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5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뒷 자리에서 하루를...
하루 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먼저 가게 해 보세요.
다른 자동차들이
끼어들게 해 주고,
주차장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맨 뒷줄에가서 서고,
평산시 당신에게
커피와 심부를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당신이
그렇게 해 줘 보세요.
당신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나 소망을
먼저 생가할 때의
기분이 어떤지를
하나님께 말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두 부류의 사람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눅 18:10).
이제부터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세주가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성령에 의해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자기 죄를 깨닫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며 울부짖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처럼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의 영성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세리의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영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로마서 3장 10-12절 말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리고 17절 이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7-19).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믿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은혜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은혜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스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예수님께서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믿어지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혜를 받고 있는지 아래 성경을 읽고 답을 써보세요.
이사야서 53장 4-6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께서 나의 질고를 지시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나의 허물, 나의 죄악을 담당하심으로 내가 평화와 나음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5장 6-8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주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죄인인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행복해지셨습니까? 어떤 성도가 "예수님을 믿어도 받은 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십자가의 능력을 안다면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난 뒤 어떤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의 경우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썩어질 것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한 것을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예배와 복음)을 이루는 것으로 명확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셋째,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나의 아빠 아버지로 , 그분의 사랑을 받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로 사랑하는 나의 아내를 주셨습니다. 날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은혜를 나누며, 기도할 수 있는 주님이 보내주신 천사인 아내를 말입니다.
몇 년 전 위기에 처한 십대 소녀들을 수용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중, 고등학생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100여 명 정도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했던지 말씀을 전하기도 전에 이미 부흥이 임한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기도하는데, "저들이 하나님 사랑을 정말 믿는지 확인하라."는 강한 내면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니까 저렇게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신 마음에 순종하여 저는 이렇게 질문햇습니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손 들어보세요." 그러자 맨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이어 뒤에, 그 뒤에, 그 뒤에, 계속해서 아이드링 손들 드릭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거기 모인 아이들이 전부 손을 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망가진 인생, 불행한 가정을 보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겉으로 그렇게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하면서도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가장 사랑하실까? 이런저런 사람이 생각납니까? '저 사람은 진짜 행복할꺼야!' 부러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생각해 보세요.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고 지금 예수님이 마음 안에 와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제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안에 있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진짜 믿지 않으니까 좋은 환경을 찾고, 형편이 좋아 보이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저희 교회에 부목사로 사역하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이유는 저희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령 체험을 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갔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목사가 되어서는 담임목사와 관계가 어려웠고, 지금은 담임목회를 하고 있는데 부흥이 안 돼 힘들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신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행복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딱 1년 만이라도 좋으니 행복한 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님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면 누가, 그리고 어떤 교회가 그 목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찾으실 것을 권면해 드렸을 때 그 목사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목사의 부활절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에게 생명과 같이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아버지로 인정하여 존경합니다 아내도 저를 남편으로 극진히 사랑해 주며 다른 많은 교인이 저를 제법 좋은 목사로 인정해 줍니다. 이것이 무너진다면 내 생명과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와 같은 축복의 관계를 단번에 다 깨어버릴 수 있는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지은 죄의 1/10 아니 1/100이라도 드러나고 공개된다면 저들은 제가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목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제게 그것처럼 치명적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에 천 번, 만 번 도으이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 맞습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로 존경받지 못한다면, 아내에게 남편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속죄의 은혜가 가장 큰 축복임을 믿습니다. 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도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그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주홍 같이 붉었던 제 죄가 정말 흰 눈같이 되었습니다. 정말 양털같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 그리고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과거 죄가 다 드러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어떨까요? 천국 갔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지난 과거의 모든 기록이 다 그대로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천국에 가 보면 죄가 가려지고 싯김 받은 복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 지리에서는 다른 어떤 복도 다 의미가 없습니다.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성공의 복이 다 귀하지만, 죄 사함의 복보다 더 귀한 복은 없습니다. 속죄함의 은혜가 가장 큰 복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 완전히 용서되고 처리되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놀라운 속죄의 은혜를 누리며 사십니까?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속죄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 채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던 교회에서 만난 어느 권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7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곧바로 만주로 징용을 가는 바람에 임신을 한 채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는 나무껍질도 벗겨 먹던 어려운 시절인지라 아홉 식구였던 친정 식구들의 눈길이 차가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쌍둥이었습니다. 어린 산모로서는 그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젖을 주지 않아 죽였습니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었고,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이 죄 짐을 평생 지고 살았습니다. 교회 권사가 되고서도 "하나님 앞에 가면 이 죄를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기쁨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와 상담을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권사님의 죄가 이미 용서받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권사님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식 죽인 어미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십자가 복음 앞에 엎드려서 통곡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 후 그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성도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 담임목사와 교우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누리고 사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써보세요.
"존귀하신 하나님, 아빠 아버지...! 나의 모든 죄를 도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나의 죄로인한 족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의 삶 순간 순간 베어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이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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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은 소중한 예물①
“찬송은 예물”이란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혹시 찬송을 예배를 준비하는 노래, 마음을 여는 노래 정도로 생각하고 있진 않습니까? 찬송을 예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물이란 헌금이나 교회에 필요한 물건. 즉, 유형적인 것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예물하면 곧 헌금이라고만 많이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찬송을 예물로 생각했다면 ‘준비찬송’이라는 말도, 4절까지 있는 찬송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1절과 4절만’부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헌금할 지폐를 가운데를 잘라버리고 양 끝만 드리는 분은 없을 테니까요! 만약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찬송하는 태도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찬송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신앙인들의 노래, 예배를 돕는 노래, 마음에 평안을 주는 노래,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노래, 마음을 여는 노래 정도로만 생각하진 않으셨는지요? 찬송이 성도들의 정서에 유익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울러 예배 분위기를 돕고 심령을 평안케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런 이유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에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 열거한 현상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부수적인 결과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선물이지 찬송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찬송의 가치를 너무 많이 왜곡시켜 왔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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