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장례

예림의집 2015. 7. 14. 09:04

장례

 

먼저 구약에서의 죽음의 의미를 살펴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7)

창세기 217절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죽음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 즉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내려지는 벌의 의미로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서, 이는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신약에서의 죽음의 의미도, 구약에서의 죽음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에서의 죽음을 이해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육체적인 죽음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적인 죽음,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죽음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문제는 장례이다.

장례는 크게 매장과 화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막벨라 굴에 장사 되었고, 신명기 34장의 모세 또한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다고 기록 되어져 있다. 예수님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바위굴에 안치되셨다.

성경에서 화장은, 부정적인, 심판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모세에게 반역했던 고라, 다단은 불로 태워 진다. 심판의 의미로 비춰지고 있다.

매장이 타당하냐, 화장이 타당하냐 라는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현재 국가의 상황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별히 좁은 국토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매장보다는 화장이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묘지가 계속해서 조성된다면, 국가적 손해는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육체적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영원한 삶을 허락하실,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주님을 믿는다면, 매장과 화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유교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 나라에서, 부모와 가족의 시신을 화장한다는 것이, 마음에 큰 짐이 될 수는 있지만, 부활의 하나님을 믿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이 부활 신앙을 믿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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