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6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3. 1. 30. 13:59

예림의집 2661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그분을 사랑합니다

가정학습지 방문교사인 효진 씨는 야채 도매상을 하는 남편과 2002년 결혼한 뒤 시부모를 본인이 모시겠다고 해서 함께 살아왔습니다. 워낙 사이가 좋아 딸 같은 며느리,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라며 주변의 부러움을 사 왔습니다. 그러던 중 간경화가 심했던 시어머니가 간암까지 걸려 간이식을 하지 못하면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유일한 치료법이 간이식이었기에 가족들 모두가 간 이식을 위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삼 형제는 모두 간이식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시아버지는 혈액형이 달라 이식할 수 없었습니다.
손위 동서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수술받을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며느리 효진 씨는 시부모와 친정 부모 몰래 병원을 찾아가 조직검사를 받았고 유일하게 이식 가능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알리자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시어머니도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앞으로 아이도 낳아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는데 자신 때문에 화를 입을까 봐 절대로 이식수술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효진 씨는 시어머니를 계속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친정에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완강하게 반대했던 시어머니와 친정 부모는 효진 씨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16시간의 긴 수술 끝에 자신의 간 60%를 시어머니에게 전달했습니다. 긴 수술이 끝나고 효진 씨를 처음 만난 시어머니의 첫마디는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효진 씨도 수술에 들어가기 전 자필로 쓴 기증 사유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모든 허물도 허무는 위대한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너와 나,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아껴줄 때 사랑은 단단하고 깊어집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춤추는 하마 궁둥이 같아요!

여동생 부부가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생기고, 마침 어머니도 집을 비워야 해서, 가장 융통성 있는 스케줄을 가진 제가 이틀 동안 조카 건우의 공식적인 보모로 발탁되었습니다. 저는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고, 자기 식대로의 방법이 있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아주 논리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건우와 저의 말투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감탄사였습니다. 건우는 말할 때마다 "와, 되게, 짱" 등 감탄사와 강조부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예컨대, “이모, 이 사탕 돼~게 맛있어요!” “이모, 나 이거 대따 재미있어요!”등인데, 말끝마다 느낌표가 따라붙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연에 대한 건우의 반응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백일홍 나무를 보더니, “이모, 빵! 하고 폭죽이 터졌나 봐요!”하지를 않나, 하늘을 보고는 “와, 이모, 저거 봐요, 하늘이 되게 크죠?” “와, 저 구름 좀 봐요! 춤추는 하마 궁둥이 같아요!”하고 신기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모, 이 작은 것이, 작은 점만 한 게 움직여요! 와, 이것도 생명이 있나 봐요! 와!” 다섯 살짜리의 어휘 속에 생명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나뭇가지마다 빼곡히 핀 꽃도, 큰 하늘도, 뭉게구름도, 햇빛이 반사되는 수면도, 점만 한 작은 생명체도 저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5년이 채 안 된 건우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놀랍고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동화하고, 감격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할 줄 알고, 불쌍한 것을 보고 동정할 줄 아는, 여리고 예쁜 마음이 있다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고 장영희)

그렇습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동화하고, 감격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이런 마음은, 불행하게도 살아가면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 맘속 깊숙이 숨어버리기 일쑤라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할 줄 알고, 불쌍한 것을 보고 동정할 줄 아는 여리고 예쁜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이끌어 내주는 그 어떤 힘이 있어야 합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순간, 그 힘이 솟아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림단장 칼럼

오른편 뺨을 치거든..
 
