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빛이 전혀 없이..
아이를 사랑하지만, 함께 지내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같은 행성에 발을 딛고 있지만,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았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행동은 더욱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기에게 익숙한 생활패턴이나 이미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면 크게 당황했습니다. 공황장애에 가까운 증세를 보였습니다. 편식이 극심했고, 얼핏 보면 공감과 연민과 도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식구들이 늘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오면,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하염없이 추위에 떠는 일도 생겼습니다. 아이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누이들과 싸우다 화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출하면 말없이 사라지기 일쑤였고, 식당에서 혼자 밥 먹은 후에 돈을 내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른 아이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배우는 모든 일을, 우리 아이는 낯설어했고 힘들게 배워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것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도, 우리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머물러 있는 듯, 희망의 빛이 전혀 없이 막막하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른바 일류대를 나온 사람으로서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던 제 꿈은 오래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없었습니다. 집과 치료실을 왕복하면서 갑갑하게 보내던 나날들, 어찌 보면 아무런 열매도 없이 흘러간 20년 세월 같은데, 그 안에서 마치 대추나무처럼 아이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추나무는, 봄이 와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다 피고 벚꽃이 질 때까지도 싹이 나지 않아서, 죽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대추나무 가지에 어느 날 불쑥 파아란 움이 돋아 쑥쑥 자라서 가을엔 푸른 열매를 맺듯이, 우리 아이는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 올해 10년 차 중견직원이 되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 세상의 연약하고 작은 자들을 어여쁘게 여기시고 가슴에 품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최유진)
우리 속담에 "참을 인(忍)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니, 이런 장애아를 둔 부모라면 세 번만 참아서는 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수없이 참고 또 참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최유진 님은 참 훌륭한 부모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를 거둔 겁니다. 장애아 자녀를 키우면서 연약하고 작은 자들을 어여쁘게 여기시고 가슴에 품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장애아가 없더라도,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알고, 보통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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