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777번째 이야기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는 앞으로 일에 대해서 미리 염려하며 걱정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자주 이렇게 탄식합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이 일을 언제 다하지? 이제 나는 죽었다. 어휴.." 그러나 미리 염려하며 탄식하다 보면 일 때문이 아니라 염려 때문에 먼저 지칩니다. 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풀을 베는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풀을 베려는 농부가 들판의 끝을 보며 "저 많은 들의 풀을 언제 다 베지?"라는 푸념만 하다 보면 결국 의욕도 잃고 일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망상, 집착, 한계, 게으름, 불신. 인생에 하나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다섯 가지를 염려의 얼굴이라고 도서 걱정 버리기 연습의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계획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때문에 염려와 준비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염려하기와 준비하기는 다릅니다. 들판의 끝을 보며 걱정할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풀을 베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
마음의 사자(獅子)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인간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빠른 해결방법을 선택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인류사에서 문제는 대부분 물리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사숙고했다가는, 사자나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염려가 많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직접적인 위협은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마음의 사자, 즉 스트레스입니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젯거리의 경우,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심사숙고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현대사회의 스트레스도 물리적 위협과 똑같이 취급합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일까요? 즉각적인 안도감 또는 해방감을 줄 묘약 말입니다. 새로운 묘약을 찾아 헤맬 때, 가장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이 술과 담배입니다. 구하기 쉽고, 효과도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합법적이기도 합니다. 한 번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끼면, 철컥하고 우리는 그 덫에 걸려듭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해방감과 안도감에 도취된 나머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합니다. 스무 살이 된 때부터, 저는 이 덫에 걸려들었지만, 그것의 위험성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저의 중독문제는 눈덩이처럼 몸집을 키워나갔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늘었고, 골치 아픈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담배에 불을 붙여대니, 하루에 한 갑을 비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저의 삶은 점점 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문제는 점점 더 늘어나기만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저는 빛을 잃어갔습니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스물두 살이 지날 무렵,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내고자 상담사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제가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며, 식사를 기피하고, 잠들기를 두려워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 행동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상담을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키슬) 스트레스의 사전적인 풀이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ㆍ신체적 긴장 상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심리적인 압박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지 능력이 있는 이상,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해소방법입니다. 쉽고 빠른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몸과 영혼이 항상 건강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 또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말씀을 읽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을 추천합니다! |
용서 없는 긍휼 어떤 면에서 상대방의 죄를 용인해 주는 것으로 착각할까 봐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계속해서 죄를 지어도 좋다고 권장하는 것으로 착각할까 봐 이런 종류의 은혜를 베풀기를 꺼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죄를 멈추기 전까지는 사랑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한 짓 혹은 하고 있는 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죄를 용납하는 것"으로 혼동할까 봐 걱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본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정반대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이 기억나십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긍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무조건적 사랑,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 성령의 성화시키시는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죄를 눈감아주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가 긍휼함을 보여 주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죄를 묵과한 것으로 오해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 잘못입니다. 긍휼과 죄를 묵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정죄하시지는 않되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니까 계속해서 지금처럼 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 사랑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을 지금 상태로 그대로 놔두시지 못합니다." 죄인을 받아들이는 것과 죄를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둘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그런 위험을 감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놀랍고 기이합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그 은혜를 죄의 묵과와 오해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로마서 6장을 읽어 보면 2천 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자주 벌어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보여 주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다른 종교는 인정을 받기 위한 길을 제시하는 반면, 오직 기독교만 하나님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누군가가 죄를 용인하거나 권장하는 것을 오해할 줄 잘 아시면서도 기꺼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우리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똑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에서 한 번에 한 사람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용서 없는 긍휼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승리의 유일한 무기, 하나님의 이름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사무엘상 17장 41-49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 다윗간의 싸움 장면입니다. 49절, "물매"는 짐승을 잡거나 쫒고, 나무에 달린 과실 따위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돌을 강하게 던지기 위한 몽둥이를 말합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며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합니다. 다윗은 칼과 창과 단창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골리앗이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이 주머니의 돌을 물매로 힘껏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맞힙니다.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니 그가 땅에 쓰러집니다. 다윗을 본 골리앗의 반응(41-44절). 