한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신혼 시절 첫 보금자리는 스무 평 남짓에 월세 25만 원 하는 작은 집이었습니다. 그 집은 벽이 종잇장처럼 얇았고, 바로 옆집에는 쉴 새 없이 짖어 대는 개가 있었습니다. 짖는 것을 멈추지 않는 개. 그 개는 밤새도록 짖었고, 얇은 벽 때문에 그 개가 그들 집 안에, 아니 안방 침대 속에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이불속을 뒤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깨면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습니다. 마침내 개 짖는 소리가 멈추면 스르르 잠들었지만, 마치 눈이 감기는 것이 신호인 것처럼 다시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잠을 자려고 할 때 개가 짖는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기분 상하지 않게 알려 봤지만, 이웃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고개를 끄덕인 것은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뜻일 뿐이었습니다. 개는 계속해서 짖었고 부부는 계속해서 잠을 설쳤습니다. 가족 모임에서 이 고충을 털어놓았더니 삼촌은 동해보복범을 제시했습니다. 당시는 휴대폰이 없었고 수신번호가 뜨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한밤중에 전하기를 들어 이웃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웃이 잠이 반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개 짖는 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꿀잠을 자고 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소리가 오히려 잠을 부르는 백색소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졸린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하는 순간, 남편은 전화기에 입을 대고 있는 힘껏 짖어 댔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처럼 통쾌했습니다. 옳은 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게 짖어보라. 똑같이 짖어 줄 테니..!" 이것이 "눈에는 눈"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9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누군가가 우리의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보복하지 말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른편 뺨"이라고 말슴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오른편 뺨을 때리는 사람이 오른손잡이라면 어떻게 때리는 것입니까? 손등으로 때리는 것입니다. 당시 희브리 문화에서 이것은 더 심한 무례요 모욕이었습니다. 실제로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것과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에 따른 형벌이 달랐습니다. 당신을 유독 지독히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만 보면 도발하는 이웃이 있습니까? 당신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가족이 있습니까? 또는 은근히 공격을 하는 동료가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방에 들어오면 우리는 즉시 대결 모드로 돌입합니다. 눈에는 눈! 이것이 아주 당연해 보이는데, 우리 예수님은 반직관적인 반응을 가르치십니다. 누군가가 무례하게 굴면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다시 말해, 쉽게 발끈해서 따지고 들거나 몸을 홱 돌려 가 버리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의 삶이 복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고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주목하고 좋게 보게 될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엘리 가문의 몰락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사무엘상 4장 12-22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하나님 말씀의 성취인 엘리 가문의 몰락을 보여줍니다. 21절 "이가봇"은 히브리어 합성어로 앞글자 "이"는 "어디에 있느냐?"라는 뜻이고 "가봇"은 "영광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이 영광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살육당하고 두 아들이 죽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죽습니다. 엘리의 며느리는 아들을 낳고 죽으면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며 아이의 이름을 아가봇이라 합니다. 시부와 남편이 죽고, 언약궤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죽음(12-18절).
부정적 기류에 휩쓸려 하나님 말씀의 길에서 계속해서 멀어지면 모든 생기와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엘리의 가문이 그랬습니다. 전쟁의 패배는 대제사장 엘리 집안의 몰락을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나가자, 엘리는 길옆 의자에 앉아 전쟁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가 자기 가족과 이스라엘에 미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을 것입니다. 엘리는 진영에서 달려온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이 패하고, 엘리의 두 아들이 죽었으며,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엘리는 자기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고 놀라 넘어지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져 죽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쇠하고 마음이 약한 까닭에 단호하고 강한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장년의 아들들에게 끌려다니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 집안에 대한 예언의 성취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이유는 그들의 먼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단호해야 할 신앙 문제에서 우유부단한 태도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묵상합시다.
 
비느하스 아내의 죽음(19-22절).
21절,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져온 일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패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기자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말합니다. "떠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포로로 잡히다, 폭로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면 그분의 우리를 영광은 떠나가고, 우리의 죄성은 폭로됩니다. 하나님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과 경배의 대상입니다. 엘리 가문의 비극은 그렇기 때문에 계속되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 상태에 있었는데, 이 모든 소식을 듣자 큰 충격을 받고 갑자기 해산합니다. 비느하스의 아내에게는 시부와 남편의 죽음보다 언약궤를 빼앗긴 것이 더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낳지만 곧 죽음을 맞이합니다. 난산으로 모든 기력을 소진한 데다 충격으로 인해 곧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린 듯합니다. 그녀는 언약궤를 빼앗겼기에 하나님의 영광도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말이 아닌 회개를 원하십니다. 인간적인 아쉬움을 버리고 신앙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진정한 믿음으로 경배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한 엘리의 가족의 멸문을 바라보며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심판의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역사 앞에서 겸허히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도 자기 합리화에 갇혀 변명을 늘어놓는 안타까운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옵서. 아직 기회가 있는 오늘, 철저한 회개로 주님께 돌이키도록 저들의 마음을 녹여주시옵소서.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후회와 회개의 차이
 
