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57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뺑뺑이를 돌아보세요
아주 빠른 속도로
뺑뺑이를 다섯 바퀴 돈 다음
멈춰 보세요.
균현 감각을 되찾는 동안
당신의 삶에서
균형을 잃은 면들을
하나님께 자백해 보세요.
일에 너무 빠져 있는 것,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형편 없는 식사나 건강 습관,
건전하지 못한 대인 관계,
여가 시간, 다이어트, 운동에서
자신을 바로잡고
균형을 회복하는 문제를
하나님과 상담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어머니에게 한 약속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최근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본 젊은이가 있다면,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꼭 천국에서 만나자꾸나." 물론 당신은 그러겠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거듭나지 않으면 어머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 나는 거듭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불신자들의 말을 듣기보다는 나사렛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또한 당신은 최근에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아버지나 어머니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집안 분위기가 어둡겠습니까? 사랑하는 아이와 재회하려면 당신은 거듭나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아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아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리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먼 세상으로 먼저 간 친한 친구가 있습니까? 어머나가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까? 당신이 어머니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어머니도 이렇게 말슴하실 것입니다. "이리로 오렴. 아들아", "이리로 오렴, 딸아" 거듭나지 않으면 당신은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죄에 대해서는 등을 돌려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귀머러기가 됩시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구원을 얻으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우리는 영광중에 왕을 보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나는 정죄할 자격이 없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장 1절).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까? 내가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을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가지 여러분보다 더 악질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더 악질인 사람이라면 누구인지 생각나는 대로 써보세요."
만약 이 질문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현재형으로) 여러분은 아직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눈이 뜨인 사람은 누구도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닊? 바로 내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나보다 더 나쁜 사람, 나보다 더 악질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과거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 6).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리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로는 자신을 죄인 가운데 괴 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며, 자기 죄를 깨달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저 또한 에수님을 영접할 때 '내가 가장 큰 죄인이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만나는 사람에게 "착하다, 모범적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연히 나는 착하고 모범적이고 세상에는 나쁘고 못된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고2 동계 연합 수련회 설교시간에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설교를 듣는 중에 주님께서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기, 죄인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세리는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기보다도 더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든는 가운데 생각해보니 제가 바로 그 바리새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바리새인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고 말씀도 많이 알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바리새인의 마음입니다. "저렇게 나쁜 사람이 있나?", "저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나?" 라고 다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다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요한복은 8장 1-11절을 읽고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십시오. 첫째,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5절) 돌로 치라 했습니다. 둘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7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9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마음의 돌을 다 내려 놓으셨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음의 돌이 내려놓아집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을 전죄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진정으로 십자가의 능력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만날수록 은혜롭고, 이런 사람이 모여 천국 같은 가정, 천국같은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7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고입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고,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욕심을 비판합니다. 우리는 거짓을 품은 채 남의 거짓을 참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기적이면서 이기적인 사람을 정죄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면 가장 먼저 이것부터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저는 목사의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저는 정말 자격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저를 목사로 생각해 주지만 저 자신은 제가 너무나 잘 아니까 하나님 앞에서 목사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안타까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네가 너 자신이 목사의 자격이 없는 것을 아느냐?", "예, 제가 압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볼때도 그 마음으로 보라." 그 말씀 한 마디를 주셨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내 허물과 죄악을 그냥 덮어 주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지 않게 하시기 이해서이구나!"
회개하는 것을 보면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더 애통해하면서 회개합니다. 죄를 만히 짓고 사는 사람이 오히려 회개하지 않습니다. 눈물의 양으로 보면 경건한 자가 더 많은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애통해하는 이유는 자기 죄를 더 많이 보기 때문이고, 방탕한 자가 울지 않는 것은 자기 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롭게 깨달은 여러분의 죄는 무엇입니까?
"아빠 아버지, 저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맏기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날마다 내려놓게 해주세요. 그 누구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나의 마음과 입술에 거룩한 재갈을 채워주시고, 날마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HomeOfYERIM/EQPI/284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첫째, 찬송은 성도의 의무②
하나님의 이 명령은 우리에게 의무이지만 또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시며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벧전 2:9).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자격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자격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 치심을 받은 자”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합니까? 하지만 이 찬송의 자격증은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빼앗거나 박탈 할 수 없는, 곰팡이가 생기거나 불에 타지 않는 자격증입니다. 자격증을 딴 후에 장롱 속에 고이 숨겨 두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운전 면허증을 따고 10년 동안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한 사람이 과연 자동차를 제대로 운전할 수 있겠습니까?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는 찬송할 자격이 있고, 찬송할 수 있고, 찬송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버리고, 묻어 버린 것조차 잊어버린 그러한 불량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찬송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찬송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요, 가장 기본적인 의무임을 명심합시다. 찬송하지 않는 삶은 불순종의 죄를 날마다 짖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찬송하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회개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처럼 찬송이 삶에 자연적으로 녹아들게 합시다.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인 찬송! 찬송이 우리의 삶이 되는 때에 믿음의 꽃 피어날 것이고, 마침내 열매가 되어 주님의 한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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