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창조/타락/구속(요약편)

예림의집 2014. 9. 19. 18:35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1. 세계관의 정의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

1) 사물들 : 우리의 신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하나님, 성경도 포함)

 

2) 신념(belief) : 인식적 주장(일종의 지식을 주장한다), 신조(credo), 확신(conviction)

※ 신조(credo) -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논증할 뿐만 아니라 돈의 지출이나 고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옹호하고 주장하려고 하는 헌신적인 믿음 (≒신념)

 

3) 기본적 신념들 :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궁극적인 문제들, 즉 일반 원칙들

 

4) 틀(framework), 유형(pattern) : 기본적 신념들 간의 일관성

※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관성 있는 하나의 유형을 이루고자 하는 경향이다.

 

2. 세계관의 역할

1) 삶의 인도자 기능 : 나침반, 약도, ...

※ 심리적, 경제적 자기 욕망과 세계관의 차이점 - 세계관의 인도 기능을 제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관을 통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2) 세계관과 삶의 비일관성 :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경향, 즉 키잡이가 제 항로를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행동과 신념간의 불일치가 일어나면, 둘 중 하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3) 세계관과 행동의 관계를 파악하는 다른 관점

① 우리의 행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계급이해'이다. (마르크스주의자)

② 세계관은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③ 우리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환경의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4) 세계관과 행동의 관계를 규정하는 문제 자체가 세계관의 문제이다.

※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 기준이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며, 인간의 행동 양식에서 주도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3. 세계관과 성경의 관계

1) 우리의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형성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일부 영역에만 제한시키도록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2) 성경의 핵심적인 목적 : 가르침 (롬15:4) - 기독교의 근본적인 특징

 

3) 대부분의 기독교파들이 구분하는 '두 영역'

① '거룩한(종교적)' 영역 : 신학, 교회관, 신관, 개인적 도덕성, ...

② '세속적' 영역 : 철학, 정치, 경제, 예술, 학문, ...

→ 성경의 가르침을 종교적 영역으로 제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4) 성경은 우리의 삶과 세계 안의 모든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성경의 가르침은 일상적인 세속적 문제들도 포함한다.

 

5) 신학의 기본적 개념들이 우리 세계관을 구성하도록 해야 하며, 성경과 그 가르침을 바로 지금의 문화 전체와 연관시켜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4. 세계관, 신학, 철학

1) 범위가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

 

2) 세계관은 전(前)과학적이지만, 신학과 철학은 과학적(≒이론적)이다.

※ 신학과 철학은 훈련받은 전문가들의 분야이지만, 세계관은 지혜나 상식의 문제이다. 즉, 신학과 철학은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다듬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세계관, 신학, 철학의 차이 ('구조'와 '방향'의 관점에서)

① 철학 : 피조물들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관한 학문 (사물들의 구조에 초점을 둠)

② 신학 : 세상을 감염시키는 악과 그 치료책에 관한 학문 (사물들의 방향에 초점을 둠)

③ 세계관 : 사물들의 '구조'와 '방향'의 문제에 똑같이 관심을 갖는다.

→ 신학은 인본주의적일 수 없고, 철학은 성경적일 수 없다는 것은 오류이다.

 

5. 개혁주의적 세계관의 특징

※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정의 (헤르만 바빙크)

"성부 하나님은 그가 창조했으나 타락한 세계를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화목케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것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신다."

 

1) 개혁주의적 세계관은 신앙고백에 사용되는 모든 용어들의 범위를 '보편적'이고, '포괄적'이며, '우주적'으로 이해한다. (통합적인 조망)

→ 다른 기독교 세계관은 각 용어들의 범위를 이원론적으로 제한한다. [ 3-3) 참조 ]

 

2) "은혜가 자연을 회복한다" : 회복 = 구속 = 재창조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속이 원래의 선한 창조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 다른 기독교 세계관은 은혜가 자연 이외의 어떤 것을 포함한다고 한다.

2. 창조

 

[1. 창조]

 

1. 창조의 정의

1) 창조의 이중적 의미

① 창조 행위 :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의 행위

② 창조 질서 : 창조의 산물인 우주(cosmos, 헬.kosmos)

 

2) 섭리 : 세계를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역 (참조. 벧후3:5,7)

※ 이신론(理神論) : 우주라는 시계가 일단 그 태엽이 감겨지고 그 시계추가 흔들리기 시작한 다음에는 신의 창조 행위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는 이단(異端)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9:6)

3) '창조(만들다)'와 '섭리(다스린다)'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이다.

※ 창조 질서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4) 창조의 정의 : 창조주의 주권적인 행위와 창조 질서의 상관 작용

 

2. 창조의 법

1) 법(law)의 정의 :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하시는 행위 전체 [ 1-4) 참조 ]

 

2)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의 어떤 측면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용어들이 있지만, 어느 것도 그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권능, 호흡, 말씀, 지배, 손, 계획, 의지, 부르심, 법도, 규례, 율례 등

 

3) '창조'라는 용어의 난맥

① 일반적으로 창조된 사물을 의미하므로 범위가 너무 넓다. (피조물은 법의 대상이다.)

② 통상적인 용법에서 하나님의 섭리 행위를 배제하므로 범위가 너무 좁다.

 

4) '지혜'라는 용어의 난맥

- 성경에서는 '인간의 지혜'를 가리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5) 같은 의미의 표현들 :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 '하나님의 외부 사역(opera ad extra)' 등

 

6) '법'이라는 용어의 이점

① 성경상의 중심 용어이다.

② 주재자, 즉 절대적인 주와 왕이신 하나님께로 주의를 집중시켜 준다.

※ 이 용어는 '창조'와 관계되는 법으로서 태초부터 있었던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킨다. 따라서 창조와 재창조, 즉 법과 복음은 구별해야 한다.

 

3. 자연의 법과 규범

※ '법'의 적용 범위는 창조된 실재의 전 영역을 포함한다.

 

1) 자연의 법 : 물체와 동식물 영역의 규칙적인 질서 (비인간적 영역)

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법을 부과하신다.

② 여러 가지 '자연 과학'에서 발견되는 모든 '자연 법칙'들을 포함한다.

③ 필연적이고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자연에게는 명령 수행의 책임이 없다.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시147:18-19)

3) 규범 : 문화와 사회를 위한 하나님의 법 (인간적 영역)

①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법을 부과하신다. (매개적)

②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관계의 광대한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③ 주어진 '자유' 안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사람은 인격적인 책임을 진다.

※ 우리는 지금도 규범을 실정(實定)하고 삶 속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 하나님의 법에는 자연의 법과 규범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 세속화된 서구의 지성은 하나님의 법을 자연 법칙으로 제한하려고 하고, 모든 영역에 대하여 신적인 지배를 인정하는 다른 세계관들은 오히려 세계 질서에 종속되어 있다.

