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거룩한 습관(6) 감사
마 26:26-28, 요11:40-42
지난, 12월 6일은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4주년이 되는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솔로로 살다가 결혼한지라 서로간의 자아가 너무 강해서 처음 몇 개월간은 무척 다툼이 심했습니다. 또한 지난 3년 동안 여러 가지 고난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과 고난이 왔을 때 이를 이겨나갈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인 것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시면 됩니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과 함께 드실 수도 있고 물 없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 천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무료입니다. 이 치료책을 일컬어 저는 ‘댕큐 테라피(thank-you therap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오래전 지금으로부터 이 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탱큐 테라피’를 자신의 평생에 적용하며 사신 분이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또 하나의 거룩한 습관인 감사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생애에 나타난 일상의 자취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언제 어떻게 감사하며 우리의 일생을 살 것인가를 학습하고자 합니다.
첫째 질문은, ‘언제 감사할 것인가’입니다.
1. 음식을 취하기 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 식사 전에 반드시 기도하십니까? 꼭 매끼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본문이 최후 만찬의 장에서 27절에 보면 예수께서 또 잔을 가지사 무엇을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감사기도를 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만찬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5병2어의 기적에 앞서 그분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이 주님이시라면 그 일용할 양식을 받고 이 땅에 생존의 은혜를 누림을 인하여 우리가 그분에게 감사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이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인류들이 생존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먹을 수 있는 은혜가 적은 은혜이겠습니까? 유엔 식량 농업기구(FAO,2003년 통계)에 의하면 지상에서는 세계 인구 가운데 8억 4천 이백만이 기아인구라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구 의14%, 그러니까 7-8명중 한 사람은 하루 한 끼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매년 약 2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존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한 끼의 식량을 앞에 놓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는 얼마나 절실한 일상의 기도이겠습니까?
2. 축복을 인지할 때 감사하십시오.
우리 말 성경번역에서 예수께서 식사 전에 ‘감사하셨다’를 많은 경우 ‘축사하시고’라고 번역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거의 신약 성경에서는 ‘감사’와 ‘축복’이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식량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지하셨고, 그래서 그분의 식전 ‘감사의 기도’는 동시에 그 축복이 다시 나누어지기를 소원하신 ‘축복의 기도’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축복의 기도는 다시 축복을 나누는 기적을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5병2어 기적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마태 14:19의 소위 5병2어의 기적의 현장의 리포트를 다시 읽어 보십시오. “무리를 명하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감사하시고)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사실 이 상황에서의 감사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지 않았습니까? 무리들의 필요는 엄청났는데, 한 아이가 가져온 점심은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5병2어의 기적의 정체는 차라리 ‘감사의 기적’이라고 할만합니다.
3. 삶의 위기 앞에서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 감사하셨습니까? 그는 식사 전에 그리고 축복을 인지하셨을 때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언제 감사하셨을까요? 그는 위기 앞에서 감사하셨습니다. 오늘의 두개의 본문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두개의 본문이 다 삶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본문인 마태복음 26장은 소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의 예수님의 감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면 당신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둘째 본문인 요한복음11장은 예수님의 사랑스런 친구가 직면한 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친구가 병을 앓다가 갑자기 죽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친구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친구의 죽음이 친구의 부활의 현장이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여전히 슬픈 것이고 아픈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친구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이내 감사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질문(결론적 질문)은,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한마디로 그 성경적 대답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슬프고 아픈 상황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이 다스리고 있음을 믿으시면 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를 믿으시면 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확신위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고 믿습니다. 그 분의 죽으심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것을 믿으셨기에 십자가의 피의 잔도 감사로 받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친구의 죽음조차도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르치는 도구가 될 것을 믿으셨기에 감사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중고등부 모임이 여러 가지 문제를 나누는 기도의 마당일 뿐 아니라, 감사를 나누는 중고등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 많지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도를 나눌 수 있는 중고등부가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도를 올려 드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기도에 선하신 응답이 이루어 질 것을 믿기에 감사하는 중고등부, 이런 중고등부야말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테이블처럼 구원의 은혜와 부활의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의 마당이 될 것을 믿습니다. 감사하십시다. 감사를 습관화 하십시다. 그러면 오늘 종려 주일을 맞아 우리도 호산나를 외치던 예루살렘의 아이들처럼 큰 소리로 외쳐보십시다. “감사합니다. 주님/Thank You-Lord”라고.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자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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