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65번째 이야기
힘을 빼야 배운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비행기, 자동차, 호랑이, 코끼리 등등 열심히 그림을 보여주며 해당 글자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는 글씨를 보고 있던 아이는 볼펜을 달라면서 자기가 써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글씨를 쓰려고 애쓰는데 처음 써보는 글자는 어색하고 삐뚤삐뚤하게만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획의 순서를 알려주고자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마찬가지로 글씨는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가 손에 힘을 빼고 볼펜을 아버지의 손에 맡겨야 하지만 끝까지 아이는 손에 힘을 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앞바퀴가 모래밭에 빠져서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자동차 바퀴가 헛돌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바퀴의 바람을 살짝 빼서 타이어를 넓게 퍼지게 만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 배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오히려 힘을 빼줘야지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때 저에게서 감사와 기쁨이 없는 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약 3주 전, 매년 찾아오는 생일 새벽에 묵상할 때였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저의 삶을 오랫동안 신실하게 지켜주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정말로 기뻐하면서 감사했던 일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기억은 12월 중순까지, 그러니까 3주 이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야 겨우 하나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최근의 일들 중, 기억에 남을 만한 기쁜 일과 감사할 일이 얼마나 드물었으면, 3주 이상의 공백이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매일 매주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에도 물론 일리가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1년 365일 지속될 수 없듯이,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나날을 지속해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3주 넘게 회색빛 나날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저 자신의 비겁함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15년간 무척 존경하면서 가까이 지냈던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를 괴롭히면서, 친구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친구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잠자코 있어 달라고, 나서서 다른 이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를 밀어내려는 이들의 공격은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를 괴롭히는 그들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저의 분노를 키웠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정도의 위험과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친구를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친구에 대한 유언비어를 바로잡고자 애쓰려고 합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에게 제 의견을 정정당당하게 말할 것입니다. 물론, 제 친구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법으로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이 지혜가 친구를 돕기로 한 저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드디어, 저의 마음에 평안함이 온 것 같습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신순규)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이 베푸시는 감사의 은혜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글을 쓰신 신순규 님은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위험과 손해가 따르더라도 정정당당히 임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되자, 그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물줄기(통로)가 다시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혹시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하십니까? "세상에 저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누가 과연 뺨을 맞고도 다른 뺨까지 돌려 댈 수 있지? 누가 소송을 당하고도 겉옷을 내주겠냐고? 누가 억지로 5리를 갔는데 또다시 자발적으로 5리를 더 가 주겠어? 그렇게 하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이렇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우리가 자신보다 남들을 낫게 여기고 자신의 필요보다 남들의 필요를 우선시하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삶의 마지막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모함을 당하셨습니다. 부당하게 체포를 당해 모진 매를 맞으셨습니다. 한 병사는 예수님께 눈가리개를 했고, 다른 병사는 그분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또 다른 병사는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은 참기 힘든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한 병사는 이렇게 비아냥거렸습니다. "네가 선지자라면 우리 중 누가 쳤는지 알아맞혀 봐!"(마가복음 14:65). 물론 예수님은 누가 쳤는지 아록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사의 이름도 알고, 그의 머리카락 개수까지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약함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날 그분을 학대하는 병사들이 한 부대였을지 몰라도 마태복음 2장 52-54절에서 그분은 마음만 먹으면 열두 군단보다 더 많은 천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1세기에 열두 군단이면 72,000명이었습니다. 모욕 한 번마다, 주먹질 한 번마다, 채찍 한 번마다, 고통의 외침 한 번마다, 피 한 방울마다 72,000보다 더 많은 수의 천사들이 주먹을 점점 더 꽉 쥐었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면 이 모든 상황은 일순간에 끝날 끝날 것이었습니다. 사실, 천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눈 한 번 깜빡하시면 모든 병사의 눈을 멀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의 고갯짓 한 번이면 그들 모두를 무력화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면 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저주를 받아 당장 지옥에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예수님은 이 고통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입을 여셨습니다. 천국의 온 군대가 그분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며 귀를 쫑긋이 세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누가복음 23:34). 예수님은 하나님께 적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가 어려움이나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할 때 그것은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SNS 글 하나로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모욕 한 번, 짜증 한 번, 화 한 번을 참아 줄 때, 다시 말해 한 번에 5리씩 더 가 줄 때 세상에서 가장 크고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기준을 따르라 세상의 "정의"는 권리 회복에 중점을 둡니다. 그래서 언제나 의무 이행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고 갈등과 충돌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권리 주장과 내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목소리는 언제나 옳을까요? 이해가 상반되는 쌍방의 이야기는 평행선을 긋다가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져 회복할 수 없는 관계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는 자신의 권리가 100% 보장받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 뜻이 100% 이루어지는 것을 정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의에 대한 개념마저도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입니다. 정의를 이루는 방법론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사람들은 나 이외의 것들과 싸워 이기는 승리에 집착하지만, 예수님은 내 안에서 나를 격동케 하는 존재를 굴복시키는 승리에 주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란 결국 내 안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내 안에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이 주시는 승리와 평안을 누리며 살라고 하십니다. 내 밖에서 일어나는 승패와 우열은 끝이 없지만, 예수님은 지금 내가 승리하는 판을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무엇이 성숙인가/ 조정민 목사). |
