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대하여
옛날과는 다르게 오늘날 중독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서스럼 없이 다가오고 있다. 커피 중독, 게임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등 수 많은 중독들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친숙하다면 친숙한 이 중독이 우리의 삶에 과연 괜찮은 것일까? 성경을 보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중독에 대한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독이란 어느 하나에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그리고 십계명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으며, 하나님 외에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라고 이야기를 한다. 중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님보다 다른 어떤 것에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있다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우상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은 자기가 빠져있는 것을 섬기는 우상숭배와도 같다.
두 번째로 중독은 탐심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중독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지길 원하고, 더 하길 원하며 주변을 돌아본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상태에 빠져있는데, 이 주체할 수 없는 탐심 역시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욕심을 가지지 말라고, 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탐욕의 연장선상에 있는 중독 역시 욕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 번째로 중독은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변질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빈 공간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을 채우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그 빈 공간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인데, 예수님으로부터 흘러오는 마르지 않는 샘물로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인데,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공간을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게임으로 그 공간을 채우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약으로, 또 다른 이들은 도박이나 섹스로 채우려고 하는데 이러한 시도들은 다 헛되고 헛된 것들이다. 그것들로는 그 빈 공간을 채울래야 채울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결국 계속 채울려고 하다보니 중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고 본다. 마음의 공허함으로부터 나오는 중독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중독에 대하여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세 번째에서 이야기했던 것에 심히 공감하는 바이다. 나 역시도 삶 가운데 견디기 힘든 일들을 겪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주님을 붙잡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약함 때문에 붙잡지 못하고 게임 중독에 빠져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게임을 몰두해서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문득 돌아보게 되었는데 힘든 일로 인해 더 크게 부각되어있는 이 빈 공간을 게임으로 채울려고 했었지만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는구나를 느끼게 되었었다. 그래서 회개를 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갈 수 있었는데 중독은 마음의 공허함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중독이 우리의 삶 가운데 너무나도 친숙한 것은 사실이다. 여러 중독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있고,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성경으로 중독을 본다면 중독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며, 한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고, 죄가 될 수도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 삶 가운데 중독되어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독된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려놓고 더욱 주님께 나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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