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지도자들
바울은 그의 선교 여행 중 세워진 교회들의 신자들을 위한 영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목회를 담당할 지도자들을 반드시 세워 두었다. 이러한 각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한 그룹은 장로들이라 불리었다. 이들은 또한 감독들, 혹은 목사들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또 다른 그룹은 집사들이라 불리었다.
이들 지도자들이 하는 일은 각 지역들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일발적으로 볼 때, 장로들은 새 신자들을 가르치고, 공중예배를 이끌며, 교회에 필요한 처리를 담당하였다. 한편 집사들은 성찬을 베푸는 일 외의 모든 부문에서 장로들을 보좌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의 시대에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여기 저기로 다니며 교회를 순방하는 지도자들과 아울러 한 특정한 지역 교회에서 머물며 이들의 필요를 돌보는 지도자들의 두 구룹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은 곧 벼화를 보이게 된다. 그 세기가 지난 후, 안디옥 교회의 목사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일련의 편지를 남겼다. 그는 이들 속에서 각 교회의 하나 있는 감독(혹은 목사, bishop)과 일단의 장로들과, 집사들의 집단을 당연한 조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이러한 연합된 지도 체제를 통하여 회중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해서 복수의 장로들가 집사들에 의해 보좌받는 한 사람의 목사의 체제가 교회 안에 널리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러한 형태로 교회가 변화해 간 것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몇 가지 요인들이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점차 그의 보다 뛰어난 능력을 자연스레 인정받으며, 다른 교회들과의 연락을 담당하게 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금을 관리하며, 이단적인 교사들에 대항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고, 성찬을 시행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가 언급한 3층제의 교직제도는 하루 아침에 정착되지는 않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는 A.D. 180녀까지도 알렉산드리아는 단독 감독제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또한 교회들이 이러한 제도를 답습했을 때도 각 지역에 따라 그 시행의 모습에는 차ㅣ가 있었다. 소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무수한 작은 교회들은 각각 자기들의 감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 예를 들어 고올 지방에서는 큰 도시의 감독이 인근 지역의 회중들을 위해 장로들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이들을 모두 자기가 돌보았다.
어쨌든 2세기 말로 접어들었을 때, 교회문제에 있어서 아무도 도전하지 모사는 권위를 갖게 된 것은 감독이었다. 그의 권위는 영지주의자들과의 대결을 통하여 한층 더 강화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사도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교사들의 계통을 주장하였다. 즉,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일부 교사들에게 비밀스런 지혜를 전수해 주었다고 영지주의는 주장하였다. 이들 교사들은 이러한 비밀의 지식을 또 다른 교사들에게 전수하였다. 이러한 비미을 이어 받은 후계자들이 다름아닌 영지주의 파들인 만큼, 가톨릭 교회가 안라 영지주의파의 교사들이 진정한 지식과 지혜와 철학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에 대항하여, 카톨릭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공적인 교훈, 즉 신앙의 규율(the of Faith)과, 사도들에 의해 교회 안에 세움을 받은 감독들의 존재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세기 중엽,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로마까지 여행하였던 역사가 헤게시푸스에 의해 최초로 그 개요가 정리되었다. 그는 그의 여행 중 수많은 감독들을 만나 친교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들의 주장과 가르침은 동일하고 일관서잉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도시들의 감독들을 통하여, 율법과 선지자들과 주님의 가르침은 신실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적어도 고린도와 로마의 경우에는 사도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승의 계통도를 작성하였다.
같은 세기의 말경, 고올의 이레내우스와 북 아프리카의 터툴리안은 이처럼 헤게시푸스에 의해 시작된 반 영지주의적 논증의 뒤를 좇았다. 이들은 사도들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교회 내의 감독들의 전통과 계통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끊이지 않는 전통이 가톨릭 교회 안의 사도들로부터의 교리의 전승을 보장한다는 이론이었다. 따라서 영지주의가 틀리고, 가톨릭이 옳다느 주장이었다.
이러한 교회의 구조와 기능의 변화, 특히 감독들의 역할의 변화는 중대한 논재으이 여지가 있는 문제들을 야기시키게 되었다. 모든 교파의 신자들은 다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며, 후대의 교회들, 특히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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