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9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4. 3. 11:56

예림의집 2691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두 번째 프러포즈

한 남자와 두 번 결혼한 여자가 있습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23세의 로라 파가넬로는 일하는 동안 머리에 큰 외상을 입어 불과 9개월 전에 있었던 결혼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남편 브레이든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때도 무서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집에서 살면서 부부가 아닌 룸메이트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처음 인연이 되었던 펜팔부터 다시 시작해 2년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아내가 다시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무조건적인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과거의 결혼생활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남편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다시 커플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아내에게 진심을 담은 두 번째 프러포즈를 하게 되었고, 처음 결혼식을 했던 4주년이 되는 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먼 미래를 향해 여정을 떠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등대가 되어주고, 돛도 되어주며 그렇게 의지하며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부부는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곁에 있고 싶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희망의 빛이 전혀 없이..

아이를 사랑하지만, 함께 지내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같은 행성에 발을 딛고 있지만,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았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행동은 더욱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기에게 익숙한 생활패턴이나 이미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면 크게 당황했습니다. 공황장애에 가까운 증세를 보였습니다. 편식이 극심했고, 얼핏 보면 공감과 연민과 도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식구들이 늘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오면,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하염없이 추위에 떠는 일도 생겼습니다. 아이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누이들과 싸우다 화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출하면 말없이 사라지기 일쑤였고, 식당에서 혼자 밥 먹은 후에 돈을 내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른 아이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배우는 모든 일을, 우리 아이는 낯설어했고 힘들게 배워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것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도, 우리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머물러 있는 듯, 희망의 빛이 전혀 없이 막막하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른바 일류대를 나온 사람으로서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던 제 꿈은 오래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없었습니다. 집과 치료실을 왕복하면서 갑갑하게 보내던 나날들, 어찌 보면 아무런 열매도 없이 흘러간 20년 세월 같은데, 그 안에서 마치 대추나무처럼 아이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추나무는, 봄이 와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다 피고 벚꽃이 질 때까지도 싹이 나지 않아서, 죽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대추나무 가지에 어느 날 불쑥 파아란 움이 돋아 쑥쑥 자라서 가을엔 푸른 열매를 맺듯이, 우리 아이는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 올해 10년 차 중견직원이 되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 세상의 연약하고 작은 자들을 어여쁘게 여기시고 가슴에 품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최유진)

우리 속담에 "참을 인(忍)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니, 이런 장애아를 둔 부모라면 세 번만 참아서는 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수없이 참고 또 참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최유진 님은 참 훌륭한 부모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를 거둔 겁니다. 장애아 자녀를 키우면서 연약하고 작은 자들을 어여쁘게 여기시고 가슴에 품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장애아가 없더라도,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알고, 보통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예림단장 칼럼

생명의 말을 할 권세를 주셨다①
 
한 번에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내가 매우 좋아하는 이야기가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이라고 하는 바리새인이 주최한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정결을 지키기 위한 온갖 규칙에 집착했습니다. 언제난 그렇듯 그들 모두는 그날 세상 밖에서 살면서 더러워진 부분을 씻어 내기 위해 식사 전에 정결 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이 저녁 만찬 도중에 그들의 모든 규칙에 위배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누가복은 장 37절입니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죄를 지은 한 여자"를 해석하자면 "마을의 창녀"입니다. 여자는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서 초대장도 없이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바리새인들이 혐오하는 것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 혐오스러운 창녀가 연회장에 들어온 것은 자신들이 이 밤을 위해 치른 정결 의식을 다 망쳐 버린 짓이었습니다. 여자는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그녀는 기피대상 1호였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그녀는 무조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8절,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여자가 들어가니 사방에서 싸늘한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분과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 사람이 한 번도 없었기 대문입니다. 그녀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쩌면 할 말이 있었지만 막상 와 보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무작정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뺨을 타고 흘러 예수님의 발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에 여자는 자신의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헉!"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여자는 모든 규칙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문화권에서 여성들은 머리를 풀지 않았습니다. 지탄받아 마땅한 짓이었습니다. 심지어 여성이 외간 남자 앞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는 것은 이혼 사유가 될 만큼 친밀한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내일 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주님을 향한 헌신과 배신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태복음 26장 6-16절).
 
이번 주에는 고난 주간 QT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주님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인 한 여자의 헌신과 가룟 유다의 배신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귀한 향유를 붓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도 기억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사장들에게 은 삼십에 팔아 넘겨줄 기회를 찾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인지 돌아봅시다.
 
