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21세기 예배문화 연구

예림의집 2014. 4. 9. 19:36

21세기 예배문화 연구

 

 

서 론

A. 연구의 동기와 목적

진정한 교회는 의미있는 예배를 통하여 끊임없는 동력을 얻는다. 예배학적인 견지에서 볼때 현재 한국교회의 예배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배를 집례하는 목회자가 예배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지나치게 독단적이거나 압도적인 태도로 임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평신도들이 예배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얻어 가려는 일"에 더욱 마음 쏟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예배에는 독창적인 문화가 보이지 않는다. 예배순서를 보아도 변화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예배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나 참석한 회중들이 예배순서 하나하나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주보에 있으니까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21세기를 바라보는 시점에 서있는 한국교회의 예배현실을 진단하고 새로운 예배문화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이 피료하다라고 생각한다.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문서를 통한 연구방법으로 기존 교회에서 사용해 온 예배순서들을 살펴보고 진단 한뒤에 대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연구하려고 한다. 바람직한 예배순서를 제안하기 위해서 교회력과 성서일과가 예배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를 고찰하고 예배순서를 제시하고자 한다.

I. 예배의 본질과 의미

A. 어원적 의미

성경에서 사용되는 예배라는 용어들은 시기와 형편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있으나 그 내용은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먼저 구약에서는 예배에 관한 대표적인 용어를 둘을 들수가 있다. 그 첫째가 '아바드'(ABADE)라고 하는 히브리어다. 이 단어의 뜻은 "하다" "만들다" "숭배하다", "(하나님)께 복종하다" 인데, 본래 노예나 고용된 종들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말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되면서 부터 제물을 드리는 봉사와 레위인들의 회막에서의 봉사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19:21, 렘 44:3). 두번째 용어는 '샤하아'(SAHA-A)라는 단어인데, "굴복하는 것", "자신을 엎드리는 것", "경배하다"라는 뜻으로서 숭배, 순종, 봉사의 종교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개념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마음과 몸을 가지고 최대한으로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사용된 이상과 같은 어휘속에 나타나는 뜻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섬겨야 할 존재라는 사실과 경배와 복종의 생활이 예배자들의 주요한 삶의 근본" 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서에서는 예배라는 표현이 세 가지 용어로 나타나는데 그 첫째가 '프로스퀴네오'( )이다.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누구의 손에 입 맞추는 것", "존경의 표시로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을 엎드린다" 이다. 유대교에서는 이 단어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나 혹은 거짓 신들에 대한 숭배와 관련되어 사용하기도 했으나 신약성서에서는 신성한 대상에만 관련하여 사용하였다. 둘째, '라트레이아'( )이다. 이 단어는 "보상을 위한 봉사", "신들을 섬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라트레이아 ( )가 사용된 5가지 실례중에서 3가지는 희생제사 사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즉 롬 9:4, 히 9:1,6이 그러하다. 로마서 12:1에서는 내적인 생활과 외적인 행위의 산 제사를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이성과도 일치하며 또한 그안에서 하나님의 이성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말한다. 세번째 단어는 '레이투르기아'( )로서, "섬김" 혹은 "봉사"의 뜻인데 예배식 (Liturgy)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이 말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행한 바 특별한 봉사를 나타낼 때에 사용되었는데 그 제사장적 기능들은 모두가 예배적인 것들이다 (눅 1:23, 히 9:21). 이 말은 그리스도의 직분 (히 8:6)과 교회의 예배 (행 13:2)를 표시하는데 사도 바울은 더 나아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은 헌금과 (고후 9:12) 빌립보 교회가 자기를 위해 준 선물에 대해서도 적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빌 2:30). 바울에게 있어서 참된 레이투르기아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믿음의 생활 (갈 5:22) 이다.