인생의 한계 앞에서, 내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남김없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신앙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왜 인생의 폭풍을 만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면서 주님 앞에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일까요? 우리 중에 입술로는 회개한다고 고백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께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직분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과 봉사를 하면서도 정작 그 속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후회는 하지만 정작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축복인 줄 잘 모릅니다. 후회와 회개는 비슷한 것 같지만 매우 다릅니다. 후회는 자기 내면에서 과거의 잘못을 되짚어 보며 스스로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회는 과거 지향적이지만, 회개는 미래 지향적이며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새 세계를 기대하게 합니다.
후회하는 사람의 마음은 우울하고 어둡지만, 회개하는 사람은 하늘로부터 온 용서로 기쁨을 누립니다. 실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라도 주님 앞에 회개하면서 돌아오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사랑은 언제나 옳다/ 김지철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그리스도인의 섬김
 
성령님께서는 연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것 즉 부흥시키는 일도 주도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신자들 개개인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바울은 교회의 형상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하나이지만 팔과 다리와 많은 내부 장기들 등 수많은 지체가 있어서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들은 각기 다른 은사를 수여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과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들을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 동일한 선물이 즉, 성령님의 임재가 교회의 연합을 가져오며, 반면에 각기 다른 은사는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며, 교회에 다양성을 가져옵니다. 성령님의 은사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질문이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째, 은사란 무엇인가? 성약 성경에 보면 은사를 언급하는 목록이 모두 네 곳입니다. 그 목록들을 합해 보면 약 21개의 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모두 제각각이라서, 은사를 낱낱이 열거했다기보다는 선별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아마도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성령님이 주신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일부 은사는 치유와 방언 같은 초자연적인 반면에 그 밖의 것들은 다스리는 은사나 구제, 긍휼을 베푸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합니다. 많은 은사가 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데, 이런 능력들은 오늘날 더욱 보강되고 기독교화되었습니다. 둘째, 은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네 개의 목로깅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사실은, 은사가 공익을 위해 사용되도록 주어졌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 교회를 부흥 발전시켜서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은사 중에서 좀 더 중요한 은사는 어는 것인가?
은사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진 만큼, 우리는 거기에 맞게 은사의 등급을 정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판단 기준으로 볼 때, 저는 무엇보다 가르치는 은사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영양분으로서 진리 이상의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모든 지체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은사는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은사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은사를 평가절하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은사를 질투해서는 안 될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은사를 멸시한다거나 자신의 은사를 자랑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따라 하는 기도

인생이 바뀌는 일곱 가지 기도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 바로 저임을 믿습니다. 제 모습이 어떠하든 저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기에 무엇을 하든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저도 저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에 저의 모든 과거가 깨끗하게 지워졌음을 믿습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믿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매일매일 좋은 일이 가득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은 저를 좋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왕,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제 저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에 무엇을 하든 잘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젝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제 삶에 가득합니다.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을 바꿔가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추천 찬양

 

날마다 감사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
 
우리의 심장은 하루에 자그마치 10만 3천 번 이상을 뜁니다. 몸속의 혈액은 놀랍게도 하루에 약 2억 7천만 km를 달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에 무려 평균 2만 3천 번의 숨을 쉽니다. 우리가 무슨 수고를 해서 심장이 그렇게 많이 뛰어주고 내가 달리라고 해서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아무런 수고를 안 해도 우리의 폐는 그렇게 여러 번 호흡을 해 줍니다. 이 모든 일에 약간의 차질만 생겨도 우리의 생명에는 금방 이상이 오는데 이렇든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생각조차 안 해도 그처럼 여러 번 심장이 뛰어 주고 폐가 호흡을 해 주니
정말 우리의 생명을 지으시고 지탱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이뿐인가요? 우리는 하루에 두뇌 세포를 자그마치 700만 개나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