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선교
21세기 세계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선교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열방을 향한 복음의 시작은 바울사도의 이방선교의 바람을 타고 서진(西進)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 로마가 복음화 되고 유럽, 그리고 영국의 세계선교 주도권 아래 계속 서쪽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 20세기 초반에 미국으로 불이 붙었고, 미국이 세계선교의 주도권을 가졌다가 아시아대륙에 있는 한국에까지 복음의 횃불이 전달되었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한국은 10/40창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일한 복음화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는 아직도 예루살렘을 향한 복음의 서진을 위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다. 과연 어디로 복음의 불똥이 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복음의 서진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이 보이고 있다.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으며, 또한 동시에 중국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거의 전부가 이슬람권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는 중앙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렸다.
키르키스스탄은 벌써 수많은 세계선교단체의 지부가 위치해 있고 카자흐스탄은 한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5천명 이상의 성도를 가진 대형교회가 생겼으며, 종교비자 입국이 가능한 곳이다. 우즈베키스탄도 아직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 방해와 장애는 있으나, 많은 수의 교회들이 등록이 된 상태이고 상당수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타지키스탄 같은 곳도 외국인들의 복음전도 활동에 지장이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상당수의 대형교회들도 생겼고 종교비자도 열려있을 정도로 선교정세가 바뀌어 가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투르크메니스탄이 강한 독재와 정사, 권세의 영을 통해 기독교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나 최근 종교법 개정을 통해 비록 소수민족 교회들이라고는 하지만 등록교회들이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강하게 미복음화상태로 남아있는 페르시아창, 아랍창 등 백투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프론티어(The Last Frontier)국가들의 기독교 복음의 과제는 이슬람과의 영적전쟁이다. 이런 지역들의 국가와 민족들은 현재 전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로 인한 불만과 반항을 통해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 서구와 비서구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구 선교사들과 기독교에 대한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런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은 일단 입국하는 것부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NGO 선교 패러다임의 한계
현재까지 중앙아시아의 몇몇 국가를 포함한 대다수의 선교제한국가들(i.e, 창의적 접근지역; 우리는 부정적인 단어를 싫어한다), 즉, 공식적으로 선교사나 목사들에게 종교비자를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국가와 민족들에게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입국전략은 비정부민간단체(NGO) 패러다임이었다. NGO를 통해서 경제개발이 덜 되어있는 제 3세계, 또는 제 4세계권에 속하는 국가들과 민족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전문인선교(Tent Maker Mission) 패러다임이 NGO 활동이라는 전략에 집중 되면서 한 NGO 기구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비자를 받고 민간활동, 구제활동, 의료활동, 대민활동, 문화교류, 학술교류 등의 방편으로 그 지역의 민족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선교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중앙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이 외국 NGO 단체들의 활동을 통제하고 공식적으로 NGO 직원들이 종교활동을 할 수 없다는 법적 구속력을 가속화 시키면서 NGO 활동에 허락되지 않은 종교활동을 비공식적으로 하던 NGO 기구들을 폐쇄하거나 또는 많은 NGO 직원으로 등록된 선교사들을 무더기로 대거 축출하며 비자를 거부하는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NGO 패러다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선교단체들은 선교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또는 정치적으로 지도자의 통치권 강화 및 정부조직화가 일어나면서 개발도상국 독재형 정치가 만연되어있는 국가들에게 외국인들의 민간활동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민주화 운동으로 불붙일 수 있다는 염려, 만년 외국의 구제를 받는 빈민국가에서 벗어나겠다는 국가적 자존심, 서구적 가치관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기독교 사상의 전파에 대한 심각한 우려 등의 이유로 급속히 외국 NGO 활동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NGO 활동을 하면서 NGO 요원들이 비공식으로 종교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국 NGO 활동을 통한 공짜 수혜의 이익이 크다고 판단해서 이들 정부가 그냥 방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짜 수혜의 이익보다는 상기 사유들에 대한 고려가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선교계에서도 NGO 선교 패러다임이 장기적으로는 쇠퇴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른 속도로 진행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아마도 전세계 국가들의 세계화(Globalization) 속도가 가속화되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선교입국전략(Entry Strategy)의 절박성
아직도 NGO 형태의 선교 패러다임이 가장 좋은 것처럼 보이는 곳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한 예일 것이다. 그곳은 9.11 사태인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 강제로 문이 열린 곳이다. 수많은 외국 NGO 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역동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이곳도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이 얼마나 빨리 세계정세에 대응하며 국가경제와 정치의 안정을 이루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다른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NGO 선교 패러다임은 역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다른 입국전략을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별안간 낭패를 당할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쇠퇴해가는 NGO 선교전략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선교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즈니스 선교전략이다.