마지막으로 영어에 있어서 'Worship'이다. Worship은 본래 앵글로 색슨어의 'weorthscipe'에서 유래 했는데, 가치(worth)라는 말과 신분 (ship)이라는 말의 뜻을 가진 합성어로서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을 좀 더 구체화 시키면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to ascribe to Him supreme worth)이란 뜻이 된다. 이러한 표현은 성서의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예를들면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29:2)" 라고 표현한 경우와 계시록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계 5:12)" 라는 표현등이 모두 이 뜻을 가지고 있다.

B. 신학적 의미

예배자는 예배 가운데서 생각되어져야 할 신학적인 초점들에 대하여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신학이 없는 예배는 감상적이고 유약하며 예배가 없는 신학은 냉랭하고 그 자체가 생명력이 없다. 그래서 건전한 신학은 예배의 교정자로서, 참 예배는 신학의 원동력으로서 이바지 하게 된다. 실제로 예배는 하나님과 의식적으로 사귀는 경험이고, 신학은 그 경험의 뜻을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1. 계시와 응답인 예배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믿음 안에서의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지는 인격적인 경험에서, 나와 너의 관계로 인간을 직면 하시는데, 예배는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제공되고 믿음을 통해서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께 응답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이다.

이와같은 예배는 우리 인간들의 목적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서 부터 시작된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이다.

2.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

예배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며 어떤 사물도 아니다. 예배는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항상 예배에 있어서 알파 (alpha)이며 오메가 (omega)가 되신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더불어 교제할 사람을 창조함으로써 예배에 솔선하셨으며 존재의 근거로서 생명의 원천이며 보존자가 되신다. 그는 최고의 통치자로서 사람과 만나고 또한 사람을 심판하시고 요구하신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사람이 응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심과 사랑을 새롭게 들어내셔서 사람으로 그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예배하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3. 그리스도 중심적인 예배

예배는 기독론에 기초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영화롭게 하셨다는 사실은 완전한 예배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에서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배 의식 (Christion cult)은 예수께서 성육신에서 승천까지 이르는 그 동안에 이룩하신 완전한 예배 행위인 그의 직무 (ministry)에 근거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십자가와 승천에서 절정을 이루신 예배의 완전한 행위는 예수께서 위대한 대제사장으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히 8;2)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예배의 기독론적인 근거를 확인하려고 할 때, 예배의식은 다만 예수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전 11:25)"고 명령하신 말씀에 근거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은 하늘의 예배를 반영하는 것이며 기독교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한 하늘의 제사를 드리신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진정한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신령과 진정한 에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고 하신 말씀에 따르면 신약의 예배는 의식과 형식의 예배가 아닌 영적인 예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배가 영적이라고 해서 예배의 형식이나 의식이 필요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배적 형식위에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예배자들이 그리스도의 자기 봉헌 (Self - oblation of Christ)과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시키셨고 오순절 이후부터 재림까지는 성령을 통하여 완성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드리는 예배속에서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하여 예배자의 마음에 파고든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 얻는 감동과 변화는 모두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 행위를 확신케 하고 (요 16:8) 그리스도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하고 (요 16:14-15) 하나님의 은혜의 활동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신다. 또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갈 2:20).

5. 코이노니아의 예배

기독교 예배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행위 (essentially a corporative activity)이다. 즉, 예배는 기독교인 개인의 개별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전체의 공동체적 행위인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교회를 '에클레시아'(' )라고 부른 것은 히브리어인 '카할'에서 번역 되었는데, 이 낱말의 뜻은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회합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하여 소집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애굽에서 구원받은 백성의 공동체가 야웨의 공동체였고,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도 구속받은 사람들의 사귐 ( )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C. 종교개혁 시대의 예배와 순서

