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구약성경

예림의집 2012. 10. 2. 09:30

구약성경

 

  신약성경에는 주로 구약성경이 인용된다. 구약성경을 통해 정립될 수 있는 신학에 기초하여, 구약성경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신약성경은 기록되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사상적-신학적 기초가 된다. 구약성경을 정확히 알아야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서로 연구를 위해 구약성경을 빼놓을 수 없다. 구약성경의 배경 문헌인 고대근동문헌도 이런 점에서 신약서론 연구를 위한 문헌이 간접적으로 될 수 있다. 예로, 십일조, 헤렘, 십자가 신학을 생각해보자.

  구약성경 인용문제, 인용의 범위 문제(구약 전체 혹은 일정한 부분), 인용의 오류 문제(스가랴 11장 13장 예언을 예레미야로 마태복음 27장 9절)를 기자의 한계로 해결할 것인가, 독자의 한계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인용한 성경이 차이로 해결할 것인가? 우리와 그들이 가진 구약성경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매우 심각한 차이일 수 있다. 독자 때문에 이렇게 인용했다면, 기자가 수정해주었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기자의 한계로 해결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하실 때 이 문제를 왜 다루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자의 다양한 한계 예를 들어, 언어적 한계, 시간적 한계, 공간적 한계, 문화적 한계와 함께 '지식의 한계'가 인정된 유기적 영감을 생각하면 인용이 오류 문제(어떤 면에서 이 점을 오류로 보는 것은 기자와 우리가 가진 지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렇게 본다고 해서 기자가 우리보다 아는 바가 적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성경기자보다 더 많이 아는 것(예로, 수학이나 과학지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았고, 그 지식을 성령의 영감을 통해 1차 독자뿐 아니라 우리에게 전달하는 지적 능력은 우리보다 뛰어날 뿐 아니라, 그 지식을 부족함 없이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고 여겨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