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갈라디아서에 대한 교회의 침묵

예림의집 2017. 6. 20. 09:02

갈라디아서에 대한 교회의 침묵

많은 사람들이 의외라고 느끼겠지만, 갈라디아서는 인기가 없는, 무관심의 그늘에 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종교개혁의 선봉장 루터에겐 갈라디아서가 자기 아내처럼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정수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 역시 갈라디아서를 좋아합니다. 비교적 짧아 건드리기가 수월해서이기도 하겟지만, 워낙 논쟁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학이라는 별세계의 문을 나서서, 일상과 교회라는 현실로 돌아오면 갈라디아서의 용도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용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적용할 일이 없는 갈라디아서 메시지?

혼자마느이 생각일 수도 있지만, 갈라디아서가 별로 인기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갈라디아서의 메시지가 별 필요가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라는 꾸지람이 필요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사고를 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내 행위를 보지 마옵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하고 기도할 일은 있겠지만, 바울처럼 이 구호로 다른 사람들을 야단칠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율법을 행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라는 바울의 질책을 우리 삶에 적용하려면 우선 율법을 행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겠다는 "빗나간"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서 그런 "사고(?)"를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회자나 회중을 막론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많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갈라디아서의 상황과는 반대입니다. 실제 우리가 고민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믿는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뒤로 호박씨를 까는" 경우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위 믿음에 행위가 따르지 못하는 "야고보적" 문제이지, 믿음이 무색할 정도로 행위에 집착하는 "바울적" 상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율법주의적" 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해본 율법주의들이란, 정말 율법을 잘 지켜서 그것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말씀공부 등의 도드라진 항목들을 놓고 그것으로 신앙의 척도를 삼는 사람들, 하지만 타인을 향한 따스한 동정심과 사랑보다 엄정한 판단과 냉정한 심판에 더 빨랐던 그런 사람들어었습니다. 얼핏 "행위"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율법에서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신실함" 간은 "행위"들에는 무관심한 사람들, 곧 예수께서 비판하신 바리새인들의 태도와 흡사한 그런 분류들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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