주지하다시피 16세기의 종교 개혁이 그 출발에 있어서 신학의 개혁을 목적으로 했으나 예배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개혁의 필연성은 의미를 상실한 미사에서 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일차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음을 인정할 때, 자연적으로 예배란 교회 기능의 최우선적인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이 변질되거나 퇴색될 때,언제나 교회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루터 (Luther)는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가장 주저한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은 자주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실제로 그의 추종자들이나 또는 그 자신이 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공공연히 논박을 하였다. 그러나 차츰 루터는 새로운 예배 형식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그 자신 스스로가 예배의식을 만들어 1523년에 미사전례 (Fomula Missae)를 발간했으나, 결과는 라틴어를 포함하여 기타 여러가지 과거의 예배요소들을 그대로 갖고 있는 로마미사의 축소판에 불과했다. 그후 1526년에 그의 추종자들을 제지하기 위해서 독일미사 (Deutsche Messe)를 발간하였다. 이 예식서에서 보여 준 그의 예배 내용은 성경 봉독과 그 말씀에 의한 설교를 분명하게 제시한 것과 성만찬에 있어 신약적 형태와 진행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표출되어 있었다. 맥스웰은 이런 루터의 예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① 살아 계신 말씀과 함께 그리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귐이 있었다.

② 주님의 만찬이 중심되는 의식이었다.

③ 그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음식에 실제로 임재하신다는 성체 공재설 (Consubstantiation)을 믿었다.

④ 미사는 카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의 반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들을 바쳐서 그의 희생에 동참한다.

⑤ 루터는 자국어로 미사를 거행했다.

⑥ 라틴어와 대부분의 의식적인 등불과 분향 및 제복을 사용하여서, 로마 교회의 옛 관례로 되돌아 갔다.

2. 쯔빙글리

쯔빙글리 (Zwingli)는 예배의 개혁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교황권이나 공로사상, 고백성사, 면죄, 사제직등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급진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예배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재현이나 성상의 사용을 극구 반대하는 입장으로서 그의 극단적인 개혁은 예배 가운데 오르간을 비롯한 제반 악기의 사용이라든지 시편 교독을 대신하는 회중들의 찬송들을 모두 삭제한 것에서 나타난다. 반면에 그는 예배 가운데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써 성경 봉독과 기도와 죄의 고백, 그리고 설교만을 강조한 예배형식을 내세웠다.

그는 성만찬을 기독교 예배 형식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지 않았으며 자주 성만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보고, 1년에 네번만 성만찬이 있는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3. 부처와 스트라스부르크 교회

종교 개혁시 예배에 관한 일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난 곳은 스트라스부르그 (Strasburg)였다. 이곳은 본래 루터파의 영향력이 컸으나 이곳 개혁자들은 상당히 독립적이었다. 마틴 부처 (Martin Bucer)는 1530년 감독이 되면서 그 영향력이 과거보다 훨씬 더 커져 쯔빙글리파의 견해를 도입함으로 후일의 예배의식이 루터와 쯔빙글리의 생각을 혼합한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예배 가운데 나타난 특성으로는 먼저 "미사"라는 어휘 대신 "주님의 만찬" 또는 "성찬"이라는 이름을 개발한 것이고 사제라는 표현 대신 목사라는 칭호를 예전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 등이다. 그리고 성만찬 제단의 위치도 지금까지 벽에 붙여 놓았던 것을 변화시켜 목사가 벽과 제단 사이에서 회중을 향해 서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또 쯔빙글리에 의하여 없어졌던 시편과 찬송이 다시 등장했고, 성서 일과가 사라지고 목사가 마음대로 본문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성자 축일등은 완전히 폐지되었고, 성만찬을 위한 성직자의 특별한 복장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일이면 언제나 검정 가운을 입도록 했다.

4. 칼 빈

칼빈은 개혁 신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하였는데 예배식의 개정에는 루터보다 더 용감하였으나 쯔빙글리보다는 급진적이지 못했다. 그는 예배의 두 중심점을 설교와 성례전에 두고서 새로운 예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간편한 예배 순서속에서 초기 교회가 가졌던 내용을 살리는 예배를 마련하기 원하였으며, 이 일을 위해 전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독자적인 예배형태를 개발하지 않고서 결국 부처가 사용했던 예전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채 예배의 의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만찬의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하여 매주마다 거행할 것을 주장했다.

