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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대 선교현장과 세계의 교회

예림의집 2017. 11. 10. 14:57

마지막 시대 선교현장과 세계의 교회 
고여호수아/Uz족 사역자 

2004예루살렘예수행진이 끝나고 벌써 거의 4년이 지나고 있다. 예루살렘예수행진 이후 세계는 빠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특별히 아랍세계에는 더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루살렘예수행진 후 3개월 만에 예상치 못하게 아라파트가 사망한 이후(예루살렘예수행진의 영적 효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관계가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화해무드가 새롭게 열리고 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진정한 평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로 시작된 아랍 세계의 새로운 민주화 열망과 이에 따른 정치적 변화가 우리의 선교사역에 주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모든 힘을 다해 각 지역의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고자 하는 극단적인 믿음을 추구하는 교회들은 지금 두드러지게 보이는 두 가지 운동으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이해하는 백투예루살렘 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지난 2000년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도 운동의 결과인 교회개척운동이다. 이 두 가지 운동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이미 교회화 된 국가들의 교회는 만유를 회복시키는 ‘통치 개념의 사도적 사역’으로 전환되고 있고, 그 동안 여러 형태의 어려움 때문에 교회들이 개척되지 못했던 국가와 도시들에는, 이들 사도적 교회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속도로 새로운 교회들이 개척되고 있다. 이런 비전을 믿음으로 받아 공격적으로 사역하는 교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동반한 폭발적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보아야 할 모델 교회들 
이런 영적 기류 속에서 우리가 현장에서 개척하는 교회들도 이제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사역할 때가 왔다. 2000년 실크로드 페스티발 집회 이후 한국의 선교계에 잘 알려진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G교회를 보고 온 많은 한국인들이 그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놀라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 우크라이나 키예브의 EBKGAN교회는 보지 못하고 있다. 이들 각 대륙의 동쪽 끝에 세워진 사도적 교회들은(유럽 대륙의 동쪽 끝이 우크라이나이고 중앙아시아의 동쪽 끝이 카자흐스탄이다. 한국도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에 있으므로 희망이 있다)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복음 안에서의 분명한 자기의 방향과 비전을 알고 그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빠르게 교회들을 개척해 나간다는 점이다. 
여기 몇 가지 숫자와 통계를 통해 이들이 경험하는 변화를 알아보자. 2000년 2000명 수준이던 알마티 G교회는 불과 5년 후인 2005년 현재 성도 수 5000명까지 성장하여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 중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고, 2010년까지 실크로드 선상의 도시들에 1000개의 교회를 개척하기로 했던 종전의 계획을 대폭 수정해서 5000개의 교회를 개척하기로 그 목표를 늘려 잡았다. 우크라이나의 키예브에 있는 EBKGAN교회는 나이지리아 유학생 출신의 20대 젊은 흑인 평신도 사역자에 의해 개척된 지 8년 만에 성도수가 2만 명을 넘었고(2005년 현재 성도 수가 2만 5천명이 넘는다), 한 달에 평균 4개의 새로운 교회를 구 소련권과 유럽 대륙에서 개척하고 있는데, 조만간 매 달 10개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있다. 구 소련권에 속해 있다가 새롭게 독립한 나라 중 인구가 300만뿐인 라트비아에 15,000명의 성도를 가진 매우 강력한 사도적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들 구 소련권의 교회들은 불과 13년 전만 해도 공산주의 통치하에 무신론 사상 밑에서 고통 ! 받고 신음하던 상태였다. 이제는 오히려 이들 교회들이 국가의 정권까지 바꾸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얼마 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에서 잘 나타났다. 교회들의 단합된 힘의 도움으로, 오렌지 혁명을 통해 그리스도인 대통령과 총리가 실제로 정권을 장악하여 성경적인 정부를 세워나가는 사례는 이 시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교회의 담임목사들의 메시지는 한결같이 교회가 국가와 전체 지역을 통치하는 ‘통치 패러다임’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작은 이야기들 
Uz국에 개척된 우리 교회도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목표를 새롭게 수정해서 금년 내 10개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것으로 고쳐 잡으면서 어찌하던지 이런 파도를 함께 타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비록 개척된 지 2년 밖에 되지 않고 지금 있는 성도 수라야 고작 200명 안팎이지만, 이미 이웃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각 도시에 교회 개척팀을 보내며 금식기도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이 나라의 막힌 돌파구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기도 가운데 놀라운 역사들을 일으키신다. 
최근에 마친 40일 금식기도운동의 결과로 이미 이 나라 안에 구체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그 동안 이 나라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제한 받고 있던 거주 등록의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그 동안 이 문제는 가장 심각한 사회악의 하나로써 고치기 힘든 어려운 문제였는데, 도저히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일이 하루 아침에 최고 통치자의 칙령을 통해 바뀌었다(우리 교회처럼 지방 출신 사람들이 많은 곳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또한 이웃 키르기스스탄의 혁명적 정권 교체에 놀란 통수권자가 전체 내각을 다 바꾸어 버렸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했던 것과 일치한다. 우리는 국민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돌보지 않는 지도자들을 바꾸어 줄 것을 기도했다. 단 한 사람만 '아직' 우리가 기도한대로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근본적 이유가 아라파트가 갑자기 죽은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다. 교회의 전체 분위기가 누구든지 눈에 띌 정도로 변화되어 찬양의 활기가 넘치고, 기도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일부 지역 핍박을 받는 구역에서는 매우 담대한 간증들이 들려온다. 감히 비교하자면 초대 교회 사도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믿음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간증들이 들린다. 법적인 등록이 있건 없건 교회에는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늘어나고 전혀 복음에 반응하지 않을 것 같던 계층의 남자들이 주님을 영접하면서 대추수가 임박한 것과 같은 흥분을 주고 있다. 

