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람 마중물 포스트모더니즘과 교회교육
길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들을 교육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있다.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저 “기도합시다”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삶의 가치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책임이 참으로 무겁다. 그래서 더욱 전문적으로 따져보고 지속적으로 대안을 찾아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교사들은 모두 다 생각하고 감동과 변화가 가능한 교육을 꿈꿔야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앞으로 자주 교육이론과 전문기술을 나누려고 한다. 오늘은 우선 김도일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21세기 한국교회교육의 과제와 전망>
고용수 김도일 박상진 양금회 임창복 이규민 장신근 공저,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연구원, pp.42-52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든 문화상황 변화의 관찰과 분석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이른바 근대의 주요 3혁명이라고 일컬어지던 종교개혁, 산업혁명, 프랑스혁명의 전반에 깔렸던 정신인 계몽주의의 종식을 고하는 이념이라고볼 수 있다. 일리가 있는 관찰이다. 계몽주의의 토대가 되는 계몽사상(啓蒙思想,enlightenment)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아직 미 자각 상태에 빠져 있던 인간의 이성에 한줄기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스 홉스와 르네 데카르트에서 시작 하여 임마누엘 칸트의『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계몽’ 이리는 용어를 정례 화하기까지 계몽주의 시상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다양하다. 이러한 이성을 앞세운 계몽사상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여하튼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규율, 기초(基礎) 등을 지지했던 모더니즘의 기반을 뒤 흔드는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소위 근대로 일컬어지는 모던 시대의 문화 상황에서 탈 근대, 혹은 현대로 일컬어지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 상황의 변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교회학교에 출석하는 학생들의 증감 추이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21세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이고, 진 에드워드 비이스가 말한 것처럼 "문화를 무시하고 시대를 벗어나면 이무런 메시지가 없는 인간이 되나, 반대로 문화를 수용하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혼합주의에 빠지고 진실하지 못한 신앙인이 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이성중심주의’ 에서 탈피하려는 감성적 경험중심주의’ 이다.
과거에는 이성적 판단이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결정해 주 는 잣대로 여겨졌다면,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보다는 감성과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러한 감성 ․ 경험중심주의를 부추기는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다. 매스미디어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고 과거의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이성 중심적인 기준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당신이 느끼고 경험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며 감성적 사고나 행동이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행동보다 더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라는 의도적인 세뇌와 은근한 사회화를 부추기고 있다. 1초에 4만 병이 팔린다는 코카콜라의 구호(coke is it)와 젊은이들의 마음에 이미 각인된 나이키사 상표 이미지와 구호(just do it)는 좋은 예가 된다.
두 번째 특징은 '자율성중심주와 에서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 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경향이다.
과거에는 각개인의 자율적 결정과 판단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교실에서는‘늘 네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라!’(Think for yourself)는 말로 학생들의 마음에 자극을 주었다. 모더니즘에서는 인간의 자율성(autonomy) 추구를 지향하는 자율성 중심주의를 지향했다면,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모든 것의 중심 혹은 판단 의 주체를 '자기 자신(self)'에 두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현상은 감성적 경험중심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교회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자기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사유화 (privatization) 현상을 부추겼다. 교회는 교회 안의 회중을 위하여서도 존재하지만 교회 밖의 사회를 위하여서도 존재하는 사적(private)이면서 동시에 공적인(public) 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사회와는 동떨어진 사적인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교회 밖의 많은 이들이 교회의 영향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교회와 성직자의 언행에 무관심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또한 포스트모던 문화가 교회에도 밀려들어와서 예전에는 없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C. 엘리스 넬슨이 말하는 "평신도 자유주의”(layliberalism)이다. 평신도자유주의는 어떤 신학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나 가르침이 성도들의 삶에 침투해 들어가지 못한 부산물로 생긴 기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강단에 선포되는 설교에 무관심한 성도들이 유난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다니면서도 신앙인의 정체성을 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다원주의(pluralism)와 상대주의(relativism)이다.
