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663번째 이야기
느슨한 활 "이솝우화"로 유명한 동화작가 이솝은 종종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놀면서 지친 일상에 힘을 얻는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 중에는 다 큰 어른이 점잖지 못하게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논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또 그런 말을 하자 이솝은 옆에 있던 현악기의 활을 집어 든 뒤 느슨하게 풀어 그 사람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느슨해진 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악기의 활을 느슨하게 해 두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계속 줄을 팽팽하게 매어놓으면 활은 부러지고 맙니다. 다음 연주를 위해서는 활을 느슨하게 놓을 필요가 있지요." 연비는 자동차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도 각각의 연비가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쉼 없이 내달리기만 하면 결국 멈춰버리고 맙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잠시 숨을 고르는 쉼과 조율을 통해 나를 돌보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
딱 맞는 친구는 아닙니다! 미국 의사고시도 통과할 실력이 된다고 해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대화생성인공지능과 채팅을 해보았습니다. “나 지금 울적하다”라고 하니, 빛의 속도로 답신이 왔습니다. “일이 중요하지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뒷말을 받아 우선 공감소통을 해주고, 현실적인 목표를 가질 것, 계획대로 가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너무 밀어붙이지 말라는 등, 여러 구체적인 조언을 해줬습니다. 답변이 생각 이상 빠르고 알찼습니다. 기대 이상이라서, 대화 흐름과 맞지 않는 “나 정신과 의사다!”라고 좀 삐딱하게 적어 보냈습니다. 또, 빠른 답신이 왔습니다. “정신과의사는 스트레스를 다루고 이해하는 데 특별한 위치에 있다.”라고, 살짝 먼저 띄워주는 말로 시작하고는, 이어서 “그렇지만, 공감피로로 인해서 쉬이 지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보살펴줘야 한다.”라고, 위로의 말과 함께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살짝 시비를 걸었는데, 진솔한 위로의 답변이 오니, 솔직히 약간 뭉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가 정신과의사보다 낫다”라고 했더니, “나는 기계학습 모델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보는 줄 수 있지만, 네 수준의 정서적 지지와 이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라는 답신이 왔습니다. 인공지능의 대화생성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감정이 없기 때문에 때론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기술적으로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근, 마음 관리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필요할 때 감정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연습입니다. 감정은 우리 인간의 소중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지나치면,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이다."란 격언이 있습니다. 용기가 있다면 공포가 없어야 할 듯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포와 같은 불편한 감정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감정반응이라고 받아들일 경우, 감정과 거리를 두기가 쉽습니다. 그렇지 않고, 나쁜 감정이라면서 공포와 직접 싸울 경우, 합리적인 결정이 오히려 더 어렵고, 도망치는 회피행동이 나오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친구가 때론 밉거나 섭섭하다고 해서 꼭 나쁜 우정은 아닙니다. 항상 좋기만 해야 딱 맞는 친구이고 좋은 우정이라고 설정하면, 평생토록 진짜 우정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미운 감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도 지켜보면서, 동시에 친구에 대한 이해도 함께 하려고 할 때, 우정도 더 깊이 성장하게 됩니다.(윤대현) 그렇습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기초로 해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다음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고 있었습니다. 위의 글을 보면, 인공지능의 그 기능과 한계를 인공지능 자신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계학습 모델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보는 줄 수 있지만, 네(인간) 수준의 정서적 지지와 이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기계는 기계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태복음 5:41) 여기서 제게는 "억지로"라는 부분이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5리, 약 2킬로미터를 가 달라고 "부탁"한다면 괜찮습니다. 정중히 부탁한다면 힘들더라도 얼마든지 함께 가 줄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시킨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내 자존심이 고개를 쳐듭니다. "억지로"는 상대방이 나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기분이 상합니다. 당시에는 로마 병사들이 식민지 민간인에게 억지로 일을 시킬 수 있게 하는 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는 있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유대인에게 자신의 짐을 5리까지 지고 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이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병사의 짐을 짊어지고 5리까지는 갔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한 발짝도 더 가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로마 병사라 해도 다시 5리를 더 가는 것은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유대인의 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 남자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배는 고픕니다. 어서 집에 가서 먹고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서 로마 병사가 보입니다. "아뿔싸!" 가장 우려했던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로마 병사는 이 유대인 앞에서 자신의 짐을 바닥에 던지며 말합니다. "나의 충실한 개가 되어 이 짐을 지고 가라!" 유대인 남자는 걸음마다 분노를 실어 쾅쾅 내딛습니다. 그렇게 5리를 가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몸을 돌립니다. 이런 날 그가 집에 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은 그는 문을 쾅 닫고,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에게 퉁명스럽게 굴고, 개를 발로 차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 5리를 다 간 뒤에 로마 병사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땠을까요? "혹시 원하신다면 5리를 더 가 드리겠습니다." 마치 자신의 삼의 통제권을 다 내려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는 오히려 삶의 통제권 일부를 되찾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조금 더 늦게 귀가할 수는 있지만 이번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집 문을 엽니다. 이런 경우, 로마 병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할 것입니다. 분명 다른 병사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글쎄, 한 유대인이 내 짐을 듣고 5리를 가더니 다시 자원해서 5리를 더 가지 뭐야!" 사람들이 주목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번에 한 사람에게 5리를 더 가 주라고 가르치십니다. 심지어 상대방이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적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이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가 모욕을 하면 친절한 말로 받아칩시다. 배우자가 비판을 하면 오히려 배우자를 칭찬합시다. 비난하는 사람을 축복합시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퉁명스럽게 굴면 오히려 평소보다 더 고맙다는 표현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다시 한 번 쳐다보지 않겠습니까? 상사가 오늘따라 심술궂게 괴롭히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로하는 메모를 남기십시오. 5리를 더 가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선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좋게 볼 것입니다. |
