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
우리는 좀처럼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아는데 왠지 남들이 지은 죄가 훨씬 더 크고 심각해 보입니다. 우리는 자시느이 죄를 합리화하거나 아예 인식하지 못하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낍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라는 생각은 긍휼이 아닌 비난과 정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과 정반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죄가 있는 자는 남의 죄를 정죄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죄가 없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따라서 오직 예수님만 정죄할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여인을 돌로 치기 위해 끌고 았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죄가 없다면, 이 여인을 정죄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 여인을 너희 마음대로 하라!"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으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님은 분노한 자들을 살인자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신 후 음욕을 품은 자들을 실제로 간음을 저지를 자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간음을 저지를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간음은 다른 누군가의 죄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간음은 당신의 죄이기도 합니다. 그날 예수님이 땅바닥에 한 단어만 쓰셨다면 그 단어가 바로 "음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이 여인에게 사랑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가,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언정 하나님께는 여인의 죄 못지않게 크고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에 빠져 분노하고 도덕군자 행세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자신의 죄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기 의의 분노 가운데 이 여인을 정죄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고, 이에 그들은 돌을 내려놓고 떠나갔습니다. 반면, ㅇ수님은 여인을 정죄할 모든 권리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은 8장 11절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죄 없는 분"이라는 자격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여인에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게 만드는 데 정죄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모두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심판하고 정죄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도덕군자 행세하지 마십시오! 혹시 어찌어찌하여 죄가 거의 없는 상태에 이르더라도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이 그 지위를 은혜와 사랑을 베푸는 데 사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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