 

4. 일반법과 개별법

1) 일반법 : 다양한 상황에 적용되는 일반 규칙

① 자연의 법 - 보편적으로 유효한 자연 현상

② 규범 - '정의를 실천하라', '믿음을 가지라', '청지기가 되라' 등

 

2) 개별법 :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개별적인 명령

① 자연의 법 - 머리카락이나 참새가 떨어지는 등의 개별적인 자연 현상

② 규범 - '소명'이나 '인도'라고 부르는 것들을 통한 하나님의 간섭

※ 창조의 '법'은 강제이면서(자연의 법) 간청이며(규범), 그 타당성의 범위는 전체적이면서(일반법) 또한 개별적이다(개별법).

 

3) 일반법과 개별법의 구별에서 주의할 점

① 법은 일반적으로 '개별적인 명령'을 포함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법은 포함한다.

② 법의 보편적 타당성은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들을 다루실 때의 불변성과 신실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반법과 개별법 사이에 긴장은 없다.)

 

[2.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말씀]

 

1. 창조의 기초

1) 창조의 구별

① 제1창조 : 무(無)로부터의 창조 (창1:1)

② 제2창조 : 지상적 실재의 정교화와 완성 - 엿새 동안의 창조

※ 제3창조 : 인간에 의한 땅의 사회적, 문화적 발전 ('문화 명령'; 창1:28)

 

2) '하늘'과 '땅'의 의미

① 넓은 의미 : '하나님의 보좌와 천사들이 있는 영역'과 '지상적 실재' (창1:1)

② 좁은 의미 : 지상적 실재에 속한 '궁창(창1:8)'과 '뭍(창1:10)'

 

3) '혼돈하고(창1:2)'의 의미 : 지상적 우주의 질서를 향한 첫 번째 단계를 묘사한 것으로, '모양이 주어지지 않았다(unformed)'는 뜻이다.

→ 창1:2의 '혼돈'은 '무질서'나 '왜곡(deformed)'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사람의 범죄 이전에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계에 왜곡이 없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 (사45:18)

2. 제2창조와 '말씀'

1) '제1창조(창1:1)'의 선포 이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초점은 즉시 '땅(넓은 의미로서의 땅, 즉 지상적 우주 영역)'에 맞추어진다. (창1:2)

 

2) 엿새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적 선언들은 '제2창조', 즉 지상적 영역을 다듬고 여러 가지를 갖추게 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우주로 만드신 작업을 가리킨다.

※ 신구약의 여러 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제2창조'를 밀접하게 연결짓고 있다. (예. 시33:6;벧후3:5;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 (히11:3)

3. '말씀'의 여러 가지 의미

1) 하나님의 창조(히11:3), 섭리의 보존(히1:3), 다스리심(시147:18;148:8)

※ 이 경우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법'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But...

 

2)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죄와 은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3) 성경 자체

 

4)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4. 그리스도와 '말씀'

1) 만물의 창조 - 요1:1-3의 이해

① '태초에(1,2절)'라는 어구는 '만물이 지은 바 된' 창1:1의 '태초에'를 가리킨다.

② 창조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3절)' 일어났다.

※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보자'이시다. (참조. 골1:16;히1:2;2:10)

③ 그리스도에게 '말씀'이라는 칭호를 붙임으로써, 만물의 창조라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④ 이 '말씀(1절, 창세기 1장의 명령들)'을 '무로부터의 창조'와 구별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최소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핵심에 있음을 알려준다.

 

2) 창조계의 보존 (골1:17;히1:3)

 

3) 그리스도는 창조의 '법'이 적용되는 모든 영역에 깊이 참여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와 재창조(=구속) 모두의 중보자이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1:15-17)

...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3)

5. 창조의 영역

1) 창조를 법(명령)과 우주(복종자)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그 범위를 자연 과학의 영역(물리적 영역)에만 국한시키지 않을 것이다. 창조의 법은 인간사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고, 그 어떤 것도 창조된 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이 없다.

 

2) 비물리적인 영역에 대한 성경의 예

① 딤전4:3-4 - 결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에 포함됨 - 창2:24)

② 롬13:1-2 - 모든 권세 ('하나님의 정하신 바', '하나님의 명')

③ 벧전2:13 -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헬.ktisis='창조계')

→ 이 구절들이 창조 영역의 보편적 범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3) 창조 질서의 적용

① 사회적, 제도적 영역 - 가정, 교회, 기업체, 학교, 국가 등

② 문화적 영역 - 예술, 기술, 교육 등

③ 인간의 정서, 성(性), 언어, 영적 은사 등

※ 이 세상에 임의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주어진 하나님의 법에 종속되며 모든 것이 피조적인 것이다. 모든 것이 창조 질서에 따라야 한다.

 

[3. 창조계의 계시]

 

1. 일반계시

1) 일반계시 : 창조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 (시19:1-4;행14:17;롬1:19-20)

※ 롬1:20에 나오는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의미상으로 '창조의 법'에 가까운 표현이다. '창세(헬.ktisis)로부터'에 사용된 전치사는 보통 '그 이후(since)'라기보다 '에서부터(from)'를 의미하므로 '창조계로부터'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19-20)

2)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① 율법 :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의 법을 구약의 이스라엘을 위해 표현해 주신 것

② 양심 : 행위의 규범적 표준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 (롬2:14-15)

→ 이것은 '자연인'이 갖고 있는, 죄에 감염되지 않은 어떤 본유적인 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배교한 인간의 감각 위에 자신의 규범의 상기물을 새겨 넣으시는 주재자 창조주의 손가락을 가리킨다.

 

2. 창조와 지혜

1) 지혜 : 창조의 법과 규범적 창조 질서로 이해할 수 있다.

① 법의 측면 : 우주의 구조 속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계획, 질서

② 복종자의 측면 : 창조적 질서에 대한 동조 혹은 순응 (인간의 지혜)

 

2) '창조의 법'으로서의 지혜

① 잠언 앞부분 몇 장에 나오는 한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는 법의 측면에서의 지혜로 이해할 수 있다. (잠1:20-33;2:16,20;4:8-9;8:1-36;9:1-12)

② 지혜는 하나님이 창조 작업을 하시면서 이용하셨던 '표준자'였다. (잠8:22-30)

 

3) '규범적 창조 질서'로서의 지혜

① 지혜는 우리의 순응을 호소하며 그 잔치에 초청한다. (잠1:20-33;9:1-6)

② 창조계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지혜)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현실적인 지혜, 즉 가정 생활, 농사, 상업, 경영 등에서의 창조 질서를 발견하게 한다. (이는 잠언, 욥기, 전도서 등의 '지혜서'와 사28:23-29와 같은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참조. 잠1:7;9:10)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 (렘10:12-13)

3. 창조의 법의 인식 가능성

1) 창조 질서가 창조계로부터 알려질 수 있다(일반계시)는 사실은 학문이나 일상 생활에서 모든 인간 이해의 기초가 된다.

