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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균과 이순신은 같은 편입니다.

예림의집 2010. 5. 16. 06:52

원균과 이순신은 같은 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전한 제물입니다.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완전하고 온전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떠한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 구원은 내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우리가 다시 사는 것은,
이미 죽어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뿐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비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했던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가만히 들어 온 거짓 형제들”이라 부릅니다.
‘거짓 형제들’은 ‘사탄의 종’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은 “가만히 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것을 보며  범죄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율법을 강조했습니다.  하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다시 율법의 종, 죄의 종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은밀히 성도들 속으로 들어와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를
빼앗고 다시 율법의 종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사탄은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은밀히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혹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유혹인지도 모르게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려 교묘하게 접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음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무장해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이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은혜의 복음에 그 어떤 율법도 첨가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로 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바울과 함께 동행한 헬라인 디도가 그들 가운데 있는 동안 결코 할례를
요구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그에게 예수 믿는 것에 더하여 할례를 또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할례자로 예루살렘에 가서 무할례자로 돌아왔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에는 진리 같아 보이나 진리가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은 우리를 얽매고 종노릇하게 합니다.
진리 안에 있지 않으면 참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서 참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도록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는 도덕적으로 정직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만든 기준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셔서 유대인들의 사도로 삼으셨고,
바로 그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인들의 사도로 삼으셨다는 것을 서로 인정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면서 서로는 ‘친교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복음과 사도권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바 계시와 사명을 사도들을 통해 검증받고
재확인했지만, 자기가 받은 계시와 사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사도들과 바울의 복음 전도의 장이 달랐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고
자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과 은혜는 동일하지만 사명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를 얻었고 의로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사명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부름받습니다.
우리는 각기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데 있어서 방법과 해야 할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는 같지만 은사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다른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이 교회의 질서입니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바울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기 때문에
바울 자신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직임과 사역이 다르다고, 먼저 부름 받고 나중 부름 받았다고
차별하지 않고 환대해 주었습니다.
교회에는 이러한 친교의 악수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된 자는 나중 된 자를 마음으로 받아주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된 자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때
교회는 주님이 주신 사랑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진리이신 주님 안에서, 자유케 하는 복음 안에서
모든 성도와 직분자들은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은 낫게 여기고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방인 가운데서도 복음 전파하는 바울의 모습
또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검증받는 모습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을 확인받는 모습을 봅니다.
오로지 복음 밖에는 몰랐던 사도 바울!  전하는 대상과 지역은 다른지 몰라도
동일한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헌신하는 바울을 봅니다.
서로 교제의 악수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되고 일치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모두가
방법은 달라도 오직 복음 전하는 자 되기를 소원합니다

원균과 이순신은 같은 편이었습니다. 왜군앞에서...
(갈 2:1-10)
창원비전교회 양성완 목사

출처 : 예림의집
글쓴이 : 이기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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