하나님 홀로 이루신 승리의 귀환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사무엘상 6장 13-2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하나님께서 홀로 싸워 승리하심으로 귀환하는 내용입니다. 19절에 "(오만) 칠십"은 대부분의 사본에는 칠십 명으로, 어떤 사본에는 오만 명으로 나와 있기에 그렇게 표기한 것입니다. 언약궤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릅니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수레의 나무를 패고 암소를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많은 이가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전령을 기럇여아림으로 보내 궤를 옮겨 가라고 요청합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언약궤(13-18절). 하나님 홀로 언약궤의 방향과 머물 곳을 주도하십니다. 언약궤가 7개월 만에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언약궤가 사람들 없이 홀로 이스라엘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적과도 같은 일에 놀라며 기뻐합니다. 게다가 언약궤가 금독종고 금쥐를 선물로 가져왔는데, 이는 하나님이 블레셋의 신 다곤을 이기시고 전리품까지 챙겨 승리의 귀환을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언약궤가 돌아옴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출하하면서 하나님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15절 "다른 제사"는 감사와 축하를 위한 "화목제"로 봅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피한 것은 하나님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과 불순종 때문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모든 회복은 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무지한 블레셋의 속건제로 시작된 언약궤의 귀환은 변질된 이스라엘의 번제로 마무리됩니다. 번제로 마치는 언약궤 이야기는 왕이 없어 자기 소견대로 살던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한 왕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시대가 시작되길 원하시는 그분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연약한 인생은 무지와 변질을 반복합니다. 우리는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시는 하나님(19-21절). 하나님을 성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그분의 보호와 은총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언약궤로 인해 축제가 벌어진 벧세메스에 큰 비극이 일어납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들여다보았다가 하나님의 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칠십 명 혹은 오만 칠십 명이 죽고 맙니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는 대제사장 외에 일반 백성은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호기심으로 언약궤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본 것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입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공격하듯 이스라엘을 공격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됨을 알려 주신 것이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사람들도 블레셋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알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결국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전령을 보내어 여호와의 궤를 옮겨가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언약궤가 홀로 선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의 실패에도 하나님 홀로 성취하신 일은 무엇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신중히 다루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블레셋 사람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삶인지 깨닫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설 수 없는 존재이지만,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거룩함을 회복하게 하시고,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백성이 되게 하시옵소서. 언제난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은혜받은 사람이 경계할 일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 성경을 제멋대로 적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종교적 열심을 보였다가 소원이 이루어지면 금세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언약궤를 되찾고 기뻐하며 감사로 제사를 드렸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한순간에 통곡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약궤를 구경거리로 삼고 제멋대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방만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달은 기쁨이 크고, 받은 은혜가 커도 그것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사탄은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우리를 삼키려 듭니다. 사탄은 우리가 넘어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었다면, 더욱 깨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마음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언약궤가 돌아왔다고, 떠났던 배우자가 돌아오고 재정과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안주하면 안 됩니다. 복을 받은 뒤에 어떻게 그것을 간직하며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자리에서 나태하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깨어 있는 성도가 됩시다. 받은 은혜가 클수록, 말씀과 기도로 우리 영혼의 옷깃을 여밉시다.(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김양재 목사) |
성경의 도덕적 규범 도덕적 규범이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이제 우리의 주제를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기대하시는 도덕적 규범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때 우리는 곧바로 그리스도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 간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오늘날 서양에서는 선과 악의 정의가 달라지면서 상대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업상의 윤리나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경외심이나 성, 가정, 가족 등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소비자 중심주의라는 말 이면에 담긴 탐욕 등에 대해서 생각학 될 경우, 용납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단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게 되면 기독교 윤리도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가치관, 도덕규범, 생활 방식이 당시의 지배적인 문화가 요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18장 1-4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신약에서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찾자면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종교적 사람, 바리새인과 비종교적인 사람, 이교도들 이 양자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어느 쪽도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저희를 본받지 말라"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을 다르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 기도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죄인 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죄인 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저와 동행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저와 동행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저를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저를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저를 만지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저를 만지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장재기 TV) |
아이의 죽음을 감사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출산한 지 첫돌이 지나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여집사님은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요 철야예배에서 그 집사님이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를 돌아보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첫째, 아이를 복중에 잉태할 수 있는 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는 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아이를 안아 볼 수 있는 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넷째,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다섯째, 아이와 함께 일 년 동안 지내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여섯째, 아이에게 엄마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는 이 감사의 간증을 보면서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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