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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잘 하려면

예림의집 2012. 11. 24. 15:50

 

찬양을 잘 하려면

 

 

본문: 시편 138장 1-8절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4.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5.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8.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기도: 설교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죄인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이 우리 성도님들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겨져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제가 가끔씩 받는 황당한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차라리 ‘천당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됩니다!’ 라고 답을 해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찬양을 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야말로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기사는 운전을 잘 해야 하고, 요리사는 요리를 잘 해야 하듯이,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잘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간난아이가 어머니의 젓을 빠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우리 믿은 성도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기도도 잘 해야 하고, 전도도 잘 해야 하며, 헌금도 최선을 다해 바쳐야 하고, 헌신봉사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천국 가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찬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찬양 받기를 좋아하시는지, 천국 가서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원히 해야 하는 것이기에, 찬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찬양을 잘 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우리 평생의 순제요, 고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중요한 찬양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칼로 무 쪼개듯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찬양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조건만을 충족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실로 여러 가지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하나님께서 주신 목소리로 은혜롭게 부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정답이긴 한데, 실제로 성도님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을 잘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고대합니다. 찬양은 무엇보다도, 열정과 마인드만 있으면 누구라도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도, 헌금, 전도, 헌신, 봉사 등의 여타 항목과는 달리, ‘음악’이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입고 있고 반드시 이 껍데기를 깨부수고 들어가야만, 안에 있는 맛있고 말랑말랑한 찬양의 속살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음악이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정복하고 깨부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며, 찬양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유도, 실상은 이 음악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의 벽’이라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파티에서 축하해 줄 때, 그냥 말로 ‘생일 축하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밋밋하고 썰렁하기 때문에, 거기에 곡조를 붙여서 ‘Happy Birthday to you~~’ 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말로 할 때보다 훨씬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꼭 한 달 후면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그 때에도 우리는 “예수님 생일 축하합니다.”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보다 ‘Happy Birthday to jesus~~~'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싫어 표현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어려움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많이 부르고 들어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일 축하곡을 할렐루야 성가대처럼 매번 다른 곡으로 불러줘야 한다면, 더욱이 완전 4부로 화음을 맞추어 매주 한 번씩 의무적으로 축하해 줘야 한다면, 그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이미 축하가 아니라 부담이며,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벽이다. 어차피 생일축하곡 이니만큼, 가사의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어떤 곡조(음악)로 포장되었느냐에 따라, 쉽고 즐거운 축하곡이 될 수도 있고, 어렵고, 부담스럽고, 힘든 노동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음악의 벽을 넘지 못하면,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인 메시지(가사의 내용)까지 죽어 버립니다.

찬양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옛날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곡조의 찬송가를 부를 때면 절로 감흥이 나며, 가사의 내용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 와 그야 말로 완전한 ‘나의 노래’가 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은, 이미 너무도 익숙한 곡조가 완전히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가사만 얹어 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부르지 않던 생소한 찬송가를 부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듣는 곡조 배우랴, 박자 신경 쓰랴, 가사의 내용은 거의 관심 밖의 일이 되고 맙니다.

결론은, 곡조와 가사, 즉 다시 말해 형식과 내용,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완성된 찬양을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우리 주위에 보면,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능한 사냥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두 마리 중에 어느 한 마리만 잡아야 할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그 때는 주저 없이 곡조를 버리고, 가사(내용)를 택해야 하겠지만 질서의 하나님, 음악의 하나님, 조화의 하나님께서 당연히 아름다운 선율이 덧입혀진 온전한 찬양을 더욱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제 “찬양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본격적으로 하겠습니다. 곡조 없는 가사는, 앙꼬 없는 찐빵같이 무덤덤하고 맛이 없으며, 반대로, 가사 없는 곡조는, 그야말로 영혼 없는 몸과 같이, 전혀 생명력이 없는 껍데기 장식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기형적인 모양이 아니라 아름다운 곡조와, 영혼을 울리는 가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찬양이라는 것이 명백한 이상 이 음악의 벽을 누가 먼저, 누가 빨리 정복하고, 가사의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느냐가 찬양을 잘 할 수 있는 관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음악의 벽을 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음악 하면 부르르 치를 떠는 사람부터,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만 봐도 지끈거리며 두통을 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만 잡으면, 음악의 벽을 넘어 찬양을 잘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해법이 분명히 있으며 결코 쉽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절대 절망할 필요까지는 없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노래실력(가창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 말만 듣고, 벌써 ‘나는 안 돼~’ 라며 좌절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기서의 노래 실력은, 가수 같은 프로급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아입니다. 노래를 함께 따라 하며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정도면 되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노래를 못하는 음치로 태어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창력의 향상이 가능합니다.

