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믿음의 확장

예림의집 2012. 9. 10. 11:16

믿음의 확장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로마 교인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선 유대인에게 먼저요, 또한 헬라인들에게도 그러하다(롬 1:16)." 초대 기독교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부분은 유대인들인 듯하였다.

  로마 제국 내에는 방방곡곡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이 전체 인구의 7퍼센트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독특한 종교 생활 때문에 이방인 이웃들에게 호기심과 동시에 경원의 대사잉 되었다.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이방인들(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회다으이 가르침이 심오하고도 정확한 지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엇다.

  일부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관심이 있던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즉 회당 예식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자들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복음의 전파는 발 이 집단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받았다. 기독교 설교가들이 이들에게, 할례-헬라인들과 로마인들 모두가 모욕적이고도 거부감을 일으키는 의식이라 생각했던-를 거치지 않고도 유대교가 줄 수 있는 모든 혜택과, 또한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을 때, 이들이 그다지 어렵지 없게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이미 준비된 상태의 엘리트 집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사도 시대와 그후 시대의 전도 활동을 한데 비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성경(구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신학 사상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윤리 가치관에 동의하고 있었다. 아마 기독교 역사상 그 어떤 선교 운동도 이처럼 수확을 위해 미리 잘 예비된 일터는 다시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복음을 위한 준비의 모습은 또한 왜 기독교인들이 쉽게 가톨리적인 사고 방식을 견지할 수 있엇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들은 유대인들의 회당과 마찬가지로 자기들 나름대로의 각 지역적 집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처음부터 자기들을 일종의 새 이스라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의 교제(a fellowship of believer throughout the world)로 파악하였다.

  고대 로마의서, "세계"란 곧 도시를 의미하고 었었다. 바울 사도는 기독교 초기의 전도의 모법을 세웠으니, 그는 제국의 대도시들에 한동안 체재하면서, 그곳으로부터, 보통은 젊은 사자를 통하여, 해당 지역의 더 작은 촌락으로 뻗어나가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이 방법을 통해 복음 전파 과정의 주요 단계들을 추적할 수 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기독교 운동의 중심은 북쪽으로, 그리고 다시 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교회의 두 번째 본부는 시리아 지방의 안디옥이었다. 유능한 감독들의 지도 아래, 제국에서 세 번째로 컸던 이 도시의 교회는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시리아 일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4세기 말에는 안디옥의 오십 만 인구 중 절반 가량이 기독교인이었다.

  에뎃사는 로마 제국의 국경 너머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안디옥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후에 그곳에 교회를 설립한 인물이 아다이(Addai)라는 예수님의 70명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들은 200년경 안디옥 감독 세라피온(Serapion)이 에뎃사 출신의 신자 팔루트(Palut)를 그곳의 감독에 임명했음을 알고 있다.

  이곳 에뎃사로부터 누군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자가 동쪽으로 가서, 인도에 도달했을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잉가 충분히 있다. 소위 "도마의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는 인도 신자들은 이 전도자가 다름아닌 도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 이 주장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쉽게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인도에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교회가 존재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 일세기에 도마가 남부 인도까지 항해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역사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부 아프리카  (0) 2012.09.10
서방으로의 진출  (0) 2012.09.10
3. 오직 가치없는 인간들만이  (0) 2012.09.10
예루살렘의 멸망  (0) 2012.09.10
사도 바울  (0) 201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