D. 현대교회의 예배와 순서

현대교회는 카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회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1. 카톨릭 교회의 예배와 순서

카톨릭 교회는 1545년에 열린 트렌트 공의회 (the Council of Trent)에서 예전에 관한 헌법을 세워 사용해 오다 1962년에 열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카톨릭 교회의 전반적인 영역뿐 아니라 예배의 영역에 있어서 혁신의 문을 열어 놓았다.

그래서 먼저 예배언어의 개혁을 추구하여 종래의 라틴어 예배는 존속시키는 한편, 미사를 평이한 자국어로 드리게 했다. 예배언어의 개혁은 말씀의 예전에 있어서 설교의 회복을 촉구하게 되어 매주일 거행되는 미사에서 간단한 설교가 진행 되게 되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룩한 개혁은 전폭적인 개혁이라기보다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기본적으로 계승시키고 보존하면서도 새 시대에 적합한 교회와 예배생활을 추구했다. 현재 카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미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시작하는 의식 * 성찬의 예전

입 장 송 성물의 준비

인 사 성물 상의 기도

참회의식 성찬의 기도

참회와 죄의 용서 서 문

키리에 (kyrie eleison) 삼성송과 사가랴의 찬미

대영광송 (gloria) 성찬기도

개회기도 회중의 기념하는 응답

기념의 기도

* 말씀의 예전 성찬의식

첫 성서낭독 - 구약성서 주의 기도

둘째 성서낭독 - 서신 평화의 부름

복 음 서 고양송 (Agnus Dei)

설 교 성찬의 노래

신 경 입교인의 기도 성찬 후의 기도

끝맺는 의식

인사와 축복

해 산

2. 동방정교회의 예배와 순서

동방 정교회의 예배의식은 풍부한 신학적 내용, 영적인 의미 및 다양성으로 인해 정교회의 영속성과 동일성을 나타내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정교회의 예배의식은 중동 및 발탄 제국들 내에서 이슬람교도가 통치하였던 여러 세기동안, 즉 전례가 종교적 지식이나 경험을 줄 수 있었던 유일한 근원이었던 시대에 기독교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정교회의 가장 널리 사용되는 예식서는 두가지로서 요안네스 크리소스톰의 전례와 바실리우스의 전례이다. 이 둘은 4세기에 이미 만들어졌는데, 둘의 차이는 다만 성만찬 미사의 전문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 뿐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동일하다.

크리소스톰의 예식서에 나타나는 정교회의 예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전반부는 말씀의 예전이며 후반부는 성만찬의 예전인데, 정교회 예배의 핵심은 성찬의 전례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신앙이 성체 성혈 성사에 참여 함으로서만 구체화되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것을 신앙과 생활에 중심으로 삼고 있다.

3. 장로교회의 예배와 순서

장로교회의 예배는 개혁교회의 전통과 유산을 이어받아 말씀 중심의 예배를 취하고 있어서 비예전적인 예배로 일컬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 예배는 주로 예배 지침서에 의해 진행되어 오고 있다. 이 예배 지침서는 1906년 헨리 벤 다이크에 의해서 발간되어 1928년과 1944년에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가장 최근에 집성된 예배 지침서는 1970년에 발간된 예배서 (The Worshipbook) 이었다.

이 예배서에 수록된 주일 낮 예배순서의 기본구조는 다음과 같다.

* 기본 구조 (The Basic Structure)

예배에의 부름 회중의 기도

경배 찬송 평화의 인사

죄의 고백 봉 헌

용서의 서언 성찬으로의 초대

응 답 송 감사기도

조명을 위한 기도 주의 기도

구약성서 봉독 영 성 체

신약성서 봉독 응 답 송

설 교 찬 송

신 경 (신앙고백) 위탁의 말씀 (Charge)