본래 음악적인 재능(음악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적 영향이 크다는 것이 음악계의 정설입니다. 그러한 영향이 절대적인 상위 1~2%(음악천재) 및 하위 3%(음치)을 제외한 95%의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노력과 개발 여하에 따라 상당 수준까지 음악성을 높일 수 있다. 음대에서 성악을 배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호흡법과 발성법을 제대로 익히고, 음감을 기르는데 주력한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가창력을 키워 노래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위 3% 그룹에 속한 진짜 음치가 아니라면 ‘나는 노래를 못해’ 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변명이거나 거짓말이거나 음악적인 재능을 썩히고 있는 무관심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여러분 앞에는 공짜 음악 선생님인 성가대 지휘자이신 유병호전도사님이나 오랫동안 찬양 사역을 했던 제가 있습니다. 우리를 믿고 신뢰하며 순종하십시오. 짧은 시간이지만 틈틈이 하는 훈련과 연습을 성실히 따라 해 보십시오. 최소한 정해진 정규 연습에 절대 빠지지 마십시오. 시간과 돈을 좀 더 투자한다면, 서점에서 얼마든지 음악의 기초이론이나 노래 잘하는 법을 설명한 좋은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러분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열심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보와 발전이 없다면. 연습 할 때마다 음정박자 못 잡고 자꾸 지휘자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미안하지만 하위 3%의 음치그룹일 확률이 높다. 여러분은 주님의 뜻에 따라, 노래의 달란트를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 내에서 성가대나 찬양팀 말고 다른 봉사를 찾아보십시오. 아마도 그분은 우리가 받지 못한 신유, 방언, 가르침, 봉사, 전도 등의 은사가 있을 지도 모른다. 교회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그래도 창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특수 훈련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1~2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노래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이제 음악의 벽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절대 착각하지 말 것은, 가창력을 키워 놓았다는 것은 음악의 벽을 넘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지, 결코 넘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기초체력을 튼튼히 다져 놓는 것이 선수로서의 기본 조건을 갖추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올림픽 메달을 위한 첫 걸음을 겨우 뗀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창력과는 별도로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는 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볼 때마다 가끔씩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중이 좋아하는 히트곡을 하나 만들어 내면 그 한 곡을 두고두고 우려먹으며 엄청난 돈을 벌고, 운이 좋으면 평생 먹고 살 만큼의 부를 챙기기도 합니다. 요즘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전국을 흔들고 나아가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히트곡을 내기 위한 노력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하지만 교회의 성가대나 찬양팀은 그렇지 않습니다. 늘 새로운 곡을 성도들에게 공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가대나 찬양팀이 정말로 잘하는 몇 곡을 선정해, 매 주일 그 곡만을 부르며 찬양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매 주일 연습 때문에 마음 졸이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고, 매번 하는 곡이니 완성도도 놓고 실수할 염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찬양단과 성가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이웃한 두 집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한 며느리는, 요리 솜씨는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요리법을 연구하고 배워서 날마다 새로운 요리를 온 가족에게 선보이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음식이 맵고 짜고 간도 안 맞고 태워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며 날이 갈수록 음식솜씨가 좋아지는 며느리를 보면서 시부모와 남편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집 며느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자신 있는 한두 가지 요리만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온 가족에게 매일 그것만 먹였습니다. 바쁜 시간에도 그 요리라면 눈 감고도 후닥닥 만들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맛이 좋으니 며느리의 요리솜씨를 칭찬하던 가족들도 매일 똑 같은 음식만 먹다 보니, 완전히 질려서 나중에는 안 먹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는, 며느리가 뭔가 다른 음식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이러한 며느리를 좋아할 남편이나 시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시부모의 눈 밖에 날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육개장을 정말 맛깔스럽게 끓이십니다. 그래서 지치고 피곤할 때는 면목동에 사시는 어머니께 가서 육개장을 얻어먹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따듯한 국물이 제 배를 데워주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육개장을 얼려서 제 아내에게 싸줍니다. 그러면 그 날부터 며칠 동안 아침, 점심, 저녁 육개장만 먹어야 합니다. 맛은 그대로인데… 뒷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님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우리 성가대나 찬양팀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메뉴도 이와 같습니다. 좀 부족해도, 좀 모자라도, 우리가 날마다 연습하고 노력하며 날마다 새로운 최선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보시는 것입니다. 자신 있게 잘 만드는 메뉴라고 해서 매일 그것만 내놓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식을 외면하시고 드시지 않는 날이 곧 올 것이며 심지어 완전히 하나님 눈 밖에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 주일 새로운 곡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성가대의 숙명입니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곡을 익힐 수가 없고, 곡(형식)을 완전히 익히지 못하면, 가사(내용)는 더더욱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익은 밥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길 소망합니다. 자 지금까지 이야기는 성가대과 찬양팀에 집중된 이야기라면 이제부터는 모든 성도님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찬송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찬양의 기능적인 면을 이야기 해드렸고 이제부터는 그 내용적인 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입버릇처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찬양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 같이 역대 상 16장 28,29절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이 말씀 가운데 우리는 분명히 찬송을 비롯한 모든 섬김의 기준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이라는 것입니다. 합당이라는 말의 뜻은 '딱 알맞다'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권위에 꼭 맞는 찬송과 헌신을 하라는 뜻입니다. 옛날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가끔 흑백 TV를 통해 대통령의 해외 나들이 때에 행정부에서 주관하는 환송 및 환영 행사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거의 없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대단했다. 심지어 김포공항에서부터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길거리에 차량 한 대도 세워놓지 못하게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큰 도전과 무언의 메시지를 남겨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할 때,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찬양을 해야 합니다.

