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꿈의 거리①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시편 34:18).
자정이 자난 시간이었으나 케냐의 국경수비원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져온 서류가 효력이 없다며 아침에 이민국에 연락을 하여 서류를 다시 꾸려오라고 했습니다.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도시인 나망가는 황폐하고 지저분한 판자촌입니다. 아들과 나, 아리조나 출신의 대학생 3명, 이렇게 5명이 이미 15시간을 꼬박 봉고차로 달려 나망가에 도달한 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날 밤을 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숙박시설을 찾기 위해 나망가의 좁은 골목길을 누볐지만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시끄러운 술집과 트럭 바퀴에 기대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화물트럭 운전사들이 전부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20년을 살아온지라 어느 곳을 가든 항상 편하게 느꼈던 나였지만, 나망가의 어두운 그날 밤은 왠지 불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아무래도 모기가 득실거리는 차에서 한쪽 눈만 감고 자야 될 형편이라고 말하려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와 숙소가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풍선껌부터 자동차 점퍼 케이블까지 저녁 내내 별 물건을 다 팔려는 잡상인들을 쫓아 보냈지만, 이 젊은이는 그들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첫 번째 눈에 띈 것은 그의 귓불이었는데 큰 구멍 사이로 마사이족의 상징인 매듭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슬이 달린 정통의상이 아닌 평범한 옷을 입었고 키도 보통 마시이보다 좀 작았습니다. "마사이족인가?" 내가 물었습니다. "그런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가 웃으며 대꾸했습니다. 마사이족은 사자를 죽이는 통과의식을 치른 소년만이 성년이 될 수 있는 전통적인 전사의 부족입니다.
그들은 동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굽힐 줄 모르는 강직함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심으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이로비나 다레스 살람에 거주하는 망명자들은 모두 다 마사이족을 야간 경호원으로 두고 싶어 합니다. 시내에서는 전통의상 차림에 치렁치렁한 귀걸이와 구슬을 몸에 잔뜩 건 마아이가 창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들과 마주칠 땐 되도록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냥 그런 것 같아서" 내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케냐의 문턱만 넘으면 아름다운 리조트가 있다며 끈질기게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차는 여기에 두고 가세요. 리조트까지는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거든요." 그의 말대로 리조트에 가는 것이 차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행 중 두 명은 도난방지를 위해 모기떼가 극성인 차 안에서 자기로 하고, 나머지 세 명만 마사이를 가이드 삼아 따라나섰습니다. 남루한 술집 몇 곳을 지나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수비원의 눈을 피해 케냐의 황량한 길,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정말 무덤 속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길을 더듬어 가며 나는 혼잣말하듯 물었습니다. "어째 리조트가 있는 곳에 가로등이 없나?" "발전기의 디젤엔진이 바닥났나 봅니다." 마사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변명도 잘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크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아, 거의 다 왔어요. 이제 곧 나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쯤에서 나는 뭔가 덫에 걸려들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곧 괴한들이 나타나 우리 일행을 구타하고 금품을 빼앗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걸음을 늦추며 자칭 산악인이자 특공대원이며 항상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대학생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존, 몸에 지난 칼 있나?" "없어요." 그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뭐라고? 오늘 같은 날 없단 말이야?"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그 학생은 무기라면 사족을 못 써서 심지어는 맥도널드에 갈 때도 칼과 총을 지니고 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최소한 방어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니 순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수록 길은 더 어두워져 이젠 채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사이, 다시 돌아가야겠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말했습니다. "아녜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그가 안심시키며 말했습니다.
"절 믿으십시오. 정말 아름다운 리조트가 나옵니다." "믿어봐요. 마사이잖아요." 존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나도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어두웠고 마사이치곤 그의 키가 너무 작았습니다. 게다가 전통의상인 붉은 체크무늬 망토 대신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안심시키느라 계속해서 매듭이 달린 그의 귓불을 응시했습니다. '그래 가보는 거야. 가보는 거라고.' 마침내 간판도 불빛도 없는, 벽이 높게 드리운 빌딩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겨우 당도하기 시작할 무렵, 내 오른편 나무 뒤에서 갑자기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한 손에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마체테 칼을 들고 우리 쪽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책의 3부에서 밝히겠습니다.
성경에는 어두운 길을 걷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칠 모리아로 가는 어두운 길에서 길고 긴 3일 밤을 보냈습니다. 어두운 밤에 모세는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어두운 동굴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의 눈앞은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흑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이 드리운 금요일 오후,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의 흙길을 걸어가시는 그 여정을 시작하기 전 겟사마네 동산으로 향하셨습니다.
인생에는 이러한 길들이 있습니다. 이집트처럼 혹은 나망가처럼 어두운 길, 누구나 걷기를 끔찍이도 꺼려하는 그런 길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해해야 할 것은 오직 어두운 길을 통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영적인 성숙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어두운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는데, 그것은 꽃이 피는 햇빛 찬란한 곳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험난한 그 길을 걸으십시오. 어두운 길로 들어가십시오. 그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을 성숙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