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신앙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당연히 구원도 받지 못합니다. 그날이 오면 주님은 진정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십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교회에 남게 됩니다. 그렇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버림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가 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때가 옵니다. 그 시기에 모든 것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왕이신 주님과 친밀해질 수는 없고 생명이 완전하게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도 않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두아디라교회에 보내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에 큰 환난이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박해를 받는 시기가 옵니다. 그때가 바로 환난의 날입니다. 밧모 섬의 메시지는 마지막 환난의 날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메시지가 "지금 여기"에서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악한 영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의 날에는 온갖 폭압과 박해와 저항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신실한 증인들이 있는 곳마다 악한 세력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늘 반발을 초래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스스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평탄한 삶을 살아갈 때는 참된 신앙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항과 반대에 부딪힐 때, 즉 비난과 외면과 박해와 고난에 처할 때 드러나는 믿음이 진짜 신앙이니다. 이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합니다. 신앙의 정의를 참고하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는 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의는 주로 신앙의 내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신앙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은 겉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주변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인 동시에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진실합니다. 비난과 조롱과 박해가 있어도 넘어지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성도가 되는 것, 예컨대 세례 문답을 하고,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예배에 출석하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결정적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시험"입니다. 온갖 핍박과 비난과 폭력 앞에서도 견뎌낼 수 있느냐입니다. "불의 시험"은 믿음의 진실성을 드러내게 합니다. 시험의 대상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 진가를 드러냅니다. 주님이 오실 때 모든 사람이 불의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아니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급분이 계신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주님을 향한 충성, 마음의 정결함, 삶의 거룩함,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일관성, 이웃을 향한 사랑과 인내를 말합니다. 이 사랑하는 마음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찾으십니다. 요한에게 밧모 섬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님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요한도 예수님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과 요한처럼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가슴이 아픈 사람은 골방으로 가서 시편 기자의 기도 139편을 낭독하면 어떨까요?
최근에 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신앙인에게서 어떤 일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회사의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 사장은 직원이 수천 명이나 되는 큰 사업체를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노사분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을 때 같은 지역에 살던 두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내가 사장 이야기를 꺼내자, 두 사람은 마치 짠 듯이 똑같이 말했습니다. "아,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존경해요!"
그 사장의 아들도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기차를 탔습니다. 아버지는 잠깐 볼일이 있어 앞쪽 다른 칸으로 갔는데, 아버지가 나가자 저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아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하고 술도 어느 정도 취해 있던 그가 이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방금 나가신 분이 **회사 사장님 맞죠?" "네, 맞는데요." 그러자 그 남자는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아, 저런 분이 세상에 많아지면, 나 같은 사람은 줄어들 텐데.." 남자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아들은 그 남자의 말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도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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