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영광

마음 아파하시는 주님

예림의집 2023. 1. 19. 21:28

마음 아파하시는 주님

 

지금까지 우리는 주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신 일곱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각 교회마다 칭찬받을 만큼 잘한 일도 있고 심한 꾸중을 들을 만큼 잘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말씀을 지키는 신실한 무리도 있었습니다. 특히 주님의 빛을 전할 만한 자격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호롱불 유리 안에 연기가 자욱하거나 거미줄이 어지럽게 쳐져 있으면 불빛을 비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악하고 나쁜 것은 재빠르게 전염되기 일쑤입니다. 연기는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거미줄은 점점 더 두꺼워집니다.

일곱 교회 중 두 교회는 극한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정결함을 유지했습니다. 또 다른 두 교회는 부도덕과 우상 숭배와 음행을 허용했습니다. 나머지 세 교회는 겉으로는 정통을 지키는 듯했으나 예수님께 무관심하거나 미지근하거나 죽어 있었습니다. 사실 무관심과 미지근함과 죽음은 같은 말입니다. 다섯 교회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에스겔의 동료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밀려오는 죄악의 조류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주님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촛대에 지나지 않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교회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연기가 자욱해 빛이 제대로 비치지 못합니다. 성령님은 마음이 아프지만 교회 안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다섯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요한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1세기 초대 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복음은 온 세상에 퍼져가고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 영광의 빛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 안에는 초대 교회보다도 연기가 더 자욱합니다. 이른바 기독교 국가에 사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은 그다지 실제적인 또는 현실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비기독교 국가의 도시인 상하이나 도쿄, 캘커타가 더 의미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서울도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촛대가 가까이 있어도 복음의 빛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교회는 밧모 섬에서 들려주시던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듯합니다. 단 극소수의 사람들만 믿음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ㅇ베소서, 사데, 두아디라교회가 하던 방식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스겔 8장과 9장입니다. 그발 강 근처 도시에 찾아온 천사는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천사는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여줬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눈으로 예루살렘을 바라보니, 이방의 우상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세워져 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앞에 절을 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흉악하고 역겨운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환상 속에서 에스겔은 담을 허물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밀의 방 안에는 사방에 온갖 벌레와 뱀과 불결한 짐승과 우상이 그러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장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들의 마음속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지도자들의 마음은 시궁창에나 있을 법한 불결한 벌레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것이 온 세상에 빛을 전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이방 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온갖 추잡한 행위들을 일삼았습니다. 남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등을 지고 태양을 향해 절을 했습니다.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 민족의 음란과 폭력, 불의와 억압을 상징합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닥칠 운명은 재앙과 멸망 밖에 없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환상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모습과 일곱 교회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누구도 교회를 향해 비난을 퍼붓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할 뿐이었습니다. 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주신 말씀은 당시의 교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교회를 향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변화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다면 복음의 빛을 전하는 사명은 박탈당하고 말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특권과 기회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 2장 12-16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직접 교회를 원수로 여기며 맞서 싸우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큰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요한계시록 2:22-23). 주님이 도둑같이 와서 심판하십니다(요한계시록 3:3). 역겨워서 내뱉어 버리십니다(요한계시록 3:16). 하지만 주님의 분모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내오 사랑이 담긴 가슴 절절한 호소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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