예수님의 기준을 따르라 세상의 "정의"는 권리 회복에 중점을 둡니다. 그래서 언제나 의무 이행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고 갈등과 충돌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권리 주장과 내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목소리는 언제나 옳을까요? 이해가 상반되는 쌍방의 이야기는 평행선을 긋다가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져 회복할 수 없는 관계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는 자신의 권리가 100% 보장받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 뜻이 100% 이루어지는 것을 정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의에 대한 개념마저도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입니다. 정의를 이루는 방법론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사람들은 나 이외의 것들과 싸워 이기는 승리에 집착하지만, 예수님은 내 안에서 나를 격동케 하는 존재를 굴복시키는 승리에 주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란 결국 내 안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내 안에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이 주시는 승리와 평안을 누리며 살라고 하십니다. 내 밖에서 일어나는 승패와 우열은 끝이 없지만, 예수님은 지금 내가 승리하는 판을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무엇이 성숙인가/ 조정민 목사). |
십계명②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율법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분의 율법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그분의 규범이 위압적이고 심지어 지키기 어려운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제공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실제로 내주 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깨닫게 하시므로, 우리는 오늘날 그것이 어떤 함축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는 면에서 자라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게 하시므로, 우리가 더 이상 율법을 굴레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기쁨으로 여기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행하도록 하시므로,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가운데 참된 자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실 때는 그에 앞서 우리가 그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예수님은 이 도덕법을 사랑이라는 말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즉 계명들을 크게 두 가지로 표현하셨는데, 전심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신명기 6:5)과 이웃을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과 같이 하라는 것(레위기 19:18)이었습니다. 이전에 아무도 이러한 말씀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 끝에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40)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의 요청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유일하고 적극적이며 포괄적인 사랑의 원칙이, 부정적이고 지엽적인 율법의 수많은 지침을 다 포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것들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특별히 기억해야 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염두에 두셨던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도, 이기적인 사랑도 아닌, 강하고 희생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에로스" 즉, 손에 넣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은 주고 싶고 풍성하게 하고 싶은 열망, 즉 "아가페"를 가리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희생이나 섬김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과 영광에 온통 마음을 쏟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쏟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십계명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절정을 이룬 사랑의 실천 방안인 것입니다! |
희망을 심을 수 있게 하소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어서 6:7). 사랑의 주님! 오늘도 주님의 자녀로 희망을 심으며 사는 하루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근심하는 자에게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게 하시고, 낙심하는 자에게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슬픔을 당한 자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심어줄 수 있게 하시고,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내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약한 자에게는 주님의 능력으로 강함을 심어줄 수 있게 하시고, 병든 자에게는 치유를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가난한 자에게는 주님이 채우시는 부요함을 심어줄 수 있게 하시고, 궁핍한 자에게는 주님이 채우시는 풍성함을 심어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영적으로 연약한 자에게는 영안이 열릴 수 있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잇는 자에게는 헌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심어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이런 주님의 자녀로 희망을 심을 수 있는 하루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제게 능력을 더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 감사 어느 지인의 감사 고백입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곰곰이 감사할 일들을 떠올려 보니, 감사할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한국음식 냄새로 인해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외출할 대마다 늘 신경 쓰면서 한국 음식을 자제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 음식을 먹게 되는 날이면 냄새 제거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의 여름방학 때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차 2주 가까이 미국 남부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우리는 한국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구수하고 정겨운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그동안 냄새 때문에 잘 먹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집에서 냄새가 진동하는 청국장을 끓여 먹어도 머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우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에게 허락된 일상 그 자체가 감사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667번째 이야기 (0) | 2023.02.09 |
---|---|
예림의집 2666번째 이야기 (0) | 2023.02.07 |
예림의집 2664번째 이야기 (0) | 2023.02.03 |
예림의집 2663번째 이야기 (0) | 2023.02.02 |
예림의집 2662번째 이야기 (0) | 2023.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