이 세상의 방법을 좇아 가거들랑 저를 비난하고 떠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저 또한 이런 심정으로 이 글을 써 내려 갑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회개의 기쁨-①정죄와 징계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다 깨끗하니라"(요한복음 13:10)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정죄하늠 모든 죄에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죄의 문제는 불신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죄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서 마음에 굳게 결심한 것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것이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그마한 죄도 짓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단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엄청나게 변화될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새 삶을 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제 삶이 그대로였습니다. 제 마음에 육신의 정욕, 이 새상의 자랑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고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아직도 진짜 회개를 하지 않은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단은 이런 점을 이용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에게 "당신은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구원을 받았다면 생일을 기억하듯이 구원 받은 날짜를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것을 보니 구원받은 게 아니군요."라고 하면서 접근해 옵니다. 그러면서 죄책감의 문제를 건드립니다. 죄책감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회개를 부인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구원이 단순히 '개달음과 시인'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회개가 필요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많는 교인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단의 유혹에 빠져서 넘어갑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 다 해결해 주었으니 우리는 죄에 대하여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지, 이제부터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도 다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무조건 용납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와 불신자에게 죄의 결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가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9:1).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7, 8),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19). 그리스도인은 징계와 책망을 받습니다. 정죄와 징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당신에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라고 느껴질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절대로 예수님이 자기 발을 씻기실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발을 씻기지 않으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한복음 13:10).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과는 달리 목욕한 자들입니다. 발만 씻으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이 죄를 지으면 정죄를 받습니다. 율법에 의하여 죄인임이 드러나고 지옥에 가야 한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지으면 정죄가 아니라 징계를 받습니다. 정죄와 징계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지어도 정죄해서 버리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깨끗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시는 정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죄와 허물이 있으면 즉시 징계하여 회개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대함과 같은 것입니다. 징계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느 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게시지 않는게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네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대요."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했나요?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위에 은혜와 부흥을 주시지 않습니다. 죄와 허물이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감사와 마음의 평화가 사라집니다. 모든 힘을 다 빼앗긴 채 무능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징계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실 징계는 축복입니다. 그 징계 때문에 회개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죄를 지어도 잘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시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징계는 고통스럽지만 징계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임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에 누리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지금 그것이 회복되었습니까?


"아빠 어버지,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은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백성이요, 자녀임에도 날마다 짓는 죄를 홰개합니다. 주님 연약하고 죄인인 저를 용서하시고, 내가 지은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도말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나를 돌아보게 하시고, 죄를 깨닫는 순간 즉시 회개하게 하소서. 또한 깨닫지 못하는 죄까지도 회개합니다. 이미 목욕한 자로 안심하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저의 발을 씻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들어가는 말-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송


저는 지난 25년 동안 찬양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있었으나 찬양에 대해 잘 알지 못함으로 제대로 찬송하지 못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통해 그들이 진정한 찬송의 의미를 깨닫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주께서 찬송 받으시길 원하는 사람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게 찬송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를 보내시어 그들을 만지시고, 빚으시어 마땅히 받으실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힘이 들어 낙담하기도 하고 좌절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기도 하였지만, 끝내 그들을 변화시켜 참된 찬송을 부르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는 은혜를 체험하며,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 찬송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고2 여름 수련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을 영접했을 때부터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성도들의 감격 없는 생활, 기쁨이 없는 표정, 너무 형식적인 예배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 제가 경험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장례식을 하는 것 같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물론이고, 찬송조차 장송곡을 부르듯 하는 모습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이렇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문을 시작으로 저의 찬양사역이 출발 되었습니다.

저는 찬송을 “믿음의 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꽃이 피어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찬송은 비밀입니다. 발견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결단코 온전히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다는 분들조차 찬송을 제대로 몰라서 온힘과 열정과 영으로 드리는 찬송을 부르지 못합니다. 또한 찬송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찬송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정말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런 소중한 찬송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알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찌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찌어다상”(대16:23-24) 이 말씀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하는 말일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교회에서, 혹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주님을 높이는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많은 찬송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포하나요?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분이신지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구원의 큰 은혜를 주신 사랑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희생을 통해 영 죽을 우리 죄인들이 죄 사함의 은혜를 얻게 된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여기에서 “증언”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백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다름 아닌 예수를 증거 하는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위대한 이름을 만민들에게 선포하며 구원을 주신 놀라운 사랑을 증거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입니다. 여기에는 능숙한 악기 연주, 완벽한 목소리, 해박한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을 홀로 받기에 합당하시고, 구원의 귀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쉼 없이 이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고 경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이고, 찬송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5:21)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송을 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찬송은 무엇인가 알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