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53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싫어하는 것을 해보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해보세요.
공으로 게임을 하거나
쇼핑을 가보세요.
다른 사람이 하는 게임.
모노플리(주사위로 하는 게임),
포커, 농구, 에어 하기,
낱말 마추기 게임을 해보세요.
그것을 즐기고,
당신의 친구를 위해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
하나님께서는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치료제인 놋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영생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바로 지금 이 순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장대만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장대만 쳐다봅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입니다. 마치 장대와도 같습니다. 장대에 달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갈보리 언덕을 바라보지 마시고 그 곳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봅시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것을 기어합시다. 당신은 목회자를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구원을 알리고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도구일 뿐입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세상 죄를 속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 시간 당신을 위한 생명이 그분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네 살짜리 어린아이도 볼 수 있도록 예수님은 높이 달리셨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리 와보렴, 아빠가 오셨네!" 아니는 한 살도 되기 전부터 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아빠를 바라보는데, 나이를 들면서 아빠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들고 들어오는 과자 봉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너무 주님께서 주신 은혜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구원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잊어버리며 살아갑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 바로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생명이 그분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분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죄책감은 사라지게 됩니다. 늘 붙어 따라다니던 죄들은 하나님 앞에 그것들을 고백할 때 용서받게 됩니다. 죄의 형벌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함께 지불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자유를 느껴야 할때 죄책감과 씨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우리는 양심의 가책-성령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해결할 마음을 갖게 함-을 느낍니다.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은 다른 것입니다. 죄책감의 모든 다른 감정들은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면, 우리의 삶을 위해 그의 부르심에 되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의 중요성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용서하심은 다시 그분의 선한 사역을 하도록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요 10:10).
죄책감은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고 그런 삶을 약탈해 갑니다. 그것은 과거의 행동에 우리를 얽매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해 주십니다. 과거의 모든 죄책감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엇던 것이라도-은 대적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은 우리의 자유 가운데서 생활하고 죄책감에서 자유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으로 인해 당신이 성도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빼앗아감을 인정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못박힌 십자가 위에 그 죄책감을 내려 놓습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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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CCM 가수들은 가요하려다 안되니까 CCM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대중음악을 하다가 복음성가계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요즘에는 대중음악 가수들이 CCM 앨범을 내거나, 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복음성가나 CCM을 하는 이유는 이쪽에서도 돈을 벌어보려는 심산이나, 또는 가요가 안 되니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계산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다른 길을 걷지 않고 찬양보급과 찬양팀 사역을 하고 있는 저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보일까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결코 CCM 장르는 이익을 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들은 인기와 상관없이 찬송을 부르고 싶어 했지, 대중 음악계처럼 치밀한 상업성과 인기의 이해타산 논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것을 저는 용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CCM을 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교회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통해 배출된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달란트와 시간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에 헌신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음악이나, 인기나, 금전이 그들의 목적이었다면 CCM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음악이 목적이 되고 CCM을 수단으로 삼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나라를 널리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음악이 수단이 된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헌신의 귀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 CCM 가수 중에는 반대로 음악적 기량을 살려 대중음악계로 진출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CCM에서 인정받았으니 이제는 가요계로 진출해서 인기나 얻어 보자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저는 경계합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원대한 꿈이라고 그들을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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