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갈라디아서-문제의 핵심

예림의집 2017. 6. 22. 08:09

갈라디아서-문제의 핵심


엄밀히 따진다면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행하여 의롭게 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목회서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초에 건실한 신앙을 지키던 성도들이 점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안타가운 이야기입니다. 할례나 절기 준수와 같은 무가치한 계명들에 집착하면서, 오히려 더 중요한 믿음-성령의 삶-을 팽개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성령을 떠나 육체로 기울어지는 어리석음이라 부릅니다(3:3). 생명의 원천인 성령을 버리고 죄가 다스리는 육체의 영영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유일한 통로인 믿음을 버리고, 성령을 매개할 수 없는 "율법의 행위들"에 의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3:2, 5). 따라서 "율법의 행위들"은 정확히 말해 믿음과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순종의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생명을 매개할 수 없는 외면적 조건들 혹은 그 조건을 이루기 위한 "육체적" 규정들에 집착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할례와 절기 준수,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식탁규정 등의 요소들이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는 실제 당시 사회에서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구별해주는 가장 두드러진 정체성의 표지들이기도 햇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의 실수는 이런 외적인 표지들이 마치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지라는 교설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때아닌 열심을 내기 시작햇습니다. 로마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면적 유대인"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롬 2:28). 

물론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외면적 유대인이 되려고 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할례나 무할례나 그 자체로는 무의미합니다(5:6; 6:15). 실제 문제의 핵심은 외면적 유대인이 되겟다는 헛된 열정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믿음의 표현들, 성령을 따를 때 맺게 되는 열매들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룽이 본 본질이었습니다. 곧 성령의 삶을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은 그들이 기다리던 "의의 소망"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의로움의 소망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기다리는 것이며(5:5), 그들의 바라는 성령이란 "성령 안으로 씨를 뿌리고" 또 "성령으로부터 거두게 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6:8). 그래서 바울은 외칩니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 여러분이 이렇게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고 합니까(3:1, 3)?"


한마디로 말해 갈라디아서의 위기는 위선적 영성의 유혹입니다. 물론 이런 갈라디아의 위기는 오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바로 그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믿음의 삶은 피하면서도 여전히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고 싶은 유혹입니다. 역설 같지만, 나 자신을 포기하며 사랑으로 타인에게 종노릇하며 사는 것보다는 한 번의 할례가 매력적이긴 합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그 신앙과는 사오간 없이 위생의 목적으로 같은 행위(포경수술)을 하니깐요. 또한 주일(안식일)은 얼마든지 철저히 지킬 수 있지만, 타인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나의 자존심을 꺾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의 사람들에게 할례나 절기준수나 음식규정 등이 진정한 자기포기의 대체물 노릇을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역시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여러 모양들을 찾습니다. 물론 그 자체로는 나쁠 것도 없는, 아니 오히려 유익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된 신앙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텅 빈 내 영성의 빈자리를 감추기 위한 위장막으로 활용합니다. 교회 생활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이들이라면, 우리 문제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쉽게 수긍할 것입니다. 위선적 영성이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갈라디아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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