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변명들①
요한복음의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의 장면입니다. 사실 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의 대화는 여인과의 대화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남녀가 남들이 볼 수 있는 야외에서 대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심지어 남편도 밖에서는 자기 아내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여서이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많은 사람이 일부러 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워낙 과거가 문란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그녀는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당시 유대인은 경멸하는 사마리아 족속과 일절 상종해서는 안 된다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피곤하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나갔고, 예수님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배가 고프면 낯선 사람과의 깊고도 중요한 대화 같은 건 절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듯 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하는 온갖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화를 시작하지 않기 위해 충분히 이유를 대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데 다양한 이유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변명입니다. "내 삶은 별로 모범적이지 않아서 섣불리 나설 수 없다." "나는 전도에 서툴러서 할 수가 없다." "나는 말을 잘할 줄 몰라서 신앙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나는 상대방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곤란하다." 등입니다. 이 모든 이유에서 공통점이 눈에 들어옵니까? 바로 "나"입니다. 이 모든 이유는 "나"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궁극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이유는 변명에 불과합니다. 내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물론 나도 역할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에 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니 잘할 수 없다거나 말주변이 없다는 식으로 걱정하지 맙시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어서 챙겨주십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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