※ 창조의 법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세계관이 달라진다.

 

2) 창조의 법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잘못된 주장 (인식 불가론)

; 창조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불변성을 무시하거나 우리의 분별 능력을 회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3) 영적 분별력 : 우리에게 요구되는 영적 지혜와 이해력 (골1:9-10;롬12:2;엡1:17-18;히5:14)

① 개별적인 측면 : 사적인 생활 - '인도', '소명', ...

② 일반적인 측면 : 공적인 생활 - 예술, 경제, 정치, 문화, 사회적인 사업, ...

※ 하나님의 법은 모든 곳에서 원칙적으로 창조계의 계시를 통해 알려질 수 있다.

 

4. 특별계시 - 성경

1) 성경은 죄와 구원의 은혜에 대한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참조.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5)

2) 성경과 일반계시는 모두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준다.

→ 우리는 개별적인 '인도'의 문제를 단지 성경구절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3) 성경과 일반계시 사이의 관계

①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안경'이다. (존 칼빈)

② 성경의 '빛' 속에서만 우리가 창조계의 규범성을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다.

③ 성경은 희미하게 지각되는 창조계의 상징 언어에 대한 명쾌한 언어 주석이다. (언어 계시)

④ 성경은 청사진 읽는 법을 잊어버린 무능력한 건축공에게 준 설계자의 설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2-13)

5. 그리스도와 '법'의 완성

1) 그리스도의 도래는 법의 완성을 포함한다. (마5:17)

① 유대인의 법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지 않는다. (그림자→실체)

② 그리스도는 법의 깊은 의미를 재확인하셨다.

 

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법'을 시행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참조. 갈5:1)

→ 하지만 이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다. (참조. 요8:32;16:13)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4. 창조의 발전]

 

1. 창조 명령 [Creation Mandate]

1) 법의 적용 방법에 따른 창조의 구분 (지상적 영역)

① 제2창조 : '자연의 법'으로 적용, 하나님에 의한 직접적인 창조.

② 제3창조 : '규범'으로 적용. 인간(하나님의 형상)에 의한 간접적, 매개적인 창조

→ 문화 명령 (창조 명령, 창1:28) : 사회적, 문화적 경작(till)

 

2) 창조 명령의 범위 : '땅'은 지상적, 우주적 영역 전체를 가리킨다.

※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영역을 가리킬 때 성경에서 자주 표현되는 방식이다. (출20:11;느9:6)

 

3) 창조 명령은 엿새 동안의 창조에서 절정을 이룬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이제 사람에게로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시8:6;사45:1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8)

2. 창조와 역사

1) '대략(히. 톨레돗)'의 의미 (창2:4)

① 문자적 의미 : '후손'

② 대체로 '...에서부터 발생하는 역사적 발전상'을 뜻한다.

※ '... 톨레돗이 이러하니라'라는 반복 구절은 창세기를 11부분으로 나눈다. (창2:4;5:1;6:9;10:1;11:10,27;25:12,19;36:1;37:2)

 

2) 역사란 자연적이든 인간적이든 창조의 모체 안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들을 대대로 드러내고 개발하는 과정이다. 즉, 창조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은 역사 속에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 역사적 문명, 문화의 발전을 창조적 실체와 인류의 책임 있는 경영 영역의 밖에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와는 근본적으로 먼 것으로 보게 될 것이고, 결국 '세속적'이라고 분류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작품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3) '땅'의 창조는 갓 탄생한 건강한 아기와 같다. '매우 좋다(창1:31)'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상태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성장과 성숙을 기대한다.

① 문화적 비관주의 : 죄(질병)의 쇠약케 하는 효과만을 본다.

② 문화적 낙관주의 : 창조의 가능성들의 규범적 발전만을 본다.

 

3. 창조의 발전

1) 창조의 역사적 발전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 이것을 흔히 '구속사(Redemptive History)'라고도 표현한다. (참조. 요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17)

2) 새 하늘과 새 땅

① 불로 정화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땅의 연속일 것이다. (벧후3:13)

② 새 땅은 인류의 문화적 유산을 포함한다. (계21:24,26)

 

3) '벧후3:10'에 대한 변론

① 헬라어 사본들 대부분에는 벧후3:10의 '불에 탈 것이다(will be burned up)'라는 말이 없고, '발견될 것이다(will be found)'로 되어 있다. 이것은 오히려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계속 남아있을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떠나가고 녹는 것'은 확실한 폐기나 완전한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② 베드로는 홍수에 의한 대파괴를 가리켜 세계가 전에 '멸망했다'고 쓰면서 그 때의 심판과 앞으로 올 심판을 비교하고 있다(6,7절). 따라서 불의 심판을 통해 나오는 것은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13절)'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1)

4) 창조계의 종말론적 미래는 '만국의 영광과 존귀'로 가득한 도성이다.

 

4. 선한 창조계

1) 타락 이전의 모든 창조계는 근본적으로 선하다.

① 하나님은 창조의 순간마다 그 선함을 선포하셨다. (창1:4,10,12,18,21,25,31)

②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에는 버릴 것이 없다. (딤전4:4-5)

※ 영지주의 : 창조계가 선함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예. '혼인', '음식';딤전4:3)

→ 인간에게는 부패와 타락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창조계의 어떤 측면에게 (함축적으로는 창조주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4:4-5)

2) 창조계가 선하다는 사실은 그 '법' 역시 부정적인 범주가 아님을 말해준다. 창조의 법은 규범에 의한 실정법을 포함하는데, 이 역시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다.

※ 인본주의 : 사람을 자유라는 개념을 통해 규정하고, '자유'를 자기 자신 이외에는 어떤 법에도 따르지 않는 자율성으로 규정한다.

→ 인본주의는 법을 자유의 모순으로 생각지만, 성경은 법을 자유의 조건으로 생각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3. 타락

 

[1.타락의 범위]

 

1. 타락의 범위

1) 아담의 불순종은 창조계 전체의 대재난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 죄의 영향은 인류 전체뿐만 아니라 피조계 전체에 미친다. (롬5:12;8:2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3)

2) 창조계의 타락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은 지상적 영역에 국한된다. 천상적 영역에 대하여 죄나 반란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속박, 오염, 노예 상태 등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3) 타락이 세상에 미친 결과 - 선한 창조계의 왜곡

① 사회적 영역 : 가정 파괴, 권력의 남용, 자원의 낭비, 부적절한 노사 관계 등

② 문화적 영역 : 천박하고 저속한 예술 작품, 과학주의, 기술에 대한 의존 등

③ 개인적 영역 : 살인, 간음, 도둑질, 불경, 부도덕, 정신질환, 신체적 질병 등

 

4) 비정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용어들 : '비정상적인', '병든', '건강하지 않은', '기능불량', '부적응적', '병리학적', '부패', '허망', '속박', '왜곡' 등

 

5) 지상의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의 타락에서 파생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 : 하나님의 창조의 선한 법에 따라 살기를 거부함

①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 (창3:17)

② 피조물도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에서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롬8:19-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2)

2. 죄와 창조계의 관계

1) 죄가 창조의 타락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창조를 파괴한 것은 아니다. 죄악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무효로 돌릴 만한 힘이 없다.

