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현대 전쟁과의 관계
(1)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 “만들어진 한 자루, 한 자루의 총, 진수시킨 한 척 한 척의 전함, 발사한 한 대 한 대의 미사일은 … 굶주렸으나 먹지 못한 사람들, 춥지만 옷을 입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도둑질한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전쟁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사건이며, 이 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권리가 착취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살아갈 권리가 있고 생존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부당한 사회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전쟁은 이 모든 소리를 침묵하게 만들며 가난하고 억압 받는 자들을 전쟁의 제물로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 이러한 전쟁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할까. 구약에서의 전쟁에 관해 얘기하면, 필연적으로 가나안 성전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는 없다. 이 전쟁은 기독교의 대적들에게는 예수님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에 대한 기념비적 사건이다. 가나안 전쟁은 성전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가나안 백성들을 모조리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가나안 백성의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창 15:16)로부터 시간이 흘러 하나님은 그 족속을 진멸하시기를 명령하신 까닭이다. 이처럼 여호와는 “용사”로 묘사되시기도 하신다.(출 15:3-4) 하나님은 이처럼 전쟁과 관련한 일도 주관하시며, 특별히 그의 백성들에게 전쟁을 명령하시거나 아니면 심판의 수단으로 전쟁을 사용하시곤 하셨다. 하나님에게 그러면 전쟁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3) 구약 성경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창 9:6)이라고 가르치며 사람들의 피는 땅에서 신원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욥 16:18) 전쟁 규칙은 여타의 주위 나라들과 매우 달랐다. 이러한 가르침은 신명기 20:1-20의 모세의 가르침에서 나타난다. 이 전쟁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수행된다. ➀ 여호와의 전쟁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한다.(20:1, 이하 신20) ➁ 전쟁 준비 과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선포한다. (2-4) ➂ 군대를 소집하고 지도자를 임명한다.(5-9) ➃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들은 항복하면 살려두고 거절하면 진멸하는 것이었다.(10-17) 또한 기업으로 주시는 땅의 이민족은 반드시 진멸시켜야만 했다. ➄ 이 모든 진멸의 원인은 그들에게서 우상 숭배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➅ 그리고 그 전쟁을 하는 도중에도 그들은 과목을 남겨 둠으로써 차후에 먹을거리들을 생각해야만 했다. 즉 전쟁 후에도 살아갈 방도를 만들어야만 했다.(18) ➆ 그리고 기구들을 충분히 사용해야 했다.(20)
(4) 이러한 이스라엘의 전쟁은 이방 전쟁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였다. ➀ 이스라엘은 땅을 넓히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고 허락도 받은 적이 없다. 이는 이스라엘에 군사적, 영토적, 약탈물로서 스스로의 영광을 드러낼 필요도, 해서도 안 되는 까닭이었다. ➁ 그들은 전쟁에서 하나님에 의해 이기기도 지기도 한다는 것을 믿었고, 무기가 아니라 주님만을 의지해야만 했다. ➂ 신 20에 근거하여 군대를 줄이고 가장 젊고 적절한 남자들만을 전쟁에 보내야 하도록 되어있으므로, 평화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다.
(5) 이러한 전쟁은 성경적으로 볼 때, 즐겨 사용되는 방식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1)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인용하면서 말하였던 것과 같이, 전쟁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가장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이다. 그들의 권리의 차익으로부터 전쟁의 도구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관심이 언제나 가난한 자, 눌린 자, 억압 받은 자들에게 향하여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 전쟁은 어느 아주 특별한 경우, 예컨대 신명기 본문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우상숭배의 위협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 부분적이고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6) 이를 위하여 어거스틴은 6개의 정당한 전쟁 이론을 만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 ➀ 정당한 명분 ➁ 정당한 의도 ➂ 마지막 수단 ➃ 공식적인 선전포고 ➄ 제한된 목표들 ➅ 균형 잡인 전쟁 수단 ➆ 비전투원의 면제. 이러한 방식 속에서 전쟁은 매우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언제나 전쟁으로 인하여 손상되는 정의가 전쟁으로 인하여 손상되는 정의보다 적을 때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가난한 자들의 생존권을 지킬 뿐 아니라,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인류가 안전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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