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개요|| 시가서>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 할 정도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다. 사탄은 욥이 모든 것을 가졌고, 풍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모든 소유를 빼앗으시고, 질병도 갖게 하셨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온 세 명의 친구들이 욥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욥의 세 친구들과 엘리후는 욥이 죄악을 저질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회복해야 복을 받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라고 조언한다. 욥은 위로는커녕 도리어 자신을 조롱하고 정죄하는 세 명의 친구들을 향해 화를 낸다.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고통의 이유를 가르쳐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향해 눈을 돌리며 그분을 보기 원한다고 대답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한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권능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크심을 보이신다. 욥은‘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욥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셨다.
잠언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고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어리석은 자는 슬기롭게, 지혜로운 자는 이 말씀을 듣고 학식을 얻어 지략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지식은 영혼을 즐겁게 하고 악한 자에게서 건져내며, 선한자의 길로 인도하고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여호와를 공경하며 악에서 떠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남에게 베풀 힘이 있을 때 마땅히 도움을 받을만한 이웃에게 베푸는 것을 아끼지 말 것과, 공동체내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해준다. 계속해서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여 지혜를 얻는 것이 복됨을 알려주고 있다. 솔로몬의 잠언 외에도 하나님말씀에만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아굴의 잠언과 르무엘 왕을 훈계한 잠언이 이어진다. 비유법과 의인법과 같은 수사기법이 쓰여 이해를 돕고 있다.
전도서는‘헛되다’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사람이 가진 지혜, 즐거움, 재물, 부요, 존귀 그 모든 것은 다 헛된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죽음 앞에선 다 똑같고, 햇빛아래에서 수고한 모든 것 또한 헛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며 그 때에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지혜는 무기보다 나으며 지혜자의 말들은 은혜롭지만 우매한자들은 말이 많으며, 자신들의 수고가 자신을 피곤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 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다 알지 못함을 덧붙여 이야기해주고 있다. 또 청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교훈을 주고 있다.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전도서를 마무리 짓고 있다.
욥은 거의 항상‘인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설교시간에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욥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도 욥이 정말 하나님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동아리모임 설교시간에서, 또 내가 직접 욥기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욥은 하나님께 원망 많이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여기신 사람이지만 인간은 역시 연약한 존재임을, 인간은 완벽한 의인이 될 수 없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난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욥의 모습에서 의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인내’라는 것이 무조건 참고 원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서 고난을 견디며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떠나지 않은 점이 욥기에서 말하는 진정한 인내의 모습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부분에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한 부분에서 정말 인내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의인들은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많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욥기의 말씀을 보고서도 알 수 있듯이 의인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 악인, 악한일, 악한 상황들이 의인들에게 고난을 주는 요소가 된다. 잠언에‘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악인이 주는 고난과 상황들은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아니라 다 알고계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 오면‘하나님! 어찌하여 나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십니까?’라고 불평을 한다. 혹은‘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하나님이 나의 고난을 외면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다.‘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당한 때에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며, 견딜 수 있는 고난을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도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귀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잠시 근심할 수 있으나 후에 더 큰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한다.
전도서를 읽으면서 자꾸‘헛되다’라는 말을 읽으니 모든 일에 대해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고 정말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된 일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도서 결론 부분에‘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 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 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나에게 답변이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헛된 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한 과정이나 결론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사람의 평가와 다를 수 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며 일을 하면 결코 헛되지 않지만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일을 하면 헛된 일이 되고 만다.‘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탄식하느니라’라는 잠언 29장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의인들은 그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일을 하게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지혜로운 길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 한 기사가 있었다. 교회를 다니는 가정이었는데 어머니가 딸의 죽음 이후에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을 보았다. 딸의 죽음이라는 고난이 하나님을 떠나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욥기를 읽는 동안‘내가 욥처럼 고난을 당한다면 하나님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욥이 당한 고난 중에 딱 하나라도 겪는다면 하나님을 떠나 버릴같은 믿음이 약한 나의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에 욥기에 관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중에 가장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설교가 있었다.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 묻고 매달리지만 하나님의 때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기 보다는 내가 가장 편할 방법의 내용들을 나열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소원 들어주는 요술램프가 아니다. 나의 주인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분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난가운데 있더라도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이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고난은 하나님의 방법이고 하나님의 때임을 기억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는 내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
나는 말이 많고, 속도도 빠르다. 그래서 실수도 많아지고 후회하는 일도 많아진다. 중·고등학교 때 말로인한 실수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말을 천천히 하고, 한번 머릿속에서 생각해보고 말하기로 결심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대학교 와서도 말로인한 나의 실수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잠언 말씀을 보고 다시 한 번 마음잡았다. 잠언에‘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나의 혀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나무가 되도록 하고 싶다. 특히 교사로 섬기고 있는데 나의 말실수가 아이들의 믿음을 다치게 하지 않기를 원한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는다고 하였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명나무가 자라나고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순간순간 조심히 행동해야겠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나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도 닮게 만들어졌고,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지음받았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믿는 방향과 하나님께 죄를 저지르는 방향으로 나타낼 수 있다. 전도서 7장 29절에‘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 이니라’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의지를 죄의 방향으로 선택하면서 하나님의 형상과는 점점 멀어진다. 하와가 사탐의 꾀에 넘어가 죄가 시작되었듯 꾀로 인해 죄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하기도 전에 먼저 3번이나 아담을 찾으셨다. 그리고 자꾸만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선지자를 보내시고, 온 인류를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자꾸만 내 자유의지를 꾀를 짓는 방향으로 나타내어 죄를 짓지만 이런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나를 다시 회복시켜주시고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나는 내 자유의지를 꾀를 지어 죄의 방향으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닮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정직하고 거룩한 삶을 살 것이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구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에 관하여 (0) | 2015.07.14 |
---|---|
성전에 관하여 (0) | 2015.07.11 |
구약의 가난한 자의 문제 (0) | 2015.07.07 |
“시가서“ (0) | 2015.07.07 |
에스라-느헤미야 (0) | 201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