 

2) 선과 악은 근본적으로 구분되지만, 악은 선의 왜곡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죄는 선한 창조계의 기체 안에 기생할 뿐이다.

 

3) 칼빈의 '두 질서' - 모든 실재의 근본 구조로서 공존

① 창조의 질서 : '건강'과 비교할 수 있다.

② 죄와 구속의 질서 : '질병'과 '치료'에 비교할 수 있다.

 

4) 타락한 창조계 속에 어떤 것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죄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창조된 질서를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킨다.

 

3. 구조와 방향

1) 구조(structure)

① 창조의 질서 : 어떤 사물의 불변적 창조 구조, 혹은 그것으로 하여금 그 사물, 그 실체가 되게 하는 것

② 하나님의 창조의 법에 근거를 둔다. (서양 철학의 전통 - 본체, 본질, 본성)

 

2) 방향(direction)

① 죄와 구속의 질서 : 한편으로는 타락으로 인한 창조의 왜곡 혹은 변질,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창조의 구속과 회복

② 창조의 법에 대한 순종 혹은 불순종으로 나타난다.

③ 하나님의 창조 설계에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3) 모든 창조의 주어진 구조는 그 (잘못된) 방향에 의해 말살되지 않는다.

① 일반 은총 : 죄와 그 영향력을 억제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 (보존 은총)

② 특별 은총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하여 주시는 중생의 은총

 

4. 경계해야 할 영지주의적 경향

1) 영지주의 : 창조 자체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말하며, 창조의 어떤 부분을 악역 혹은 구원주와 동일시하려고 한다.

 

2) 역사적으로 나타난 영지주의적 경향 - 창조계에 내재된 악의 근원

①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적 이단 : 결혼, 어떤 종류의 음식

② 헬라 철학 (플라톤) ; 몸과 정욕들

③ 낭만주의 (루소) : 자연과 구분된 문화

④ 심층 심리학 (철학적 무정부주의) : 가족과 국가에서의 제도적인 권위

⑤ 하이데서, 자크 엘룰 등 : 공학과 경영 기술

 

3) 선한 창조(창세기 1,2장)는 타락과 그 결과(3장)보다 앞선다. 즉 창세기의 첫 세 장은 오염되지 않은 창조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현대 자유주의의 견해는 창세기를 선과 악이 필연적으로 공존하는 신화로 본다.

 

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법(구조) 안에서 창조계를 붙드시며 그것을 회복하신다. 또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다. (잠8:5-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2. 왜곡된 창조계로서의 '세상']

 

1. '세상'의 두 가지 의미

1) 긍정적인 의미 : 창조 세계, 사람이 사는 지구 (지상적 영역) (롬1:8)

※ 성경의 용례 : 창48:16, 요3:16-17, 롬4:13, 계11:15, ...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계11:15)

2) 부정적인 의미

① 그리스도 밖에서 죄에 의해 지배되는, 구원받지 못한 삶의 총체 (헤르만 리델보스)

② 죄로 오염된 세계의 총체, 지상의 부패, 창조의 선함에 대한 대립 (약4:4)

※ 성경의 용례 : 요18:36, 롬12:2, 골2:8, 약1:27, 벧후2:20,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5)

2. 두 영역 이론

1) 창조의 구조를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으로 나눈다. (이원론적)

① 거룩한 영역 : 교회, 개인적 경건, 거룩한 신학 등

② 세속적인 영역 : 예술, 정치, 학문, 언론, 스포츠, 사업 등 (→ 소위 '세상')

 

2) 세속적인 것을 창조 질서의 방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창조의 위치(구조)에 의해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영지주의적 경향)

 

3) 성경 해석에서의 오류

①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 (요18:36)

;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를 반대 ← 그리스도의 왕권은 하늘로부터 온다는 뜻

② "...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1:27)

; 춤, 카드놀이, 연극의 참여에 대한 경계 ←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참여의 중요성

※ 이러한 해석은 그리스도인들의 타계적(他界的) 성향을 부추기고, 소위 '세속적인' 영역을 스스로 포기하여 선한 창조계를 인본주의 세력에게 내어주도록 만든다.

 

[참고] 칼빈주의로 보는 카드놀이, 연극, 춤 ("칼빈주의 강연" - 아브라함 카이퍼)

1) 날카로운 눈과 재빠른 행동과 폭넓은 경험으로 결정되는 카드놀이는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고, 소설, 연극(영화)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상상력 또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카드놀이, 연극, 춤 자체에는 악이 없다.

 

2) 칼빈주의는 맹목적 기회와 행운을 갈망하는 카드놀이, 남성다운 성품과 여성적인 순결을 희생시키는 연극(영화), 음란을 조장하는 춤을 정죄한다.

 

3) 칼빈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진지함과 경외심의 희생이다.

 

3. 마귀에게 속박된 세상

1) 피조물이 창조주의 법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사탄에게 속박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죄를 짓는 것은 사탄을 섬기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2) '사탄'의 이해

① 창조주의 선한 창조계를 비틀어 버리고 못쓰게 하려는 악한 영들 전체의 우두머리

② '거짓의 아비(요8:44)', '이 세상 임금(요12:31)', '이 세상 신(고후4:4)',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1)', '온 천하를 꾀는 자(계12:9)', ...

 

3) 창조계의 왜곡에 대한 책임

①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 위에 군림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직접 권세를 행세할 수 있으며(참조, 욥1:12;2:6), 오직 인류를 조종함으로써 지상계를 악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참조, 히2:5)

② 따라서 창조계의 왜곡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③ 세상의 악과 부패 전체는 인간의 죄와 마귀에게 노예 됨, 두 가지의 결과이다.

※ '나쁜', '악한'이란 뜻의 이탈리어 'cattivo'는 라틴어 'captivus(마귀에게 속박됨)'에서 파생된 말이다.

 

4. '세상'으로서의 '땅'

1) '땅'도 세상과 같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2) 바울이 표현하는 '땅' : 타락하고 부패한 땅 (골3:2,5;빌3:19)

※ 성(性), 스포츠, 목수일 등과 같이 지상에 속한 일들도 하나님의 창조물의 일부로서,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다만, 땅에는 하늘에 비하여 온전한 것이 없다.