복의 선언

6. 감리교회의 예배와 순서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레는 예배에 있어서 말씀과 성찬의 균형을 강조해서 될 수 있는대로 자주 성찬식을 거행할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한주간에 2회씩 성찬을 받음으로 본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웨슬레는 예배를 통해 성서가 읽혀지고 해석되며 그 가치가 계속적으로 인정되도록 예배의 모든 순서와 과정이 성서에 바탕을 두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예배에 찬송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는데, 이 찬송은 신도들의 예배, 생활, 교훈 등의 모든 면에 관련되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미 연합 감리교회가 1965년 발간한 예배서 (The Book of Worship)에는 다음과 같은 주일 낮 예배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오르간 전주 목회기도

예배에의 부름 헌 금

찬 송 찬 송

기도 (고백기도 또는 주님의 기도) 설 교

시 편 제자직에로의 초대

찬 양 찬 송

성경봉독 (구약과 서신서나 복음서 중) 축복기도

신 조 오르간 후주

 

III. 바람직한 예배문화와 프로그램

A. 예배문화의 필요성

한국교회는 튼튼한 신학적 기반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도된 것도 있고, 앞으로 반성하면서 고쳐야 할 것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교회안의 교회력 사용의 부재현상이다. 교회력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여러 세기에 걸쳐 서서히 발전된 것으로 시간 안에서 하나님이 아들을 통하여 행하신 큰 사건들과 이 사건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는 의미를 해마다 재검토하게 한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교회력을 폐기하거나 재구성하려고 시도할 때, 늘 그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왔다. 16세기의 보수적인 개혁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교회력을 보존했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보증되지 않은 축전만을 제거했다. 그러나 초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영국의 청교도들과 칼빈주의적인 스코틀란드에서는 교회력을 "로마적인 제도"라 해서 제거해 버렸다. 고로 그 예배의식을 가진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기에 우리의 예배는 교회력과 예배의식이 결핍되게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력을 예배 안에 받아들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낸 하나님의 구원행위와 그리스도를 중심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

1. 교회력의 사용

교회력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모든 교회력의 기초와 핵심"인 주의 날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구원의 행위를 일 년을 기간으로 하여 생각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편성된 교회의 절기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회력의 절기들을 예배에 적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승천에 이르는 과정을 매해 상반기에 되새기고, 후반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예배의 성격과 목적을 설정해주고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미리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임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다 실감나게 느끼게 되고, 진지하게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2. 교회력의 내용과 의미

a. 대강절 (Advent)

교회력은 대강절로부터 시작하는데 4주일간 계속되며 성 안드레 기념일인 11월 30일이나 이 날에 가까운 주일에 온다. 이 절기의 기간은 4-7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나 6세기에 로마주교가 4주로 확정했다. 대강절은 3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주님께서 크리스마스 때 육으로 오시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께서 말씀과 영으로 오시는 것이며, 셋째는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내려온 역사적 과정의 절정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정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일찍이 예언자, 선지자, 제사장 또 역사 과정을 통해서 미리 예비하게 했음을 상기하고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음미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크리스찬들을 영광중에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입장에서 회개와 기도로써 자기 자신을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

b. 성탄절 (Christmas)

예수님께서 탄생한 정확한 연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A.D 336년경에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생일로 지킨 날을 주님의 탄생일로 정하였다. 그 이유는 주님의 탄생이 늦가을이나 또는 겨울이었다는 사적 근거와 이 시기에 태양이 지평선의 가장 낮은 지점으로부터 다시 올라와 이 우주에 빛을 주는 날이라는 입장에서 당시의 동지였던 12월 25일을 택하게 되었다. 그 후 안디옥에서는 A. D 375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5세기에 이 성탄절을 지키게 되어 서방의 모든 교회에 퍼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날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최대 명절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메시야를 보내심은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하셨음을 의미한다. 고로 성탄절은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기쁨과 용기를 주는 절기이다.

c. 현현절 (Epipany)

현현절은 본래 성탄절보다 먼저 생긴 절기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분의 탄생과 세례를 합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 현현절을 지키는 신학적인 의미는 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로 유래되는데 이스라엘이 아닌 먼 나라의 동방박사가 별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의 탄생을 목격하고 경배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유대인만을 위함이 아니라 온 세상,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동시에 별, 빛으로써 만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그 빛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해야 한다.

