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죄인들을 위한 학교: 감독들의 권위
"바람은 그가 원하는 대로 불어간다"고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성령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이 바로 이러하다." 또한 사도들의 시대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다. 성령께서 자유스러이 교회 속을 운행하시면서 신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시며,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성령에 의한 중생이 신자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표지라고 생각하였다. 이미 바울 사도도 로마의 교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는 그리스도에 소한 자가 아니다." 물론 세례를 받는 것이 이러한 소속의 의부적 표지였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자기들이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가르쳐 달라는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당신들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당신들은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행 2:38)."
그런데 만약 신자들이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은 후 심각한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인간의 가장 추악한 죄보다도 더 위대한 거싱 사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들이 범죄하는 것을 허락해야 하지 않겠는가? 혹은 세례 후에 짓는 죄들 가운데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도 있는 것일까? 3, 4세기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두고 깊이 씨름해야만 했다. 특히 몬타누스가 "일종의 황홀 상태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교회가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범한고 있다고 비난한 후에는 이러한 자기 성찰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몬타니즘의 예언 행위와 도덕주의적 행태를 정죄하는 과정 속에서, 기존 조직(institution)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세계를 향해 설교하으로써, 그 우주 보편성을 잘 드러내었다. 이단들과 대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 정통주의 신학을 보가 명확하게 성립시켰다. 죄와 투쟁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 감독제도(Episcopacy)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교회가 감독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위를 부여했을 때 가톨릭 기독교는 완성된 것이었다.
감독, 혹은 주교들의 권력과 특권을 그 바탕으로 하는 감독주의는 느릭 속도로 발전하였다. 우리들이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무에게도 그 권위를 도전 받지 않았던 제 1세기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이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여행한 인물들이었으며, 그의 부활의 증인들이었다. 그러나 성령은 그가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신다. 선지자들과 교사들, 그리고 이적을 행하는 자들이나 병을 고치는 자들 역시 성령의 능력을 주장할 수 있었다.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둘러싸고 혼란과 무질서를 겪어야 했던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눈 앞에 보면서도, 바울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 역사하시는 사실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사도들로, 둘째로 선지자들을, 셋째로 교사들을 지명하시었다.... 성령께서는 그가 결정하시는 대로 교회에 베푸신다(고전 12:2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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