 

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

; 타락의 범위는 지상적 영역 전체에 미친다. 하지만 모든 영역이 회복될 것이다.

4. 구속

 

[1. 회복으로서의 구원]

 

1. 구원의 의미

※ 회복(restoration) : 구속은 단순히 창조를 넘어선 어떤 것의 첨가가 아니라 손상되지 않은 창조계의 선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이 그를 받아두리라 (행3:20-21)

1) 구속 (redemption)

① 유괴, 납치, 포로 등의 단어를 연상케 하며, 몸값을 치르고 '다시 사온다'는 뜻이다.

② 구원의 핵심은 죄인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그에게 자유를 되돌려 주는 것이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계5:9-10)

2) 화해 (reconciliation)

; 사이가 틀어진 친구나 서로 선전 포고를 한 동맹국이 원래의 우정과 동맹 관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5:18-19)

3) 새롭게 함 (renewal; 헬. anakainosis - 롬12:2)

① 문자적으로 '다시 새롭게 만듦'을 의미한다. (헬.'ana-' = 영.'re-')

② 낡아서 못 쓰게 된 것을 새롭게 변화시켜 처음의 상태로 회복한다는 뜻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9-10)

4) 건강, 안전 (헬. soteria)

; 그리스도는 죽음에 이른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다.

※ 틴데일(W. Tyndale)은 1525년 최초의 헬라어 신약 번역본에서 헬라어 '소테리아'를 모두 '건강'이라고 번역하였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5:23)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마27:40)

5) 거듭남 (regeneration)

; 죽음에 떨어진 후 다시 생명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重生)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6) 재창조 (re-creation)

; 하나님께서 창조계를 폐기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새로운 것을 지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락한 창조계를 계속 붙들고 계시다가 다시 건져내신다는 의미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2. 은혜는 자연을 회복한다

1) 구속은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에 새로운 생명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 '회복'은 구원이 새로운 무엇을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즉 구속이란 창조계의 삶에 이전에 없었던 영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차원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2) 구속의 과정에 덧붙여진 것들(사형, 이혼법, 도피성 등)은 단지 죄 없는 창조계를 회복할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그 목적이 달성되면 그것들은 폐기될 것이다.

; 이것은 의료 행위에 수반되는 약품, 붕대, 청진기 등과 같다.

 

3) '은혜는 자연을 회복한다' : 은혜는 자연에게 덧붙여진 은사가 아니다.

→ 은혜를 자연 이외의 어떤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다른 세계관에서는, 은혜가 가져온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 영역(원래의 창조계)'을 구별하게 된다.

 

3. 구속의 범위

1) 그리스도의 구속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창조계 전체이다. (골1:20)

; 지상의 모든 악의 근본 이유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치유되고 극복되며, 따라서 원칙적으로 그의 구속은 죄의 모든 영향을 제거한다.

※ 개혁주의적 세계관의 특징은 죄와 구속 모두를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탄과 그리스도의 요구에는 전체주의적 성격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중립적인 것은 창조계 안에 아무것도 없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1:20)

2) 죄와 구속의 범위가 전체 창조계를 포함하지만, 그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상적 영역 전체가 파멸되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회복될 것이다. 아담 안의 인류(불순종)는 우주를 타락시켰지만, 그리스도 안의 인류(순종)는 그것을 새롭게 만든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15:21-22)

3) 새로운 인류(하나님의 백성)는 창조계의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하는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한다. (고후5:17-19)

 

4) 창조계에 대한 어떠한 구분도 화해, 구속, 구원, 성화, 새롭게 됨, 하나님 나라 등의 적용 가능성을 제한하지 못한다. 왜곡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영역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바라보며(창조), 모든 곳에서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왜곡과 부패를 보면서 탄식하며(타락),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회복에 동참하여 승리의 깃발을 꽂는다(구속).

 

[2. 하나님의 나라]

 

1. 하나님의 나라

1) '나라(kingdom, 헬.basileia)'의 의미

① 일차적 의미 : '왕권', '주권', '통치', '지배' 등

② 공간적 개념('영역','지역')보다 정치적 개념('주권','통치')에 더 가깝다.

③ 그 강조점은 왕으로서 주권적으로 창조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있다.

 

2) 하나님 나라의 의의

① 그리스도 안에서의 창조계의 회복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동일한 일이다.

②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계시인 신약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이다. (헤르만 리델보스, "The Coming of the Kingdom")

③ 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은 전체 구속사-세상을 구원하시는-의 정점이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2. 예수님의 사역

1) 예수님의 사역은 '말씀'과 '행함'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① 말씀하시는 예수님 - 왕국의 도래에 관하여 가르치시고 전파하셨다.

② 행하시는 예수님 - 왕국의 도래를 실제로 증명해 보이셨다. (치유, 기적 등)

 

2) 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재창조와 관련된 회복의 기적들이었다. 건강의 회복, 생명의 회복, 마귀의 억눌림에서 자유로의 회복, ... (단, 무화과나무 저주는 제외)

※ 이러한 기적들은, 구속이 창조계가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피조물의 삶으로 복귀되는 것이라는 것을 예증해 준다.

 

3) 하나님 나라의 도래, 즉 창조계의 회복과 치유에는 자유케 하시는 왕(예수 그리스도)과 속박하는 찬탈자(사탄)와의 대결이라는 측면이 담겨져 있다. (마12:28)

 

4) 그리스도의 회복 사역에 관한 몇 가지 예증

①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 몸을 펼 수 없었던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면서, 예수님은 그 여인이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사단의 속박에서 자유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내는 것이다. (눅13:16)

※ 병 고침은 사탄과의 대결로 이해할 수 있다. (행10:38)

② 거라사인에게 들려있던 귀신이 예수님의 신성과 왕권을 인정하고 고백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가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또다른 증거이다. (눅8:28)

③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오실 그 이(메시야)'이신지 여쭈었을 때 대답하신 말씀은, 자신의 '회복하는 사역'이 바로 메시야임을 증명한다는 것이었다. 그것 역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뜻하는 것이다. (마11:4-5)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3. '이미'와 '아직'

1)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현재적)

① 예수님은 그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말씀하셨다. (마12:28;눅17:20-21)

②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이미 현존한다.

※ 눅17:21의 '너희 안(헬. entos)에'는 '안(within)'이라는 뜻보다 '가운데(among)'라는 뜻에 가깝다. 즉 그 말씀은 바리새인들 '가운데' 있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

 

Once Jesus was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as coming, and he answered, "The kingdom of God is not coming with things that can be observed nor will they say, 'Look, here it is!' or 'There it is!' For, in fact, 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눅17:20-21, NRSV)

2)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미래적)

① 예수님은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마6:10)

② 그 나라의 도래는 아직 완료된 실재가 아니다. (계11:15)

 

3)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미'와 '아직'의 두 국면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중간기를 특징짓는다.