물론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는 기본적으로 별개의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경향을 강조하기 위하여 동격으로 사용하였다. 지식-원리 중심주의에서 다원-상대주의로 변이되었다는 의미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절대적 지식이나 원리의 수용을 거부하고 어떠한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통로가 있을 수 있으며, 모든 지식은 상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변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인정하는 터가 무너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견해에도 일정한 합리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의 생각도 너의 생각도 다 옳은 면이 있다면 누구의 생각을 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혼합주의로 빠지기 쉽고 무 기준, 무 토대, 무 원칙이 판을 치는 문화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질까? 그것은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돈’ 이다. 그러므로 누가 더 많이 버느냐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실정이 된다. 돈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얻을 수 있고,자신의 향락을 추구하는 절대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전에 자신의 부모세대가 추구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 가지 특징인 감성적 경험주의, 자기중심주의, 다원-상대주의는 결국신앙공동체에 심각한도전이 되었다. 주말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방문해 보면 학생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하여 온갖 선물로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미음마저 든다. 성인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어느 때보다도 더 풍성한 물질적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실 성도들의 영적 삶은 물질적 풍성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된다. 그래서 21세기인 오늘날 오히려 성도들은 과거보다도 더 깊고 넓은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 도처에 영성수련원이 설립되어 영신수련, 침묵훈련 등을 강화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우리는 마이클 다우니(Michael Downey)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이클 다우니는 현대인들이 영성에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를 인류가 경험한 일련의 참혹한 역사적 사건이 준 충격 때문이라고 주장 한다. 유대인 대학살, 대량 핵 파괴, 베트남 전쟁 등이 그것이다. 특히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인간의 손에 의한 전멸’ 이라는 충격을 가져다주었고,'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의문’ 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우슈비츠의 대학살도 악마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구름과 불기둥’ 은 더 이상 출애굽기의 구속적인 은혜를 상기시켜 주지 못하고, 나치의 권력에 종교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신성한 권위,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일지라도 그것에 확실하게 복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기게 되었다. '그토록 엄청난 참상이 벌어질 때 과연 하나님은 무얼 하셨나?’ 와 같은 '의심과 불신(doubt and distrust)의 씨앗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권위에 대한 반항을 싹트게 하였고, 그래서 외적 권위보다는 내면에서 인생 문제의 해답을 갈구하게 되었다. 결국 '교회’보다는 '자신‘ 의 판단이 자신의 믿음을 결정하는 “시금석” (touchstone 혹은 barometer)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종교적 신앙을 지키는 것이 단지 개인 적인 취향이나 개인의 기분문제...... 아니면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는 신념”으 로 치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교회에 대한 반항심과 의심이 싹텄던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무속신앙과 전통적인 종교(예: 도교, 유교, 불교 등)에 향했던 영적인 관심이 복음을 전하던 교회로 향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래의 표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옮겨 가는 전이 과정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교회교육을 향한 도전
위의〈표 2〉에 나오는 것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에 휩싸인 학습자들은 그들만의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그러한 특성을 갖게 한 원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그 세 가지 특성의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 감성적 경험주의는 '즉각적 만족을 낳았고, 즉각적 만족에 길들여진 학습자들은 배움의 정신’ 을 상실해 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신사조가 밀려드는 21세기에 교회 교육이 직면한 도전은 배움의 정신 상실로 요약될 수 있다. 이성 중심주의에서 감성적 경험 중심주의로 변이되는 문화적흐름 속에서 주로 문자로만 기록되어 논리적인 해설 중심으로 교육해 오던 교리교육, 입교문답, 주일 성경공과공부, 설교와 같은 이전에 오랫동안 실시했던 전통적인 교회교육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제 젊은 세대는 ‘문자’ 보다는 '영상’ 에 더 익숙하며,'이성’ 적으로 이해를 추구하는 공부 방식보다는 ‘감성’적으로 마음에 느끼는 학습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21세기 세대들은 쓰고 지우는 것이 손쉬워지다 보니 타인의 글을 허락도 없이 시용하는 것에 별반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의 글에도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필자의 책에 나오는 글도 소위 '블로그’ 라는 데에 무단으로 복사되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당황한 적이 있다. 더욱이 무선 인터넷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언제, 어디 서나,어떤 단말기로도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는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교회교육에도 엄청난 고민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초고속 변화의 흐름이 지속 되고 있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 이상 이제 우리는 의식의 전환을 꾀하여야 하고 선교의 방법과 선교의 장, 교회교육의 교수방법과 새로운 교회교육의 장 (예: 사이버 공간),나아가 예배의 형식과장도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자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에로의 변화는 이성에서 감성으로 그 강조점과 교수법이 옮겨 가는 것에 있기보다는,더 근본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요즘은 이전의 정신세계보다 더욱 피폐해져서, 정서생활은 더 피상적인 자리에 머물 위험을 안고 살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상황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전통적인 교수방법과 예배의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즉각적인 만족에 익숙해져 있는 청중들은 수동적으로 조용히 앉아 말씀을 듣고, 배우며, 천천히 대화와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실천하는 삶에 익숙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인내와 체험, 자기반성과 뼈아픈 숙고의 과정 없이 어찌 종교적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직접 피부로 느끼고, 목소리로 자신이 참여해서 찬송을 부르고,드럼을 두드리고, 몸을 흔들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즉각적인 만족 혹은 현장에서의 경험이 아무리 중요한들 자기가 고뇌하지 않은 지식과 경험이 진정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감성적 경험중심주의로 치닫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교육이 당면한 첫 번째 문제라고 사료된다.
