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서“
시가서는 찬양시와 문학작품들입니다. 시가서는 다섯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담고 있는 욥기, 말 그대로 찬양의 책인 시편, 하나님의 지혜를 담고 있는 잠언,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아가,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촉구하는 전도서. 이렇게 다섯 작품을 함께 말해 시가서 라고 합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저희가 배운 내용들과 ‘최신구약개론’ 이라는 책을 참조하여 책들을 요약하고 그 속에서 새롭게 알게 된 점과 나의 삶에 적용할 점을 쓰고자 합니다.
먼저 욥기의 핵심적인 내용은 고난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고난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욥기는 인간이 직면하는 가장 당혹스러운 문제들 중 하나, 즉 하나님이 공의로우신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욥기는 아주 감동적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책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렵고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책들 중 하나입니다. 욥의 시대적 배경은 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매우 비슷한 이방인의 족장입니다. 욥의 거대한 부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가축들과 그가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의 수를 통해 말해지고 있습니다.
시편은 구약의 다른 책들보다 기독교인들의 주목을 더 많이 받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편에 대한 인용이나 언급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시편이 구약의 심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고무적입니다. 여기에 스며있는 경건성과 헌신적인 분위기,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등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들의 정서에 와 닿습니다. 시편의 역사적 배경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다루기 어렵습니다. 하나는 하나의 단일한 저작이라기보다, 하나의 모음집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개별적인 시들 그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체적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많은 기독교들에게 있어서 초점의 대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잠언이 인간의 성격 및 행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도움들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언의 Proverb라는 뜻은 격언 이라는 뜻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서는 모음집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쓰였습니다.
전도서는 마치 우리 시대를 염두에 두고 쓰인 책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한 우리들의 하나님에게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될 때 전도서에서 도움을 구하기도 합니다. 전도서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비참과 허무의 시대였으며, 솔로몬 시대의 영광은 사려졌으며 이스라엘의 죽음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불의와 폭력이 현존하고 있으며 이방인에 대한 폭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은 시대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아가서 책의 해석의 역사는 매우 매혹적입니다. 중세에는 이 책을 인간의 성과 연결시켜서 읽는 사람은 아주 적었습니다. 이런 해석은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접근방법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아가서는 희곡인지 사랑의시인지 두 가지로 장르가 구분됩니다. 아가서는 결국 노래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하나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최상의 결론은 아가서가 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는 시들의 모음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욥기는 지혜 문헌인데 지혜 문학은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욥기는 고난의 문제, 특히 어떤 사람의 경건과 관련된 고난의 문제는 꼭 성경의 종교가 아니더라도 읿나적인 모든 종교에 있어서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욥기는 독보적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욥기 이전의 어느 문헌도 욥기에 모범을 제시해 주지 못했으며, 모작들을 포함한 그 이후의 어느 문헌도 그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욥기의 장르는 독특성입니다. 욥기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역사하시는 방법이 정당한가를 따지는 신정록적인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장르에 대한 좀 더 나은 명칭은 ‘지혜 논쟁’ 일 것입니다. 또한 욥기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의 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성이 있는 지혜 문학입니다.
정경시대에 시편은 하나의 동적이고, 증가되고, 변화되는 책입니다. 각각의 시들은 이스라엘의 공적인 예배에 언제나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구체성을 띠고 있지는 않습니다. 표제들은 비록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비록 정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책입니다. 시편의 세 개의 장르는 각 시에 표현된 감정에 따라 구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의 찬양시, 애가, 그리고 감사시 입니다. 이 세 장르는 예배자 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이 하나님 및 자신이 처한 상황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 찬양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멀리 게시는 듯이 느끼고 예배자가 고통을 경험하고 있을 때에는 애가를 불렀고, 애가가 응답을 받았을 때에는 이스라엘은 감사의 노래로 반응했습니다.
잠언서는 뚜렷한 윤곽을 갖고 있는 책입니다. 잠언서의 첫 부분은 긴 지혜 강화들을 담고 있는 반면에 후반부는 핵심을 찌르는 경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개의 표제가 이 본문의 잠언들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중 두 번째 표제는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이 본문의 전승에 기여를 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조평행법이라는 양식의 사용은 이들 잠언의 중심 주제들 중의 하나, 즉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인 악인의 대비라는 주제와 잘 들어맞습니다.
전도서는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이 책은 코헬렛의 사상의 몇 가지 주제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 짧은 프롤로그로 시작되어 코헬렛의 긴 독백으로 이어지며 간략한 에필로그로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의 본문에서는 코헬렛은 일인칭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코헬렛이 에필로그 부분의 화자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솔로몬 저작권의 문제가 제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다른 많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아가서는 희곡과 사랑의 시로 장르가 나뉩니다. 특히 아가서의 장르를 사랑의 시로 보는 견해는 아가서와 고대 및 현대의 사랑의 시 사이의 유사성을 추적한 비교적 최근의 연구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가서의 신학적인 메시지를 다루기 이전에 알아야 할 것은 이 책과 결혼 간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 어디에도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결혼한 사이라는 말은 없지만 정경적인 맥락에서 볼 때 남녀 간의 강렬한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이 시는 결혼한 사이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가서의 포함된 5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알고 있었던 점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된 점도 많았습니다. 특히 문학적인 분석 쪽으로는 모르는 면이 많았지만 참고문헌을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가서들을 통해 내 삶에 적용할 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쓰고자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중에 제일 저에게 와 닿은 것은 잠언입니다. 잠언의 모든 내용은 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하지만 잠언뿐만 아니라 욥기 시편 전도서 아가서에서도 내 삶에 적용할 점이 어떤 것 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욥기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지혜의 근원이시며,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식으로 지혜를 펼치지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왜 제가 고난을 겪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나 그러한 고난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통찰력을 얻기를 원해야 합니다. 욥기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지혜의 힘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욥기를 읽을 때에는 무고하게 고난을 받으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함을 알아야 욥기를 바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 가지의 장르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찬양시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환희가 넘치는 찬양을 알 수 있으며 이 시들은 시인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동참하도록 부르는 복음 전파적인 찬양임을 알아야합니다. 시편은 너무나도 길고 시 한편마다 다양한 뜻과 예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수요예배 시간에 시편을 배웠었습니다. 수요예배를 참석하면서 시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그저 긴 책이 아닌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시편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찬양도 많습니다. 그러한 찬양들을 항상 부르면서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내 구주로 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잠언. 전 어렸을 때 잠언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책에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서도 잠언의 나오는 한 말씀이 저에게 매우 찔림을 주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잠언 6장 10~11절말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새기면서 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미루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예수님이 주신 이 말씀이 딱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 외에도 잠언에서는 배워야 하는 말씀이 넘치고 넘칩니다. 그래서 잠언은 읽으면서도 재밌기도 하지만, 저의 삶에 적용할 말씀들을 하나씩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전도서 1장 1~18절에 나오는 이 말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의 말씀은 솔로몬의 전도서의 출발을 말하며 매우 도전적인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의 일생을 헛됨 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수고를 하지만, 그 모든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땀을 흘리며 수고하지만 세상에는 특별히 의미 있을 만한 진보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결국 전도자는 세대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동일한 일을 반복되는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헛된 인생을 의미 있는 인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말씀을 믿으며 전도서를 읽으면서 내가 사용하는 1분 1초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용하여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가서의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이 사회의 타락된 성을 어떻게 하면 올바로 잡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합니다. 아가서를 통할 뿐만 아니라 이 문란한 사회를 어떻게 올바로 잡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항상 합니다. 나부터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을 올바로 생각해야 나 하나로 이 사회도 바꿀 수 있을 꺼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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