d. 사순절 (Lent)

사순절은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해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이다. 이 절기는 40일간 지키게 되는데, 특히 이 기간의 40일은 예수님이 공생애 전 금식하면서 영과 육을 단련시키신 그 훈련을 본받아 40일 동안 신앙훈련을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사순절에는 부활절에 세례 받을 사람들을 6주간 동안 준비시켰다. 시험과 교육과 회개와 기도를 통하여 이 기간 동안 지원자들이 세례식에 참여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했다.

e. 부활절 (Easter)

부활절은 교회력의 모든 경축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 근원이기도 하다. 그 주간의 첫 날에 예수가 죽은 자 중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 날은 기독교의 사실과 헌신의 절정이었다. 따라서 매 주일이 작은 부활절로 축하되기도 했다. 부활절은 유월절을 뜻하는 히브리말로 "빠스카"였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된 가나안 땅에 정착했는데, 바로 이것은 노예와 죽음으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유월절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 이 부활이라고 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죄와 죽음으로 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이 부활절은 크리스챤의 유월절이며, 신학적인 의미는 새 생명이다. 가장 비 인간적인 죄와 죽음으로 부터의 해방의 절정은 감격과 기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은 우리들에게 소망과 승리가 주축이 되어 어두움이 있으면 반드시 빛이 온다는 이 소망과 승리의 확신이 심어져서 미래 지향적으로 우리의 삶을 경축하고 이끌어 주는 의미를 가진다.

f. 오순절 (Pentecost)

오순절이라는 단어는 50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유월절 이후 유대의 칠칠절까지의 50일간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것은 율법의 선포와 이스라엘의 건국을 표시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고 새 이스라엘을 세운 날로서 오순절을 축하했다. 오순절은 27주일이나 계속되는 교회력에서 가장 큰 절기인데, 교회력의 전반부는 그리스도의 삶을 지키는 것이라면 후반부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 및 열매를 통한 교회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절기이다.

B. 예배순서와 성서일과

성서일과란 교회력에 맞추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은 곧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화시키고 전체성을 가지고 이해하도록 하며 때를 따라 말씀을 받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발견하도록 한다.

성서일과의 유래는 회당에서 구약을 읽어 주던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보면 주님의 성찬 상 앞에서는 반드시 말씀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4세기에 이르러 안디옥 교회에서는 회당의 예배와 같은 형태로 율법서와 선지서를 읽었고 얼마 후에는 구약과 신약을 읽음으로써 말씀의 전체성을 가져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은 특정절기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의 봉독이었다. 그 후부터 니케야 회의 이전까지는 부활절과 성탄절을 위주로 하여 구약과 신약을 중심한 고정된 말씀을 읽었다. 그 후 6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구약의 내용보다 복음서와 서신서를 따르는 취향을 보였다. 이런 편중된 성서일과는 구약성서의 외면이라는 문제점을 가져왔으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문제성을 느끼면서도 오랜 시간동안 성서일과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런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은 ① 구약의 극소사용 ② 교회력과 상관없는 성구의 선택 ③ 성서의 많은 의미 깊은 부분을 사용하지 않음 ④ 구약과 신약의 상호 연결성의 결여 등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1896년 독일의 루터교회가 성서일과를 펴냈고, 1968년에는 카톨릭 교회에서 예배를 위한 성서 일과를 만들었다. 처음 루터 교회에서는 2-3년 주기로 사용하기로 했으나 후에 3년 주기로 되었다.

