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원죄
제 16문에서 18문까지는 인간의 원죄에 대한 정의이다. 제 16문에 “아담의 첫 범죄로 전 인류가 타락하였습니까?”, “아담과 더불어 언약을 세운 것은 아담 자신만을 위하여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까지도 위하여 하신 것이므로 그로부터 보통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인류는 그의 첫 범죄에 참여하여 그 안에서 범죄 하였고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 제 17문에 “이 타락은 인류를 어떠한 지위에 이르게 하였습니까?”, “이 타락은 인류를 죄와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제 18문은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죄 되는 것은 아담의 첫 범죄에 유죄한 것과 근본적인 의가 없는 것과 그의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 이것을 보통 원죄라고 부르며 아울러 원죄로 인해 나오는 모든 실제적인 죄(본죄)들입니다”라고 질문과 대답을 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지배 아래 살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비참하고 어려운 자리에 처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본래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인류의 시조가 범한 죄가 오늘의 우리에게 연결되는 측면과 여기서 오는 비참한 형편을 말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의 형편은 어떠한가?
첫째, 타락한 인간은 죄인의 지위에 머물게 되었다. 죄는 타락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다. 원죄 아래 있는 사람은 모두 죄인인 고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된다면 갓 태어난 영아는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 함으로 죄인의 지위에 서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비참하기 그지없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 생긴 것은 수치와 공포심이다.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는 죄인의 비극의 상징이다. 죄인의 비극을 설명하자면 먼저, 죄를 보는 눈이 밝아졌다(창3:7). 그들이 눈이 밝아졌다고 하였는데 이는 죄가 그들의 육신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자기들의 무죄 상태를 상실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곧 영혼의 벌거벗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고, 거룩한 위치에서 이탈되었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수치심이다(창3:7).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된 것이 수치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모든 영광과 기쁨을 빼앗겼다. 그들을 보호해 주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받았다.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졌고 그들의 양심까지도 그들을 비난하는 형편이어서 이 수치를 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였는데, 그 대표적 경우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의 수치를 가리려는 행위였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여 공포에 사로잡혔다(창3:8). 범죄 한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은 죄의 책임을 느끼는 양심의 공포 때문이었다. 공포의 결과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이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즐겁게 뛰어나갔으나 얼굴을 피하여야 하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죄에 따르는 두려움, 하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공포, 양심의 가책, 죽음의 엄습 등 이러한 모든 것이 죄 지은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비참한 것인데, 이는 죄의 결과이다.
둘째, 타락한 인간은 비참한 지위에 이르렀다. 소요리문답 제 19문은 “타락한 인간의 비참이 무엇입니까?”란 질문과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진노와 저주 아래 놓였습니다. 이로써 이생에서 온갖 비참과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답한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비참한 상태에 이른 것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상태(갈3:10)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실 때에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외치는 것을 볼 때 죄의 비참함이 얼마나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비참함에 대해서 자세히 논해보자. 먼저, 심령의 비참함이다. 타락한 인간이 겪는 심령의 비참이란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진 점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던 위치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것은 타락의 결과요, 심판의 조건이 된다. 하나님의 발자취 소리만 듣고도 무서워서 숨고, 서로 잘못을 전가하는 아담의 비참한 모습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아담이 죄를 아내 하와에게 떠넘기려함으로써 자기의 잘못을 정당화시키려는 태도는 인간의 비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범죄 한 아담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으나 하나님은 아담을 꾸짖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회개시키려고 그를 찾으셨다. 그러나 아담은 도리어 자기의 잘못을 완화시켜 보려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배역 무도한 죄를 더한다. 아담은 내가 범죄 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여자 때문이라고 도리어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다.
다음으로, 육체의 비참함이다. 범죄 한 아담은 육체적으로 비참하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땅이 저주를 받았다(창3:17). 기름진 땅에서 엉겅퀴가 나기 시작하였다. 훌륭하고 풍요롭고 복된 에덴에서 쫓겨나서 저주의 땅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 때문에 만물의 탄식이 계속되었다(롬8:20-21). 노동의 고통이 따르게 되었다(창3:119). 인간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만 했다. 전에도 노동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힘들고 고되고 저주의 노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죽음이 왔다(창3:19). 아담은 “흙으로 돌아가라”는 선고를 받았다. 흙에서 취하여 만든 인간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창3:16). 또한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종속되는 종속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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