값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6-13절).
헌신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절, 한 여인이 매우 귀한 양유 한 옥합을 가져와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 값어치는 마가복음 15장 5절, 노종자 1년 치 품삯에 해당합니다. 여인의 행위는 제자들의 반발을 불러옵니다. 그들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편이 나았겠다며 현실적인 논리로 여인을 비난합니다. "헌신"을 쓸데없는 "낭비"로 해석한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10절, "내게 좋은 일을 한 것"이라며 여인을 변호하십니다. 이렇게 보는 시각에 따라 그 반응은 달라집니다.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표현으로 향유를 부은 것을, 예수님은 12절, "십자가 죽음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사건"으로 해석하십니다. 참성도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삶을 드리고, 거짓 성도는 예수님을 자기 삶에 이용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린 행동입니다. 반면 예수님에게서 부와 영광을 기대했던 가룟 유다는 에수님을 이용해 돈을 챙깁니다. 참성도는 육신의 형통함보다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14-16절).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아도 예수님이 인정해 주신다면, 우리의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이용하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께 상용되기를 원하는가를 우리의 삶으로 답해야 합니다. 디모데 후서 3장 2절과 4절, 돈을 사랑함과 배신은 마지막 대의 태표적인 죄악입니다. 본문은 주님을 향한 상반된 태도를 보인 한 여인의 헌신과 가룟 유다의 배신을 대비시킵니다. 예수님을 넘겨주면 그 대가로 얼마를 줄지 묻는 장면을 통해 가룟 유다의 관심은 진리가 아닌 돈이라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는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인 은 삼십을 받기로 하고 대제사장들과 밀약을 체결합니다. 이는 스가랴 11장 12절의 메시아 수난에 대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질문은 가룟 유다의 입에서 나온 "얼마나 주겠는가?"입니다. 참복과 구원을 주는 진리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장 중 한 명인 가룟 유다의 관심은 어디 있었는지 되새기고, 유익이나 돈 때문에 믿음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적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우리의 구원되시며,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다른 사람의 헌신을 우리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오해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 무엇보다 주님을 가장 귀하게 여겨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드리는 한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생명 주신 주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헌신하는 우리와 공동체 지체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묵상하게 하시고, 우리도 주님 따라 사신을 내어주어 생명을 살리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은혜에 보답하는 삶
 
찬송가 <성자의 귀한 몸> 4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이 찬양 가사처럼 우리는 만 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은 참 놀라운 은혜입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목청을 돋우어 찬양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이니다. 저는 심혈관 98%까지 막혔지만 시술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때로는 가시도 은혜고, 실패도 넘어짐도 은혜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합니다. 사랑은 용서와 비례합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은 자가 하나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합니다. 충성 역시 받은 은혜와 비례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자가 더 많이 충성합니다. 더 많이 수고합니다. 그러나 진정 은혜를 아는 자는 자신의 수고를 드러내거나 헌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은혜의 감격 속에 살며 주님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드리길 소원할 뿐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더 많은 수고와 헌신과 충성으로 당신이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확증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굳게 서십시오.(은혜에 굳게 서라/ 김은호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기도-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경배입니다. 경배란, 하나님께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돌리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경배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성경의 정의는 시편 104편 3절, "그 성호를 자랑하라!"라는 말입니다. 즉 그분이 누구시며, 또 그분이 자신을 누구라고 계시하셨는지에 대해서 깨닫고 그분에 대한 특별한 경이감 속에서 크게 기뻐하는 것이 바로 경배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경배받으시기에 충분한 분이시기에 경배드리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 경배야말로 우리의 자기 중심주의를 치료하는  모든 해독제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본위주의(egotism)에 빠져 있는 우리를 치료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경배입니다. 우리는 참된 경배를 통해서 우리의 지성과 마음의 조명을 하나님께 맞추어 보고, 일시적으로나마 우리의 문제와 항상 우리를 가로막는 자아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과 복잡함, 이 양면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새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우리는 생각" 합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주기도문의 처음 세 문장은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성호를 거룩히 여기는 것과 그분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지나칠 정도로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하고 더 올바른 일이 없기에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감당해야만 합니다. 경배 중심의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새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등과 같이 목적이 분명한 찬송들을 부르거나 가사를 음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한 찬송들은 오직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게 하고, 또한 그분의 전능하신 창조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쏟게 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에 나오는 무수한 찬송들은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와 체험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관련되서는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을 경배하는 찬양곡들을 많이 부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도의 횃불

물질을 채워주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언 30:8-9).
 
부요케 하시는 주님, 물질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물질을 채워주시옵소서. 저는 물질이 없어 가난합니다. 그러나 가난함 속에서도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이 없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주님,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자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지요? 눈곱만 한 헌금, 늘 주님께 엉성한 정성을 들이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주제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전도를 하고 싶어도 가난한 자의 전도를 누가 받기나 할까 회의적인 생각이 앞설 대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 이런 마음, 아직도 제 믿음이 온전치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는 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이런 제 모습, 단지 욕심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아시지요? 언제라도, 주님 앞에 물질을 깨뜨리고 싶을 때, 다른 것을 걱정하며 머뭇거려야 하는 옹졸함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제라도 봉사하고 싶을 때, 주제넘은 것처럼 느끼지 않고, 열심을 다하여 봉사하고 싶습니다. 저를 이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드리고 도 드려도, 기쁨이 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채워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감사의 나침반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이자 가장 기본적인 일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는 것입니다. 날마다 감사한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입술로 반복하여 말하며 다른 잡다한 생각들은 물러가고 하는 일에 감사한 일들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나침반을 아무리 흔들어도 결국은 남북을 가리키는 것처럼 어떤 환경이나 조건도 감사의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