왜 비즈니스 선교전략인가? 21세기 전세계는 글로벌(Global) 경제로 묶여있다. 경제를 무시하는 정치는 발 붙일 곳이 없다. 과거에는 국가외교를 중시하던 대사관도 현재에는 국가간의 경제협력, 무역증진, 자국의 경제이익을 대변하고 비즈니스 촉진을 도와주는 곳으로서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도 외무부가 외교통상부로 개편되지 않았는가? WTO(세계무역기구)를 중심으로한 지구경제구도의 개편은 아무리 이슬람국가라고 하더라도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비즈니스에는 이제 국경이 없다. 아무리 선교에 폐쇄적인국가라 할찌라도, 비즈니스 분야는 열려있다. 비즈니스로 들어가지 못하는 국가는 이 지구에서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왜 비즈니스 전략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교전략인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비즈니스선교는 성경적 전략(Biblical Strategy)이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에 갔을 때, 자신이 가장 익숙했던 장막 깁는 일(Tent Making)을 통해서 선교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바울은 다소 출신이고 유대인이면서도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지중해안의 도시국가들은 헬라문명을 통해서 상당히 개방적이고, 교육과 비즈니스가 발달했으며, 로마 시민권을 돈을 주고 살 수가 있었다.
추측컨데, 바울사도의 아버지는 Tent Making 비즈니스를 했었을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를 잘 해서 돈을 잘 벌었고,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값을 지불하고 로마 시민권을 샀으며, 어려서부터 부친의 비즈니스에서 장막 깁는 일을 연수받았을 사도바울에게 장막 깁는 일은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그 당시 Tent Making은 아주 좋은 비즈니스였다. 로마군은 야영할 때 항상 텐트를 쳤으며, 그 당시 범선들의 돛의 원료도 모두 장막(Tent)이었다. 또한 그는 바울사도를 철저한 유대인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그 당시 힐렐학파 바리새파의 가장 훌륭한 가말리엘 교수 밑으로 예루살렘 유학을 시켰다. 지금으로 말하면 하바드 대학으로 유학을 시킨 것이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에서 단순히 선교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즈니스를 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선교하기 위해서 비즈니스 선교를 했다. 성경을 보면, 지속적으로 바울사도의 선교사역을 지원했던 안디옥 교회와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선교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고린도는 선교적으로 주요 전략지였으나, 고린도 교회는 신앙적으로 너무 연약했고, 대부분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사도직에 대한 영적 안목이 없었기에, 바울사도를 무시했고, 그를 위해 선교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Tent Maker 선교(전문인선교)라는 단어가 여기서 파생한 것이다.
둘째, 비즈니스 선교는 선교역사적으로 증거가 되었다. 선교역사를 보면, 열방과 민족을 품고 프론티어를 향해 나갔던 역동적인 선교 공동체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AD 4세기에서 8세기 정도까지의 네스토리안(Nestorian)들과, 18세기 이후에 있었던 모라비안(Moravian) 공동체들이다.