오직 하나님을 인생과 모든 일의 구심점으로 삼으면,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그렇습니다. 소년 다윗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적장 골리앗에게 나아갑니다. 골리앗은 다윗의 외모를 보고 그를 우습게 여깁니다. 자신은 완전 군장을 한 데다 방패 든 사람까지 앞장 세웠는데, 상대는 일상복을 입은 홍안의 소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은 막대기를 들고 온 다윗에게 자신을 개로 여기냐며 화를 냅니다. 개는 고대 근동에서 하찮고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짐승을 상징합니다. 골리앗을 다윗이 자신을 그와 같이 여긴 것에 분노해 자신이 믿는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그는 다윗에게 44절, "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라고 끔찍한 죽음을 예고하며 협박하지만, 실상은 앞의 36절에서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라고 다윗이 말한 것을 자기 입으로 재확인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상대방의 외모만 보고 우습게 여기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깊이 묵상합시다. 다윗의 믿음과 승리(45-49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성도와 사탄의 영적 전쟁을 생각나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은 자기가 믿는 신들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그들 각자가 믿는 신을 대리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블레셋의 다곤 신상은 사무엘상 5장 4절에서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고꾸라졌고 목과 양손이 잘렸습니다. 승리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성도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다시 본문에서 다윗은 골리앗의 말과 위용에 전혀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사로서 골리앗 앞에서 담대히 일장 연설을 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칼과 창 같은 무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고 선언합니다. 다윗에게 무기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 임합니다. 그가 전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는 전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마침내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며 물매로 돌을 던지니, 단방에 쓰러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의 승리의 무기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상황의 불리함과 대적의 강함에 주눅 들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선포합니다. 오늘도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힘으로는 매일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의지하오니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보증이 되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두려움, 과대 포장 된 거짓 믿음 밴쿠버에서 사역할 때, 한낮에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습니다. 내게 전화를 건 여성은, 남편이 캐나다에 와서 집을 마련해 주고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킨 후 직장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자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이른바 "기러기 가족"과 이민자 중 많은 사람이 이처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순간순간 느낍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어둠의 힘입니다. 두려움은 내가 할 수 없는 한두 가지에 대해서는 확대경이 되고, 내 곁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축소경이 됩니다. 천지를 지으신 위대한 창조주를 우리가 어찌 그리 작게 볼까요? 다윗은 확대경도 축소경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골리앗을 3m에 이르는 장신에 싸움 잘하는 인간으로 보았고,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를 보았습니다. 그는 원수도 하나님도 실물 크기로 인식했습니다. 다윗이 비현실적인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빠진 우리가 비현실적인 관점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비현실적인 공포감으로 이스라엘의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했습니다. 반면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한 양치기 소년의 믿음은 최선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력해 현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두려움은 내 인생의 가이드이신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사는 인생에서 두려움은 과대 포장으로 부풀려진 거짓 믿음입니다(두려움 너머의 삶/이상준 목사) |
이웃을 향한 사랑④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한 몸"의 체험은 오로지 이성 간의 일부일처 결혼 관계 속에만 존재합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주어지는 긍정적인 복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그것과 양립하려 하거나 그것을 부정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다른 모든 관계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지 핵심은, 그리스도인은 성적인 충동이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다는 주장을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인간 존재를 동물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받을 때, 설사 아무리 강렬한 유혹을 받는다 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하여금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주장입니다(고린도전서 10:13). 따라서 우리는 성적인 자기 제어가 가능하며, 음행을 피해야 하고, 또한 그분께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20절,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게 하소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이사야 55:6). 사랑의 주님! 오늘도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브라함이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 하루도 제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언제나 가까이에서 지켜주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도게 하시옵소서. 여호와 살롬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기드온이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 하루도 이 세상에서 줄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는 평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영원한 깃발이 되시는 주님,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호와 라아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옵소서. 목자 되신 우리 주님,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며,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호와 라파의 하나니을 만나게 하시옵소서. 치료하시는 우리 주님, 상한 영혼과 병든 육신을 강건하게 회복시키시며, 생명력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라는 행복 바이러스 일본 다마고 보로(bolo) 과자로 유명한 다케다 제과의 다케다 사장이 대부호가 된 것은 다마고 보로 과자의 비밀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고의 품질 다마고 보로 과자를 만들기 위해 다케다 사장은 공장에서 직원들이 과자를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사람들이 화를 낼 때 내뱉는 숨을 봉지에 담아 그 안에 모기를 넣으면 모기는 얼마 안 가서 죽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싱글싱글 웃을 때 나오는 숨에서는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설에 착안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재료 못지않게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행복 수준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만드는 사람의 심리적 파동이 물건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죠. 하루 3,000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보세요. 인생이 바뀔 테니까요." 다케다 사장은 "감사합니다"를 잘 실천하는 직원들에게 물질적인 보상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재료를 사용할 때도 최고급 유정란만을 고집하는 것 외에 "감사"로 최고의 제품을 고집한 것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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