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대륙
몇 해 전 목회를 잠시 접고 아프리카의 말라위에 있는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나는 그 지역에 퍼져 있는 고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에는 말라리아와 에이즈 같은 병들이 만연했고, 가난의 흔적이 곳곳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었습니다. 단순한 굶주림을 넘어 기근이 맴돌았고, 아이들이 입은 것은 옷이라기보다는 걸레조각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의 거리를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이런 모습을 가까이 접하면서 나는 고통과 괴로움과 불의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 중 나에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고통에 대한 신학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 할 고통은 주지 않으신다"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고통이라는 문제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통의 신학"이라는 학과 과정을 위한 강의 내용을 쓰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후에 이 과정을 가르치면서 나는 학생들과 함께 고통이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답을 찾고자 성경을 두루 찾았고, 여러 저서도 읽고, 불의라는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연구 중, 브레넌 매닝의 <한없이 부어주시고 끝없이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The Ragamuffin Gospel, 규장)>라는 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매닝은 이 책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실 때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사람들과 보내셨는지를 잘 묘사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리 저는 자, 눈먼 자, 짓밟힌 자, 문둥병 자, 곤핍한 자, 상한 자, 소외된 자 등 인생의 어두운 길에서 상처받은 사람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셨습니다.
또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 두란노)>도 읽고 토론했습니다. 나우웬은 예수님도 세상에서 상처 입은 자의 삶을 사셨음을 짚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함으로 인해 우리가 완전해지고, 나음을 입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더욱 감탄할 일은 바로 그 상처 입은 분이 오늘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외로워하는 날 당시 옆에 앉아 주시고, 당신이 신음하는 어두운 밤에 당신과 함께 울어 주십니다.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Silence, 홍성사)>도 거침없는 솔직한 묘사로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엔도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임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실망, 좌절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C. 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홍성사)>도 읽었습니다. 루이스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고민하고,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탐구하게 했습니다. 또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고통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슬픈 현실에도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실은 바람피우는 남편, 폭력적인 부모, 총기, 폭탄, 대량학살, 고문, 사기, 독재정권, 탐욕 등 사람이 인생의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처음에는 이 강의가 개발도상국에 적절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와 목회를 하면서 나는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자녀의 죽음, 생명을 위협하는 암, 실패한 결혼, 실직으로 인한 절망감, 차압당한 집, 파산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가깝게 지내던 가족의 비극을 접하면서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그들의 2살짜리 아들이 집 뒤뜰에 만들어 놓은 수영장에 빠진 것을 뒤늦게야 발견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내가 중환자실에 도착했을 때, 곱실거리는 금발의 아이가 축 늘어진 채 아버지의 팔에 안겨 있었습니다. 아이는 의료기의 힘으로 심장박동을 겨우 유지하는 상황이었고 아버지의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선 어디 계셨단 말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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