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스크랩] 감독들의 위치

예림의집 2012. 9. 30. 14:15

감독들의 위치

 

  이 문제에 관허여 서로 다른 세 가지의 대답들이 가능하다.

  (1)일부 기독교인들은 초대 교회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제도와 형태를 오염시키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이 발생시킨 변화는 부인되어야 하며,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교회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원시 기독교의 보구"를 외치는 이들의 전제이다. 우리들은 이들을 가리켜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교회의 역사상 대부분의 개혁운동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사도 교회의 모습 가운데 과연 어느 정도가 그후의 모든 교회들이 그대로 답습해야 할 항구적인 부분이었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의 장로 제도를 우리들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여인들은 교회 안에서 침묵해야 한다는 명령도 역시 그래도 준수해야 할 것인가?

  (2)또 다른 신자들은 교회와 그 지도자들이 어떤 신적 권위을 부재 상태에서 자기들에게 주어졌던  자유를 행사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고안해낸 교회의 조직은 그들의 시대를 위해서는 최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대를 포함하여, 그 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는 계속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은 주로 역사 발전의 흐름 속에 깊이 젖은 사회적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에 깊은 인갓을 받은 이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주의자"들의 입장이다. 이러한 신자들은 직접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어떤 신앙이나, 교회 조직의 형태도 파악해내지 못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 극단적인 모습으로는 일체의 절대적 가치나 기준을 소유하지 못한 기독교로 전락하는 것이다. 모든 일들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어 버린다.

  (3)또 다른 신자들은 성령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면서 그 결정들을 인도하셨으니 만큼, 교리와 교회 조직에 관한 초기의 "발전들"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들은 교회를 위하여 영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가톨릭" 기독교이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이 대답은 흔히 이들이 부르짖는 바 "역사의 증언(Winess of History)" 이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제 2, 3, 4세기의 병화를 성령의 하신 일로 간주한다면, 18, 19, 20세기에 이루어졌던 변화들은 또한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왜 우리들은 이러한 현상을 소위 "가톨릭" 시대에만 국한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계속 남게 된다.

  감독직의 고양 현상이 과연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우리들의 의문은 이에 대한 대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에 관해 너무나도 많은 이론드링 난무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어려운 문제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의견들의 존재가 오늘날까지도 서로 다른 여러 교파들을 공존하게 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어쨌든 3세기에도 이미 많은 이들은 감독 제도의 성립은 성령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하였다.

  1, 2세기의 신자들은 성령의 능력의 증거를 어떤 교회내의 직책에서가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 가운데서 찾았다. 이들은 보혜사를 역동하는 도덕적 에너지로서 이해하였다.

  바로 바울 사도가 이러한 이해의 선구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성령의 사역을 교회 전체를 위한 건덕의 측면에서 파악하였다. 이러한 건덕이란 선하고 순경한 모든 면에서 성장해 감을 의미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영적 중재와 도덕적 생활은 기독교인의 생활의 한 부분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열매 자체요, 목표였다.

 이러한 바울의 강조점은 그후 수 세대를 두고 계속되었다. 초대 교부들과 변증가들의 저술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계속하여 교인들의 성결한 생활을 그 중심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기독교 공동체들이 가장 엄격한 도덕의 가준들을 그 구성원들에게 적용하여, 그들 가운데 일체 거룩하지 못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심각한 죄를 범한 자들은 그들 가운데서 축출해버렸다.

  한 초대 교회의 신자는 이 모습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인간들의 죽음과 죽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죽음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매일 매일 죽음을 경험한다. 자기들의 정욕을 억누르며, 성경을 좇아 이들을 극복해 나간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창피스런 욕망이나, 더러운 장면들이나, 간음하는 눈길이나, 음담패설에 기울일 귀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을까 우려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기독교 회중들의 고상한 도덕적 의식과 생활은 기독교의 진리를 벊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유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변증(Apology)"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기독교의 윤리적 원칙들을 설명하고, 이들이 실제로 준수되고 있음을 증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변증가들이 증명하고 싶었던 점은 기독교인들의 선한 생활이 단지 명목상의 주장이나, 형식적인 이상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에서 살아있던 능력이자 현실이었음이었다.

  아테네의 기독교인 철학자 아테나고라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들 가운데는 우리가 신앙하는 신조들의 위대한 가치를 말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무식한 대중들이나, 직공들이나, 나이많은 여인네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들의 신앙을 행위로 증명해내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도덕적 능력과 성결의 새로운 세계로 승화되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집단은 단지 이들 신자들 자신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대적들까지도 이들의 거룩한 생활의 모습을 인정하였다. 플리니는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그는 기독교인들을 심문하는 가운데서 이들에게서 아무런 범죄 혐의나 악한 모습을 찾아볼수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유스티누스는 신자들의 순결한 모습이 그들의 신실성을 그에게 확신시켰으며, 이러한 인상들이 그로 하여금 기독교에 귀의하게 한 결정적 동기가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우리들은 자주 죽음에 닥쳐서도 용기와 충성을 잃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들의 모습이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강한 충격 때문에 갑자기 기독교로 귀의할 것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3세기 초에 들어서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교회의 뛰어났던 도덕적 성결의 모습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몬타누스의 주자잉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220년 경에 이르러서는, 감독과 성직자들을 포함한 전체 교회의 모습이 그 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명백해지게 되었다.

출처 : 예림의집
글쓴이 : 김정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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