대중 앞에 서서 찬양을 인도하다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저희 교회에는 업습니다만, 찬송 중에 껌을 씹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데 옆 사람과 잡담이나 늘어놓는 사람, 매 주마다 등산복 차림으로 나와 예배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는 사람들, 심지어 화장실에서나 신을법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들어오는 사람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하나님을 그저 인자하신, 좋으신, 편안한 하나님으로만 제한하고 자신의 편의에 맞추어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최소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매너도 없이 하나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운운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찬양단과 성가대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예배시간에 늦거나, 연습 시간의 늦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첫째가 바로 교통체증입니다. 차가 연착 되었다느니, 도로가 미끄러워 막혔다느니…. 여러분 차가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요? 요즘은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절대로 늦을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15년 동안 찬양 사역을 하고 있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던 적과 철원에 있는 군부대에 방문할 대 검열 문제로 지체되었던 단 두 번의 경우 외에 집회에 늦은 적이 없습니다. 수많은 교회와 집회 장소를 다녔지만 지각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의무이며, 마음에 소원을 품고 기다리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코리안 타임이란 말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만큼은 코리안 타임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두 번째 이유는 밥 때문입니다. 아침밥이 늦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참으로 궁색한 변명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 후 점심식사를 대접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고요. 아침 한 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유 한 잔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오히려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오전에 찬양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매번 굶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밥이 매번 지각하는데 대한 원인을 제공한다면 그까지 것 굶고 온전히 예배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계란 프라이 한 개와 우유 한통 후딱 먹고 집을 나서시길 바랍니다. 가족들의 아침 때문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아침을 포기하고 교회를 향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족들은 “믿음이란 저런 것이구나!”를 배울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을 기다리게 만들지 맙시다. 대통령이 만찬을 베풀어 놓고 신하들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모습이 과연 얼마나 우습겠는가? 하찮은 세상 관료들도 면담 시간에 제대로 맞춰가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우리의 입으로 만 왕의 왕이라고 찬송하는 하나님을 이렇게 홀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오전에 예배 전에 찬양을 인도하면서 한 가지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예배 40분 전부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대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이다보니 찬양에 힘도 없고, 소리도 적고 아버지께 너무 부끄럽습니다. 우리 성가대가 조금만 더 일찍 내려와서 40분부터 함께 힘 있게 찬양하게 해주세요.” 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찬송은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15년 동안 찬양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돌며 찬양사역을 하였습니다. 처음 찬양단을 조직할 때에 많은 질문을 메일로, 전화로, 댓글로 받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질문은 "찬양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첫째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였습니다. 즉, 오디션의 첫 번째 관문이 무엇이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의 제 소신을 이렇게 말해주곤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감사의 샘물이 넘쳐나고 있는가를 제일 먼저 확인해 봅니다."