예루살렘들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이제 이 지역의 우리 전체 사역자들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롭게 조명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방향이 설정되었으면 이 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전진해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점검해야 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면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내용에 대한 비전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기도하며 간다는 사람이 있고 전도하며 간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주님이 세우기 원하시는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분명하고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면서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주변 도시들에 폭발적으로 교회들이 개척된 것처럼 이 시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교회들의 징검다리’를 통해서 예루살렘에 바르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영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 언급되는 ‘예루살렘’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구약을 단지 영적으로만 이해해서 그 예루살렘을 모두 교회라고만 생각하면, 지리적 예루살렘 도시를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유대인들같이 지리적 예루살렘은 보면서 영적 예루살렘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보지 못하면 이는 더욱 심각한 실수가 되어버린다. 예수님 자신이 보이지 않은 영적 실체인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여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도 영적으로,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마다 영적인 예루살렘인 교회를 세우고 재생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들이 그 지역에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다 주는 영적 본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라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통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법이 국가 정부에 적용되는 통치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직업이 국회의원인 키예브 교회의 한 성도는 담임목사의 충고로 성경적인 입법안을 내고, 의회의 많은 그리스도인 의원들의 동의와 재청을 통해 그 입법안을 통과시켜 실제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는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국가의 법이 사도적 교회의 담임 목사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교회가 다스리고 있다. 이런 정부는 구약 시대 다윗의 정부를 통해서 이미 그 모습이 알려져 있다. 
이제 재생산 능력과 통치의 비전을 가진, 이러한 사도적 교회들을 개척해야 하는 사명은 단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비전 나눔의 수준이 아니라 운명적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비전을 가진 교회를 개척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사도적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이 시대 하나님의 첨단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모습과 비전을 갖고 있다. 마지막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 몇 가지를 물어보시면서 심판하실 것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2-13). 
우리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혹은 ‘어떤 비전을 가졌는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깨달은 비전을 행했는가’ 하는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비전을 받았으면 행위로 옮겨서 그 결실로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결론 
예수님은 매우 임무 지향적인 분이셨다. 군인과 같이 받은 임무를 완수하는 임무완수형의 표본이시다. 우리는 이제 더욱 극단적인 세대로 변화되어져야 한다. 여기 희망의 뉴스가 있다. 그것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기름부음이 이 시대 사역 현장에서는 흘러넘친다는 사실이다. 우리 한국인들의 땅은 명백하게 유라시아 대륙과 아랍지역이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위의 수많은 도시들이 우리의 약속의 땅이다. 이 도시들 위에 ‘교회들을 재생산하고, 교회를 통해 통치하는’ 비전을 가진 사도적 교회들을 세워 나가야 한다. 쉽지 않은 나라들에서 강한 영성으로 이적과 기사를 일으킬 때, 모든 종류의 반대와 핍박과 위협을 이겨내고 오히려 그 지역을 통치하는 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꿈과 비전을 새롭게 하자. 앉아서 전략을 말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행위로 결실을 보일 때이다. 이런 미래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취하는 자들에게는 아주 가까이 보일 것이다. 시작은 꿈을 가지면서부터 이다. 바른 꿈은 바른 비전으로 인도하고, 바른 비전은 믿음을 만들어주고, 진정한 믿음은 열매를 생산한다. 주님은 ! 열매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사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