2) 세상의 중심이 ‘자신’ 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포스트모던인들은 자기 생각에 도취되어 격리되어 가고 있다.
모더니즘의 자율성 중심주의에서 자기중심주의로 변이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다른 특징은 어쩌면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더 진보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시작되고 발전된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어쩌면 이전에는 꼭 필요한 통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는 자신의 책,『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s)에서 자기중심적 사고가 가진 치명적인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데, 그 위험성은 바로 사유화(Privatization)라는 덫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분리의 문화’(culture of separation)를 양산했고, 그 안에 서로 연결되어 가는 전체(whole)는 상실된 채, 파편화된 개인(fragmented individual)만 남게 되었다. 그러한 사고는 결코 통합적인(holistic) 삶을 추구할 수 없게 한다.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세상의 중심이 '자신’ 이라 고 착각하며 사는 가운데, 실제 자신은 공동체와는 상관이 없는 '파편화’(fragmentation)된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서로가 연결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교육의 또 다른 도전이다. 자기 생각 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은 중요하게 보지 않는 풍조가 만연한 오늘, 공공의(public) 혹은 모두를 위한 삶보다는 나만의 작은 세계(private world)를 위한 추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저마다 격리된 생활을 하며 ‘왜곡되었으나 왜곡된 줄도 모르고’ 자기만의 껍데기(shell)에 갇혀 사는 이들이 많아진 현실이다.1이
3) ‘다원-상대화’ 라는 덫은 '절대 진리 수용에 대한 거부감’에 사로잡히게 하여 절대자 하나님마저 상대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경험은 대부분 상대적 이라고 보는 시각이 논리적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내가 받은 감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일 수 있다. 또 내가 별 것 아니라고 경험하여 판단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경험될 것이라고 간주하는 생각도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시각에서, 다양한 종류의 인간이 경험 한 것을 기록하여 놓은 것이 종교적인 것일 때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얘 기하는 것은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원주의가 성립하는 기본적인 전제는 과거 소피스트들이 주장한 것과 같이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주장 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고 종합하고 판단하는 것에 모든 진리의 진위 여부가 달려 있다면 다원주의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이런 시각 에서 볼 때, 모든 것은 인간에게 달려 있으며 상황과 개인에 따라 그 경험과 종합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모든 것은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과연 모든 것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달려 있을까?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진리’라는 명제조차 과연 '인간의 경험이나 판단에 의존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물론 인간된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성경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을 통하여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터나 하나님은 인간의 체험과 이해에 의하여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래의〈표 3>은 여기서 논의한 세 가지 도전의 기독교 교육적 함의를 정리한 것이다.
4) 포스트모더니즘의 개인주의가 가져온 최대 악영향은 가정 해체의 속화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단은 예술적인 표현의 지유로부터 된 것이었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부산물은 엉뚱하게도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가정에 영향을 미쳤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감정적인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입장만을 중요시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는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가벼운 결정을 양산하고 있다. 최근 나타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이혼의 비율은 9.3%로 결혼한 11쌍 중 1쌍 정도가 이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전체 누적 이혼 건수(2,620,000건)를 전체 누적 혼인 건수(28,150,000건)로 나눈 것에 100을 곱한 것으로써 주요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가 49%,경제문제가 14%,기족 간 불화가 9%, 배우자 부정이 8%의 순으로 나타났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연도별 이혼 건수 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2003년 167,096건, 2004년 139,365건, 2005년 128,468건, 2006년 125,032건으로 수치가 나온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정부와 해당부처가 이혼의 법적 성립 과정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물론가정 해체의 주범이 포스트모더니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 낸 최악의 결과물이 바로 가정 해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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