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5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혼자만의 정전
정전의 날
TV, 라디오, 컴퓨터도 없는 날
그런 날을 선포해 보세요.
핸드폰을 끄고,
전화기 코드를 뽑고,
촛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세요.
시끄러운 소리도,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도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밤새 하나님과
도란도란 예기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바라봄 안에 있는 생명
한 천막 안에서 어머니가 이제 막 인생의 황금기에 접어들어 어른이 되려는 사랑하는 아들 위에 엎드려 있스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이마에 흐르는 죽음의 땀방울을 닦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동공은 풀려 있습니다. 잠시 후면 그의 생명이 꺼져 갈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찢겨 나갈 듯이 아팠습니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아주 큰 외침이 들여 왔습니다 어머니는 천막 문 밖으로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밖에서 나는 이 소리가 무엇이죠?" 누군가가 말합니다. "아니, 아주머니, 당신은 아직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예 좋은 소식이라니요. 그게 뭐죠?" "이런, 아직 못들으셨군요. 하나님께서 아픈 자를 치료해 주신답니다." "머라고요? 뱀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진 가운데 장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매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것을보는 자마다 살리라고 하셨지요. 놋뱀이 들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아주머니도 들으셨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8-9).
어머니는 천막으로 돌아가서 말합니다. "내 아들아, 좋은 소식이 있다. 넌 죽지 않는다! 얘야, 희소식이 있어. 넌 살수 있어!" 다들은 이미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몸이 너무 약해져서 문으로 걸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기의 강한 팔로 아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저기를 봐라, 저기 언덕, 바로 밑을 보렴."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무엇이 보여요 어머니?" "계속 보고 있거라. 그러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말합니다. 잠시후 아들은 반짝이는 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병이 나았습니다! 그 아들이 치유함을 받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요?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치료하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단지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나았던 것입니다.
그 히브리 청년은 젊은 회심자입니다. 그는 지금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처럼 뱀에게 물린 한 청년을 보고 그에게 달려가 말합니다.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오, 나는 살 수 없어요. 그건 불가능해요. 이스라엘에는 나를 고칠 수 있는 의사가 없습니다." 그 청년의 말입니다. 그는 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식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아픈 자를 치료해 주십니다." "치료라니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매달라고 하시고 그것을 보는 자마다 죽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환자는 소위 말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회심자에게 말합니다. "이봐요, 내가 그런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이스라엘의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데 장대에 달린 놋뱀이 나를 어떻게 고친단 말이요?" "나는 당신보다 더 심했었습니다." "그런 말하지 마세요." "정말입니다." "그거 아주 놀라운 말이군요." 청년이 말합니다. "그 우너리를 내게 좀 설명해 주시면 좋겠군요." "난 할 수 없습니다. 난 그저 놋뱀을 처다보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것으로 나았다는 것 밖에는 모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유일한 평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있도다(시 34:8)."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바로 전에, 그는 생명이 위기를 느낀 때가 있었습니다. 그가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동안, 다윗은 갓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한 용사가 그를 알아봄으로써 다윗은 갓의 왕인 아기스가 그를 죽일까봐 미친체 하였습니다. 아무도 다윗이 긴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것에 대해 의심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는 시편 34편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참 성소를 발견했습니다.
오늘 다윗의 시대처럼, 평화는 여전히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현대에 종종 갈등과 긴박한 방해물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소요를 피하고 평온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에게 다윗이 발견햇던 것과 같은 평화를 주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평화를 얻는 유일한 길은 다윗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평화가 당신의 삶 가운데 스며들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챨스 웨슬리가 했던 것처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무나이다. 나이 슬픔은 사라지고, 나의 근심은 멈추게 됩니다. 주님, 나의 영혼이 머물게 될 주님은 완전한 평화 속에 나를 잠잠케 해 주실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평화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완전한 평화 가운데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화만이 유일한 안식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 늘 거하게 하소서. 주님은 나의 유일한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 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CCM가수들을 보면 은혜가 안 됩니다.
“옷차림이나 하고 다니는 것이 그게 뭡니까? 경망스럽게…” 이 말은 CCM 가수들이 지나치게 외양에만 관심을 쓴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 저는 그들의 외모만 보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고백과, 노래하는 내용까지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처럼 쉽고 간편한 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사람의 원초적인 판단 기준도 외모입니다.
그러나 총체적 문화 사역인 CCM을 가수들 개개인의 외모만 보고 판단을 한다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만약에 찬양을 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이 점잖은 정장차림으로, 드럼을 친다고 생각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 특히 ROCK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줄 수 있을까요?
같은 논리로 CCM 가수들이 외양에 신경을 쓰고, 나름대로 가꾸는 이유를 가수 개인의 감각적인 매력을 키우려는 것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모든 찬양 사역자들이 똑같은 정장차림, 똑같은 말씨, 똑같은 노래 스타일로만 찬양한다면 이 땅에 다양한 문화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문화섭리를 아주 간편화, 단순화 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할례 받고, 누가 봐도 분명한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심을 수 있을까에 집중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문화양식에 맞춰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CCM 사역자들의 외양과 스타일은 바로 이러한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경건은 외양이 아닌 중심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겉만 보지 말고, 그 중심까지 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선행되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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