사실 저는 이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동역 관계를 맺어오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이라면 주의 사역은 오직 감사함으로만 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역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이 많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 첫째 덕목으로 “감사함”을 손꼽는다. 저희 교회에 할렐루야 성가대나 엘림 찬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우선순위가 감사함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나 전도 잘 하고 헌신 잘 하고, 찬양 잘하는 사람은 재능이나 열심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그 마음속에 감사의 샘물이 넘쳐나기 때문인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50장 23절에서 이르기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고 말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는 헌신은 이처럼 하나님도 기뻐하시거니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 좋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넘쳐남으로 그 감사의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찬양은 전심으로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 찬송하는 비법입니다. 전심으로 찬양하느냐 안 하느냐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송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면서 그 기준을 인류 성악가나 대중가요 가수들의 가창력에 두셨다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크게 낙심하여 찬송가를 폐기처분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에는 가창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어느 수준을 요구하지도 않고, 아울러 아름답게 불러야만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할 때에 가창력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신학교를 다닐 때에 방과 후 공부로 "음치탈출" 교실을 진행했었습니다. 당시 십여 명의 학생이 열심히 음치탈출을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첫날 한 말 중에 하나가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악기" 라는 말을 하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위안과 감사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운 목소리, 화려한 연주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남보다 가창력이 좀 더 뛰어나다고 해서 우쭐댈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찬송에 관한 하나님의 관심은 외형에 있지 않고 그 중심에 있으며 바로 그 열정의 농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오후예배를 열린 예배로 드리고, 창양단도 만들고, 찬송가 이외의 곡들도 예배 때 사용하는 등 찬양의 모습들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찬양의 의무를 성가대에게, 찬양팀에게 떠넘기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 즉 예배, 기도, 찬양, 감사, 헌신…. 등은 모두 하나님과 나의 개개인의 일대일 관계입니다. 누가 대신해 주거나 대표해 주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명심하길 바란다. 저희 교회에도 안타까운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오후 주일 찬양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님들의 수가 너무나 적습니다. 더구나 20분전부터 모여서 찬양을 드리는 성도님들이 찬양예배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적습니다. 너무 어렵고, 따라 하기 힘든 찬양을 많이 해서 그럴까요? 인도하는 제가 너무 부족해서 그럴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주일 오후 2시 40분부터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길 기뻐하신 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가대원 여러분, 찬양단원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맛있게 지은 찬양의 밥상을 올려 드립시다. 정성을 다해 준비합시다. 여러분이 맡은 그 직분은 천사도 흠모할만하고, 그 어떤 직분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마음을 다하여 찬양합시다. 지휘자님과 찬양인도자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순종함으로 합심하여 맛있는 찬양의 밥상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찬양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전심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오후 예배시간 20분 전에 꼭 오셔서 함께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 봉성교회가 매 시간마다 찬양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죄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찰진 찬양의 밥상을 주님께 올려 드리는 성가대와 찬양팀이 되게 하시고, 봉성교회에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하당하게, 감사함으로, 전심으로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