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하나님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②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 이후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계속 교회 문제에 간여하여 여러 교회 지도자들을 귀양보내게 된다. 교회의 고위 성직들은 자주 황제와의 관계에 따라 좌우되었다. 궁정에는 항상 교회내의 분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로 득실거렸다. 그 결과 황제들의 권력은 비위에 거슬린 성직자들을 유배시켜 버리는데 흔히 사용되었으며, 이들은 또한 교회 내의 세력 판도가 변하여 다른 이들이 황제의 호의를 입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다시 귀환하곤 하였다.
특히 아타나시우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황제의 권력이 교회의 움직임을 얼마나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알렉산더 감독의 나이젊은 조언자로서 니케아 회의에서 좀더 연장자였던 아리우스를 대항하여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얼마 안되어 겨우 33세의 나이로 그는 알렉산더를 계승하여 주요한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감독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후 5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누가 아리우스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타나시우스는 무려 다섯 번에 걸쳐 유배의 길을 떠나야 했다. 이러한 유배와 이에 따른 다섯 차례의 알렉산드링아에의 귀환은, 황제의 교체나 혹은 당시 누가, 혹은 교회의 어느 그룹이 활실 내에서 황제에게 가까운가의 결과였다. 아타나시우스는 때에 따라서는 너무나 황제의 눈 밖에 났으므로 모든 지지자들로 부터 버림을 받은듯 보일 때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 가운데 한번은 그가 유명한 저항의 구절을 발하였는데, 바로 "전 세계를 대항하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against the world)"가 그것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는 전 제국을 대항해서라도 혼자 설 것이었다.
이 50년 동안 아리우스 문제에 관한 맹렬한 논쟁이 계속되었다. 니케아 회의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반 아리우스파(Seni-Arians)라고도 불리는 온건파들이 원래의 엄격한 아리우스파로부터 떨어져 나와 "동일 본질"의 구절을 새로이 해석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들은 말씀과 그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호모이오스(homoios), 즉 비슷하다, 훅은 유사하다는 단어를 쓰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당파가 생기게 되었다. 아타나시우스가 이끄는 파는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를 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리스도, 즉 말씀께서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우리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없다. 다른 파, 반 아리우스 파에서는 호모이우시우스(homoisusios)를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비슷한, 혹은 유사한" 본질임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기번은 그가 저술한 <로마제국 쇠망사> 속에서 이 때 기독교 신자들이 겨우 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싸웠다고 비웃었다. 그렇다.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점이었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역사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 속에 셋인 존재 (0) | 2012.10.29 |
---|---|
진정한 하나님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③ (0) | 2012.10.29 |
진정한 하나님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 (0) | 2012.10.28 |
신비의 해석 (0) | 2012.10.28 |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 (0) | 2012.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