네스토리아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한 후에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의 주교였다가 이단시비에 몰려 자신을 추종하던 신앙 공동체들과 함께 동쪽으로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지속적으로 선교센타를 건설하고, 주님의 복음을 증거했다. 지금의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의 메르브,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네스토리안 선교센타(네스토리안교회)가 있었던 것이 고증되고 있으며, 7세기 이후에는 당나라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경교라고 하는 것이 바로 네스토리안 교이다. 이 경교는 그 당시 당나라에서 유학하는 많은 신라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신라 불교 석탑 안에서 십자가 형상의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들의 직업은 주로 교역을 했으며, 실크로드를 따라 카라반들과 함께 또는 카라반이 되어 장사를 하면서 살았으나,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선교사업이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진센도르프 백작의 영적 리더쉽으로 그 당시 경건주의 운동을 하던 보헤미안 공동체의 성도들로 선교의 열정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직업을 중심으로 몇 가정씩 그린랜드, 미국 인디안 원주민, 태평양 열도에 있는 섬 등으로 이주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하면서 선교를 하였다. 그들의 이주 목적은 비즈니스가 아닌 복음전도에 있었다. 미국선교를 하려고 나갔다가 열매가 없어 낙심하고 돌아오던 요한 웨스레가 풍랑을 만난 배 속에서 모라비안 성도들의 두려움 없이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모습에 회심하는 놀라운 사건의 당사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 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비주류들이었지만, 변방에서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 담대하게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개척하고자 나갔던 영적 용사들이었다. 그들의 선교전략은 모두 비즈니스 선교였다.
셋째, 현재까지 비즈니스 직종(Vocation)은 하나님의 선교에 수동적으로만 사용되어 왔다. 현재 소위 말하는 프론티어 지역(창의적접근지역; 교회가 거의 없고 목사나 선교사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곳)의 선교를 위해서 전문인 선교전략이 사용되어 왔다.
전문인선교사들의 80% 이상이 평신도들이다. NGO 또는 전문인사역을 위해서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전문직종을 살려 선교사로 파송 받고 있다. 의사, 치과의사, 교수, 영어선생, 음악교사, 사회봉사 단원, 컴퓨터, 엔지니어, 한의사, 농업전문가 등등 수많은 직종이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맨(사업가)는 선교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 보다는 선교사역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선교사역에 재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원을 제공하는 것만이 사역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왜 그 비즈니스 직종자체로서 상기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선교사역에 직접 뛰어들 수 없는 것일까? 하나님이 주신 천직을 가지고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수동적으로 재정만을 제공하는 것만이 비즈니스맨들의 선교동참이라고 보는 일은 옳지 않다.
21세기 시대는 마지막 선교시대이다. 이제는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던 엄청난 하나님의 자원, 바로 비즈니스맨들을 하나님께서 프론티어 선교현장으로 보내실 것이다. 사단이 가장 염려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태까지 거룩과 세속이라는 논리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세속적인 물질을 만지는 비즈니스맨이 못하게 묶어 놓았던 사단의 전략을 해체시키는 시대이다.
넷째, 비즈니스를 통하여 선교지 현지인들의 가장 실제적인 필요들을 채워줄 수 있다. 선교현장에 있어보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사역하고 있는 또는 앞으로 개척하여 들어가야 할 프론티어 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거나, 또는 강한 이슬람지역이므로 기독교인들을 배척하여 신앙 때문에 직장을 잃거나, 핍박을 받는 지역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또 선교사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제자훈련을 시키거나 영적 리더들을 키우면서 그들이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을 때, 경제적으로 지원해야만 할 것 같은 유혹을 받는다. 아직 현지인 지도자가 영적으로 미성숙할 때, 돈으로 지원하는 것은 돈의 위력으로 인하여 그들을 오히려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순수하게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따라오는 거짓 성도들도 있다. 돈을 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안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럴 때, 비즈니스 선교전략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서 정당하게 일을 하고 수입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의존적이 아닌 독립적인, 건실하고 부지런하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을 만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
비즈니스 선교를 하려면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있다. 이런 이점을 알기에 쉽게 일반 선교사들이 비즈니스 선교를 해보려고 뛰어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실패 하는 것을 본다. 비즈니스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개척전문, 또는 목회전문가들이 비즈니스를 하기 보다는 비즈니스맨들이 헌신해서 선교사역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교 베이스를 통해 교회개척 전문가들이 들어올 수 있다. 또한 비즈니스맨들도 실제로 은사들을 통해서 직접 선교사역을 할 수도 있다.
사업은 수익을 내지 않으면 지속성이 없다. 비즈니스는 NGO가 아니다. 어떤 교회가 만성적자를 내는 선교지 비즈니스 사업에 계속 재정을 쏟아 붓겠는가? 사업도 성공해야 한다.
비즈니스맨들이여! 일어날지어다. 열방의 마지막 프론티어 백투예루살렘을 향해서 일어날지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비즈니스맨도 거룩한 하나님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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