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할 기회 찾기
예수님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계속 옮겨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4장 4절, 한 번은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만 하셨다고 합니다. 반드시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이 말은 지리적인 이유로 사마리아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유대인들이 절대 가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와 같이 여겼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금지된 이방인과의 결혼으로 혼혈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절대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요단강을 건너 베뢰아를 통과했습니다. 훨씬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사마리아로 들어가 영적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렇게 빙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하셔야 했을까요? 아마도 원래 계획했던 길은 여느 사람들처럼 베뢰아를 통과하는 것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기도하시다가 사마리아를 통과하라는 하나님의 촉구하심을 느끼시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 않던가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 있는지 찾아가 봐야 할 옛 친구나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직장 동료, 전화를 걸어 봐야 할 가족이 있다는 느낌을 주셨을 때 말입니다.
더 좋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런 느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가?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매일 이렇게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야 할지 알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여인을 애써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개 그리스도인이 된 지 오래될수록 불신자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보통 교회에 다닌 지 2년쯤 지나면 불신자와 닿아 있던 의미 있는 관계가 모두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그리스도인들과 매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온갖 교회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를 "토끼 굴 기독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고린도후서 5장 14-15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대화를 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회를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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