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지 못할 죄에 관한 문제
처음 2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세례를 받는 순간 그때까지 지었던 평새으이 모든 죄들이 다 사해진다고 생각하였다. 세례 이후의 심작한 죄진들은 특별한 치유를 받아야 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세 가지의 죄들-성적 부도덕, 살인, 신앙의 배반(배교)-의 경우는 하나님의 의해서는 용서받을 수도 있으나, 교회는 이를 용서해 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죄를 범할 경우는 교회의 교제로부터 추방되고, 성찬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성찬은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한 통로였으므로, 성찬 금지의 처분을 받는 해당 개인의 영호은 위험한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를 가리켜, "불멸에 이르는 처방이요, 죽음의 방지제"라고 불렀다.
3세기 초방는 교회를 위해 장기간 평화가 계속되었던 기간이라 할 수 있었다. 로마 당국에 불려가 고초를 당하는 신자들도 거의 없었다. 이제 영적 전쟁은 과거사처럼 생각되었으며, 많은 이들은 교회의 치리를 보다 완화시키라고 요구하였다.
회개하는 신자를 공식적으로 다시 교회에 받아들였던 최초의 인물은 로마의 감독이었다. 칼리스투스가 가음죄를 범하고 회개한 자를 성찬에 참여시켰던 것이다. 그는 교회란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다고 하였다. 그 속에는 깨끗한 짐승들뿐만 아니라, 더러운 짐승들도 함게 들어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자기의 행동을, 로마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인데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인간들의 죄를 매고 푸는 권한을 주셧다는 이론으로 정당화하였다. 이 사건이 로마의 감독이 자기에 속한 특수한 권리를 주장했던 최초의 예이다. 당시 북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터툴리안은 이 소식에 접하고는 공포에 질렸다. "우리들은 배교자들은 용서하지 않는데, 어떻게 간음자들은 용서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는 과거로부터의 목소리였다. 미래는 칼리스투스에 속해 있었다. 사실, 간음자들을 용서할 수 있다면. 구태여 배교자들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심하게 그 대다블 찾기 시작하였다.
A.D. 250년 이제까지 교회가 당했던 가장 극심한 박해가 데키우스황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뉴브 강변, 국경 지방의 무장 출신이었던 데키우스는 기독교를 뿌리 뽑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야말로 제국의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의 무신론 때문에 나라가 갖가지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데키우스는 제국의 모든 시민들은 전통적인 로마의 신들에게 제사를 바쳐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한 자들에게는 그의 명에 순종했음을 확인하는 뜻으 증명서(라틴어로 libelli)를 발급해 주었다. 이 명령에 불복하고, 동정적이거나 혹은 부패한 관리들로부터 이 증명서를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지 않은 자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많은 신자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굴복하였다. 실제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면서도 증명서를 구해낸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숫자를 알 수 없는 많은 신자들은 순교와 투옥 당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들 중에는 로마와 안디옥과 예루살렘의 감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죽음을 당한 이들은 "순교자(martyr)"라 불리었다. 이는 원래 "증인(witness)"이라는 의미였으나, 죽음으로 자기들의 신앙을 충실하게 증언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데키우스는 기독교인들은 영웅으로 만들 의도는 없었다. 그는 기독교의 명망을 망쳐 버리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은 처형되지 않은 채 "황제가 주님이시다."는 말로써 그 신앙을 저버리기까지 고문을 당했다. 만약 신자가 신앙을 부인하지 않은 채, 이러한 악형을 견디어 내면, 그는 "고백자(confessor)"라는 명칭을 받았다. 만약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로마 당국에 굴복하는 경우엔 "변절자(lapsed)"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고난은 일시적으로나마, A.D. 251년, 그의 신들에게 버림을 받았는지, 데키우스가 야만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자 죄인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 여부의 문제가 새로운 열기로 논의되기 시자했다. 많은 교인들이 배교의 죄를 지은 바 있었다. 어떤 경우엔 회중들의 사분의 삼이 변절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은 영적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채, 제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마치 대제사장의 제택에서의 베드로처럼 이들은 그들의 주님을 부인했다가, 이제는 가슴 아픈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이들이 교회에 다시 들어오지 못한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모두 잘 깨닫고 있었다. 카르카고의 감독 키프리안은 한마디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의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원이 사무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떻게 신앙을 부인한 자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곧 용서 받을 길이 없자는 "성령을 거스리는 죄"가 이니겠는가? 공포나 고통의 이유를 막론하고 구원에의 유일한 길을 부인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죄가 어디 있겠는가? 만약 이 죄를 용서한다면, 무슨 죄든지 용서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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