② 이 긴장의 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께 주어졌다는 사실을 세상에 전한다. (마28:18-20;행1:7-8 → 눅19:11-27)

※ 하나님의 나라, 즉 그리스도의 왕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나라

1) 구원은 복귀(repristination)가 아니라 회복(restoration)이다.

→ 복귀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문화적인 반동과 퇴보이다.

 

2)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창조 구조에 순응하여 발전의 현단계에 이른 문화와 사회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적 발전을 거부하지 않으며 오히려 진보적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 (계21:5)

[3. 다른 왕국관과의 비교]

 

1. 기독교 내의 다른 왕국관

※ 하나님 나라의 범위에 대한 이해는 우리 세계관에 대한 분명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여전히 그 나라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

 

1) 경건주의

① 하나님 나라를 개인적 영역, 즉 영혼의 내면 생활로 국한시킨다.

② 눅17:21을 '너희 가운데(among you)'라고 번역하는 것보다 '너희 안에(within you)'라고 번역하는 것을 선호한다.

※ 이런 경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면에 있어서 사회적 역할은 무시하고 각 개인의 윤리적 측면만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공적 생활의 영역을 배제하지 않는다. (참조. 사58:6-7;약1:26-27)

 

2) 로마 카톨릭의 전통

① 하나님 나라를 제도적 교회와 동일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권의 범위를 제한한다.

② 오직 목사와 선교사만을 그 나라의 '전임 사역자'로 보고, 평신도들은 그들이 교회 일에 봉사하는 만큼만 그 나라의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③ 모든 인간사가 '교회와 세상'이라는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오해하도록 만든다.

※ 이 전통은 이원론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삶의 영역을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 영역'의 두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한 삶'과 '허용된 삶'의 두 가지 생활 방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왜곡시켰다.

 

3) 세대주의

① 하나님 나라를 종말론적 미래로 국한시켜서 천년 왕국과 완전하게 일치시킨다.

→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천년 왕국이 속히 임하옵시며'로 이해한다.

② 하나님 나라와 천년 왕국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4) 자유주의 (ex-사회 복음주의)

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하나님 나라'라는 명칭을 붙이고, 이에 거스르는 모든 움직임은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② 그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나 마르크스 주의의 사회 정치적 운동에 나타난다고 본다.

 

2. '두 영역'과 '두 통치'

1) 창조계는 각각의 독특한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영역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데, 이런 구분 자체는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로서 선한 것이다.

※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을 예로 들자면, 교회, 가정, 정치, 사업, 예술, 교육, 출판, 사고, 감정, 식물과 동물, 무생물 등이다. (참조. 창1:11,21,24,25,27,...)

 

2) '두 영역' 이론은 이 영역 자체를 구분하여 '거룩한 것'와 '속된 것'으로 나누는데, 흔히 교회(하나님의 나라)와 그 밖의 영역(세상)으로 쉽게 분할한다.

 

3) 하지만 성경의 관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두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창조계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사탄의 '두 통치(=나라)'로 구분한다. 따라서 각각의 모든 영역에서 이 통치권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창조의 법에 더 순종하고 일치하는 만큼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확장되지만, 인본주의 정신(골2:8)이 인간의 사고를 세속화하는 곳에서는 그 영토를 잃게 된다. 이런 현상은 어떤 영역에서나 나타나는 것으로 '중립적'인 영역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은, 피조계가 위치하는 영역, 즉 '구조(창조 질서)'에 의해 구분되지 않고, 어떤 통치에 따르는가 하는 '방향'에 의해 구분된다. 방향의 양상은, '순종/불순종', '타락(죄)/구속', '왜곡/회복' 등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2:8)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3. '육'과 '영'의 대립

1) 두 왕국 간의 구분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육'과 '영' 혹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분과 동일하다.

※ 종교개혁은 '육'과 '영'을 희랍 철학의 '육체'와 '영혼'으로 이해하지 않고, 육체와 영혼 모두를 둘로 나눈다고 보았다. (루터 - "전인격이 육신이다")

 

2) '육체의 일(갈5:19-21)'은 단순히 육체적인 범죄가 아니며, '성령의 열매(갈5:22-23)' 역시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3) '영'과 '육'은 전인격에 걸쳐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 바울은 갈5:17에서 '거스른다'는 반립(反立)과 관련된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본의를 재확정하시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왜곡에 대항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일'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육체의 일'이다. (참조. 고전6:19-20;엡4:30;살전4:7-8;약4:5)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3. 영적전쟁]

※ 구속 : 죄의 무효화를 통해 그리고 모든 곳에 미친 죄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을 통해 창조계의 선함을 회복하는 것 (참조. 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every creature/all creation)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1. 승리가 확정된 영적 전쟁

1) 영적 전쟁의 기본 요소

① 두 나라 : 하나님의 나라 ↔ 사탄의 나라 [부정적 의미의 '세상'] (골1:13)

② 두 왕 : 예수 그리스도 [합법적인 왕] ↔ 사탄 [찬탈자]

③ 두 군대 : 하나님의 백성 [교회] ↔ 사탄의 속박 아래 있는 자들

④ 싸우고 있는 영토 : 하나님의 창조계 모든 영역

※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이 전투를 '반립(反立,antithesis)'이라고 불렀다.

 

2) 전쟁의 경과

①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창조계 전체이다.

②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이 무력으로 그 영토를 침입하여 점령지로 차지하였다.

③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합법적 영토를 회복하시기 위해 반격하셨는데, 그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승리는 원칙적으로 성취되었다.

④ 하나님께서 창조계에 교두보를 세우시고 모든 창조계에 대한 권리를 선포하셨다.

⑤ 우리, 곧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사탄의 잔당들을 소탕하며 최후 승리를 기다리고 있다.

⑥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영토 위에 하나님의 주권을 확정하실 것이다.

 

3)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의 비유 -「Christ and Time(그리스도와 시간)」

① D-Day :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② V-Day :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

※ 우리는 이 두 시기 사이에 살고 있으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치열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2. 영적 전쟁의 성경적 이해

1) 성경의 전투적 이미지들

① 엡6:10-20 ; 하나님의 전신 갑주

② 골2:8-15 ; 철학과 헛된 속임수의 노략과 십자가의 승리

③ 고후10:3-6 ; 우리의 싸우는 병기

④ 계12:7-9,17;16:12-16;17:8-14... ; 어린양과 용 사이의 우주적 전쟁

 

2) 잘못된 기독교 애국주의는 하나님 나라의 대의(大義)를 특정한 국가의 지정학적 이해와 동일시한다. 성경에서 묘사되는 영적 전쟁을 이런 잘못된 기독교 애국주의에 대한 지지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

※ 성경에 사용된 용어로써 성경을 읽어야 하며 또한 성령께서 전투적인 용어를 쓰시면서 의도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성경적 세계관은 창조계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하나님과 그 대적 사이에 심각한 전쟁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4-5)

3. 전쟁의 희생자

1) 영적 전쟁이 '영적'이라고 해서 결코 덜 심각하거나 덜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2) 이 전쟁은 귀신 들림이나 축귀(逐鬼)의 경우에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매스미디어, 의료윤리, 공공교육 등의 점진적인 세속화와 같이 뚜렷하거나 노골적이지 않은 경우에도 드러난다.

