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있는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하니다. 사랑은 한계가 있을까요? 사랑하지 못할 사람도 있는 것이 나닐까요? 한 번 노트에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의 부류를 적어보십시오. 사랑하기 너무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도 인정하시지 않을까요?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그렇다!"라는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보면 우리의 다은 "아니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계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아니 특히,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말 이상의 것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장 절박할 때 만나 주심으로 사랑을 가시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사려 깊게 긍휼을 표현하셨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만지신 사건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병 환자였습니다. 1세기에 나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나병은 사지의 감각을 잃게 만드는 불치병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병 환자를 알아보기 쉬웠습니다. 얼굴이 변색되고 온통 종기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나병 환자의 냄새를 맡기도 쉬웠습니다. 참기 힘들 만큼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병을 하나님의 저주라 여겼고, 매우 전염성이 강한 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나병 환자를 만지는 즉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버림을 당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평생 누구와도 신체 접촉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존재로 선포되어 상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당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면 "불결하다! 불결하다!" 하고 외치며 경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나병 환자들은 절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나병 환자는 용기를 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보다시피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좁혀집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왔지만,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집중하셨고 사랑하고, 그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 철학이요, 일상의 리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병 환자가 랍비에게 다가온 전례가 없었습니다. 감히 그런 짓을 했다간 무자비한 폭력과 굴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랍비셨습니다. 하지만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누구도 멀리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심지어 나병환자도 다가갈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누가복음 5장 12절, "온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라고 밝힙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살이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그 냄새는 마치 그를 둘러싼 방책과도 같아서 누구도 가까이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병 환자는 자신이 다가가도 될 만큼 예수님이 좋은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예수님이 자신을 고쳐 주려 하실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여 하실 수 있다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걸 "원하실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사랑받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그동안 매일같이 확인하고 또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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