 

B. 21세기 예배문화와 예배순서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이고 예배에 있어서 그 순서는 그 표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족장시대와 광야 성막 시대의 예배에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 있었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후의 성전예배는 이 의식을 전승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희생 제사 의식을 행할 수 없게 되자 성전 예배를 대신하여 발달한 형대였다. 그리고 회당 예배에는 율법서와 예언서 낭독, 강해, 기도, 시편, 영창, 축도 등 주로 말씀 예배에 그 특징이 있었다. 기독교 예배는 이 회당 예배를 전승한 것이고 순수한 기독교적 요소는 '떡을 떼는'(행 2:42) 주의 만찬이다. 예배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와 경배를 드리려는 인간의 최상의 행동이라고 이 때, 예배는 한편의 드라마로서 계시와 응답이 이루어 져야 한다. 예배가 그리스도인의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하는 자들의 눈앞에 기독교 계시의 위대한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줌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참회와 감사와 헌신과 찬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예배 순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질서의 예배는 예배자 들을 혼동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예배순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예배순서는 구원의 과정을 요약하고 이 세상의 종말과 미래를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예배순서의 제안

우리의 예배순서 즉,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예배의 순서를 가다듬는 적당한 방편을 찾으려면 교회의 유산에 진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교회 역사를 통하여 내려온 교회의 풍습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어떤 특수한 관례가 오래된 것이라고 하여 반드시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개혁자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깊은 신학적 통찰력 안에서 개혁 신앙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로 부터 예배 순서에 관한 것을 배워야 한다.

 

Ⅳ. 결론

21세기를 향한 진정한 준비는 예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한국적인 예배 한국적인 문화요소가 포함된 예배 그러면서도 교회력을 이용한 예배를 생각해 보았다.

 

 

참고문헌

김소영, [예배와 생활]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2)

박은규, [예배의 재발견] (서울 : 대한 기독교 서회, 1988

R. 레어드 해리스, 글리슨 L. 아처 2세, 브수스 K. 월트케 편수, [구약원어 신학사전] (서울 : 요단 출판사, 1986

게르하르트 킷텔, 게르하르트 프리드리히, [신약성서 신학사전] (서울 : 요단 출판사, 1985)

김기현, [한국 교회의 예배와 생활] (서울 : 양서각, 1984)

Raymond Abba, [기독교 예배의 원리와 실제], 허경삼 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서회, 1974)

Franklin M. Segler, [예배학 원론], 정진황 역 (서울 : 요단 출판사, 1979)

Franklin M. Segler, [목회학 개론], 이창희 역 (서울 : 요단 출판사, 1977)

J. J. von Allmen, [예배학 원론], 정용섭 외 3인 공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79)

Franklin M. Segler, [예배학 원론] 정진황 역 (서울 : 요단 출판사, 1979)

The Joint Committee on Worship for Comberland Presbyterian Church, The Worshipbook, (Philadelphia : The Westerminster Press, 1970)

한국 정교회, [정교회 기초 교리] (서울 : 한국 정교회, 1978)

[기독교 대백과 사전, 4권 (서울 : 기독교문사, 1985)

he United Methodist Church, The Book of Worship (Nashville : The United Methodist Publishing House, 1965)

박은규 외 3인, [기독교 입문] (대전 : 목원대학 출판부, 1982)

Edward T. Horn, [교회력] 배한국 역 (서울 : 컨콜디아사, 1983)

정장복, [예배학 개론] (서울 : 종로서적, 1987)

정철법, "교회력과 예배의식" [예배. 설교. 선교] (서울 : 연신 목회자 신학세미나 강의집, 1986)

Peter G. Cobb, The Calender In Cheslyn Jones, [ed], The Study of Liturgy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정용섭, [교회 갱신의 신학]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9)

박근원, "예배와 성례전" [예배. 설교. 선교] (서울 : 연신 목회자 신학 세미나 강의집, 1986),

"Lectionary", In Westminster Dictionary of Worship, Edited by J. G. Davies (Philadelphia : Westminster, 1972)

Robert G. Rayburn, [예배학] 김달생, 강위봉 공역 (서울 : 성광문화사, 1988)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실천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체성의 고민  (0) 2014.04.10
실천신학의 방법  (0) 2014.04.10
목회학 서론  (0) 2014.04.09
종교개혁 이후 웨스트민스터 전통  (0) 2014.04.09
교회개척자의 성품과 자질  (0) 2014.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