 

3)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성경적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을 진학하는 고등학생에게는 다음과 같은 선택의 여지밖에 남지 않게 된다.

① 예배가 교실과는 전적으로 분리된다는 지적 분열증에 빠진 삶을 영위하게 되거나

② 세속적 인본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휩쓸려 가게 된다. (참조. 골2: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 (벧전5:8-9)

☞ 개혁주의적 세계관 [요약]

1) 창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훨씬 포괄적이다.

 

2) 타락은 창조계에 한 구석도 빠짐이 없이 철저히 영향을 끼친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은 타락만큼이나 그 범위가 넓다.

 

※ 타락 혹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창조계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타락의 철저한 성격과 구속의 우주적 범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적당히 타협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5. 구조와 방향의 구분

[1. 개혁의 의미]

 

1. 구조와 방향의 구분

1) 구조와 방향

① 구조 : 피조된 사물의 본질 - 하나님의 창조적 법에 의해 피조된 대로의 사물

② 방향 : 구조적 규례로부터 일탈하는 것 or 구조적 규례에 다시 순응하는 것

 

2) 개혁주의는 창조(구조)와 창조의 모든 부분에 만연해 있는 영적인 대립(방향)을 동일하게 강조한다. → "은혜가 자연(구조)을 회복(방향)한다."

 

3) 삶과 세계에 대하여 구조와 방향의 구분을 적용할 때,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왜곡된 현실과 갱신의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2. 개혁의 함의

1) 개혁(reformation)은 우선 16세기에 있었던 성경적 종교의 회복이었던 종교개혁 그 자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개혁주의적(reformational)이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의 재발견'에 기초를 두고 있는 그 종교개혁 운동에 근거한다.

 

2) 개혁의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

① 개혁은 외적인 갱신을 나타내는 성별(consecration)이 아니라 '내적인 갱신'을 가리키는 성화(sanctification)를 의미한다.

② 개혁은 혁명과 같은 폭력적 전복을 뜻하지 않고 '점진적인 갱신', 즉 역사적 개혁을 의미한다.

 

3) 개혁을 역사적 개혁, 즉 창조 실체들의 죄와 죄의 모든 영향력으로부터의 성화라고 할 때, 구속사의 한 과정으로서 '구속'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창조(형성;formed) → 타락(왜곡;deformed) → 구속(개혁;reformed)

 

3. 성별과 성화

1) 성별(consecration)과 성화(sanctification)의 차이

① 성별 : 외적인 갱신 - '하나님을 섬기거나 예배하기 위해 구별함'

② 성화 : 내적인 갱신 - '죄로부터 해방시킴', '윤리적 부패로부터 깨끗하게 함'

※ 이원론적 세계관은 성화와 성령의 사역을 신성하고 거룩한 영역(대개는 제도적인 교회)에만 제한시키고, 나머지 삶에는 오직 '성별(신성한 것과의 외적인 연관)'만을 허용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내적인 성화로 강조한다.

 

2) 성경의 예증들

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의해 '거룩하게 된다(헬.hagiazein)'고 할 때 이것은 내적 갱신을 의미한다(딤전4:5).

② 예수님의 '누룩' 비유 역시 내부로부터의 지속적인 갱신을 가리킨다(마13:33).

③ 구약에서도 창조된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슥14:20-21).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4:4-5)

3) 신약의 '거룩'은 예배 의식에 제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든 영역(개인적인 삶, 사회적 관계, 문화적 활동 등)을 특징짓는다. (참조. 롬14:14)

※ 오순절 사건은 성령께서 인간의 삶을 내부로부터 갱신시키러 오셨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 갱신이 인간의 활동의 모든 영역에 퍼져나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14:14)

4. 혁명과 개혁

1) 혁명(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의 특징

① 필연적인 폭력 (→신체적, 심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혼란 포함)

② 기성 체제의 모든 면의 철저한 제거

③ 이론적인 이념에 따르는 전적으로 다른 사회적 질서의 구축

 

2) 정치적 혁명과 대조되는 개혁의 특징

① 폭력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② 어떤 주어진 사회적 질서도 절대적으로 부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③ 이상적 청사진이나 개념을 신뢰하지 않고, 주어진 역사적 상황을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살전5:21)

 

3) 혁명, 개혁, 보수의 차이

① 개혁은 모든 왜곡된 상황 속에 내재하는 기존 질서의 요소들 가운데 창조적 법에 순응하는 요소, 즉 선한 것으로부터 갱신을 추구한다.

② 개혁은 전투적 상황과 역사적 연속성 모두를 강조한다. 하지만 개혁은 '구조'의 관점에서 혁명에 동조하지 않으며, '방향'의 관점에서 보수주의에 반대한다.

 

※ 모든 기존 질서는 내적 갱신과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모든 왜곡된 상황은 갱신을 일으키기 위한 접촉점으로서 역사적 유산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2. 사회적재생]

 

※ 성별은 사물을 내적으로는 그냥 놓아두고, 혁명은 사물을 멸절시키지만, 개혁은 그것들을 재생시키고 거룩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깨끗케 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1. 개혁적 전략의 출발

1) '구조와 방향'의 성경적 원칙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역사적 현실을 갱신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게 한다.

 

2) 모든 왜곡된 상황, 즉 가혹한 사회적 압제와 부정의한 현실로 인하여 사회 질서 전체를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세상'과 동일시하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갱신을 위한 모든 참여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악으로부터의 도피라기보다는 의무 이행의 태만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의 임무는 전통 속에 담겨있는 값진 통찰들을 걸러내어 그것들을 계속 발전시키고, 그 동일한 전통 속에 있는 오류와 환상을 폭로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2. 인간 사회의 구조적 질서

1) 인간의 삶의 그 어떤 것도 창조 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없다. 창조주의 보존과 섭리의 손길은 우리가 공동적 삶을 조직하는 여러 방식 속에도 미친다.

① 가정의 구성은 임의적인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조성하신 방식(생물학적, 감정적, 사회적, 윤리적 조건)에 근거하고 있다. 가정이라는 제도에도 기본적인 패턴이 있으며, 그 창조적 구조에 의해 가정을 가정으로 인식하게 된다.

② 가정뿐만 아니라 제도적 교회, 국가, 학교, 사업체 등에도 거부할 수 없는 창조적 구조가 존재한다. (어떠한 왜곡도 이 구조 자체를 깨뜨릴 수는 없다.)

 

2)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제도들도 '각기 종류대로' 창조되었고, 각각의 제도들은 자체의 독특한 본성과 창조적 구조를 갖고 있다.

※ 이 본성과 구조에 대한 직관적 인식과 경험, 연구 등에 따라 각각의 영역은 자체의 적절한 표준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표준들은 해당 영역을 지배하는 창조 질서에 대한 해석을 반영한다.

 

3. 영역 주권

1) 각각의 사회적 제도는 그것에 고유하게 적용되는 창조 구조의 실정(實定)이다.

※ '실정'이란 창조적 규범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2) 한 사회의 제도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고유한 규범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각 영역의 권위자들의 책임은 그 규범적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 장로들은 교회를 위해, 부모들은 가정을 위해, 이사들은 회사를 위해, 위정자들은 국가를 위해, 학교 육성회는 학교를 위해 각 영역의 고유한 규범적 구조를 실천한다.

 

3) 영역 주권 (=구별된 책임) ← 아브라함 카이퍼

① 각각의 영역을 주관하는 고유한 권위는 그 영역의 창조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된다. 이러한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분배되며, 각 사람은 하나님의 규범을 그들의 고유한 영역에 직접적으로 실정하기 위해 부름을 받는다.

② 어떤 사회적 제도도 다른 제도에 종속되지 않는다. 교회, 가정, 회사, 국가, 학교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다른 것들과 나란히 선다.

→ 한 영역의 권위가 다른 영역에 개입될 때 일종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4. 창조적 구조의 왜곡과 대안

1) 사회를 위한 창조적 구조가 왜곡되는 두 가지 방식

① 주어진 영역 안에서 규범을 왜곡시키는 것

(예: 국가-부정부패, 가정-어린이 학대, 사업체-임금 착취 등)

② 한 영역의 권위를 다른 영역에까지 확대하는 것 (→전체주의)

 

2) 전체주의

①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범하고 다른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는 사회를 위한 창조적 구조의 방향적인 왜곡이다.

② 전체주의적 국가에서는 정치적 권위가 다른 모든 권위를 지배하게 된다. 중세 기독교의 제도적 교회는 모든 영역 위로 그 권위를 넓혀 나갔다. 현대 사회는 경제적 권위가 국가의 정치적 주권과 여러 사회적 제도들의 영역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

 

3) 그리스도인들은 각각의 영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회적 정의를 실정하고 실천하면서, 모든 사회적 제도들이 다른 영역부터의 간섭을 막아내고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3. 개인의갱신]

 

1. 공격성

; '인간의 감정'에 대한 예

1)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① 부정적인 견해 : "공격성은 '온유'나 '사랑'과 대치된다. 공격성은 창조된 선한 질서의 일부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죄의 현상이며 타락의 결과이다."

② 긍정적인 견해 : "공격성은 감정상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인간의 본성적 기능이다. 동물의 공격성은 종족의 생존을 보장해 주며, 공격성이 억제되면 갖가지 노이로제와 감정적인 부적응이 나타난다." - 콘라드 로렌쯔(Konrad Lorenz)와 같은 인성론자들의 견해

 

2) 구조와 방향의 관점을 통한 분석 - 해리 반 벨(Harry Van Belle)

① 공격성은 피조된 인간 생명의 한 부분이다. 서로 공격적이라는 사실은 인간됨의 구조에 속한다.

② 사랑의 반대 개념은 공격성이 아니라 증오이다. 공격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름다운 경우도 있으며, 오직 증오에서 나온 공격성일 때만 사랑의 반대가 된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격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온유와 공격성은 반드시 모순일 필요가 없다. (참조. 딤후2:25)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25:6-11)

2. 영적 은사들

; 방언, 예언, 병고침과 같은 예외적인 능력들

1)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① 초자연적인 은사 - "영적 은사들은 인내나 온유와 같은 일반적인 은사들보다 본래적으로 뛰어난 은사이며, 이것들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더 높은 영적인 위치에 있다."

② 자연적인 현상 - "카리스마적 현상은 초자연적인 것도, 특별히 기독교에만 고유한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심리학적 범주 안에 포함된다."

 

2) '자연'의 의미에 따른 '초자연적'이라는 말의 의미

① '창조계 전체' → 하나님과 그 행위만이 초자연적이다.

② '지상적 창조계' → 하나님과 하늘에 속한 피조물이 초자연적이다.

③ '세속적 영역' →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덕이 초자연적이다.

※ ②의 의미로 보면, 영적 은사들은 전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단, 자연 밖에 있는 힘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성령의 은사들은 초자연적이다.)

 

3) 카리스마적 은사들 중 다소 극적인 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창조하신 일상적인 실체와 다른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건덕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인간의 모든 은사들은 영적인 은사들이다. (참조. 고전12:28;벧전4:9-11)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12:6-8)

3. 성(性)

1)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

① 빅토리아적 견해 - "성은 인류의 지속을 위해서 필요할지 모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악이며, 우리는 성에서 쾌락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성화에 관한 성경의 교훈은 확실히 여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② 긍정적인 견해 - "성은 기본적이며 자연적인 충동으로서 좋은 것이며, 이 충동이 방해를 받을 때에는 심신을 허약하게 하는 노이로제와 억제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2)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창조와 은혜가 함께 있다. 구속은 우리가 부패시키고 왜곡시킨 것을, 우리가 성(性)에서 왜곡시킨 것까지 포함하여 회복시킨다. 구속은 성에서부터 우리를 돌려세우지 않는다. 구속은 성의 선함을 드러낸다." - 루이스 스미디스(Lewis B. Smedes) 「Sex for Christians(그리스도인들의 성)」

※ 하나님은 이성간의 결혼과 헌신적인 사랑의 맥락 속에서 인간의 성을 창조하셨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7:3)

4. 춤

1) 춤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계의 일부분인 신체 운동, 리듬, 음악, 사회적인 상호 행위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선물이다.

 

2) 타락의 영향은 춤에서도 나타나는데, 춤의 왜곡은 성적인 흥분이나 도발에 모든 초점이 집중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 춤, 의상, 스포츠, 드라마에서의 성적인 요소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6:16-21)

3) 어떤 문화적 현상이 주어진 역사적 배경에서 너무도 철저하게 왜곡되어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물러나야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그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충만케 해야할 의무가 있다.

 

※ 문제 제기

; 성경적 세계관의 적용 방식

1) 어떤 주어진 현상에서 구조와 방향을 구별하려고 할 때 성경은 필수적이고 최우선적인 안내자이다.

 

2) 성경이 분명한 지침이나 구체적인 지침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올바른 해답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현상을 구조와 방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의 강점은 대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조심스런 관찰과 깊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견실한 대답을 기대할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