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라고 부르시는 신호
최근 실제로 운동할 생각은 없이 운동복만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트렌드는 "애슬레저(athleisure)"라고 하는 새로운 옷의 범주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겠은 "athletics(운동 경기)"와 "leisure(여가)"의 합성어입니다. 현재 애슬레저 시장 규모는 무려 700억 달러, 한화로 86조 4,150억 원이며 계속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고 운동복을 입고 싶어 하지만 운동은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요가복 판매량은 실제 요가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무려 100배 이상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입기 편하기 때문에 이런 옷을 좋아하지만 운동은 불편하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그리고 운동복을 입으면 실제 운동을 하지 않고도 무언가 운동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이와 같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우리는 "나는 이 상황 혹은 이 사람을 불쌍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긍휼함이 잇는 사람이다."라는 위험한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밤늦게 텔레비전을 보는데 <국경 없는 의사회>의 공익 광고가 나온다. 이 이미지를 보노라니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찢어진다. 저녁 뉴스를 보니 피부색 때문에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화가 난다. 영화에서 암으로 죽어 가는 한 엄마가 자식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등의 착각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SNS에서 특정한 사회적 운동에 지지를 표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돈을 기부하거나 자신의 시간을 내놓을 가능성이 더 적다고 합니다. 그들은 불쌍하다는 기분을 느끼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불쌍하다 느껴지면 긍휼이 있는 사람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긍휼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인식 혹은 동정"입니다. 긍휼은 명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긍휼을 동사로 다시 정이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래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긍휼함을 느낀다. 그래서 행동한다!"입니다. 진정한 긍휼은 단순히 가슴이 아픈 차원을 넘어 근육을 움직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드는 것은 하나님이 행동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긍휼 한 마음이 있는지는 느낌보다
"행동"으로 판가름 납니다. 진정한 긍휼의 증거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한 번에 한 사람"에 관한 간증들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하나님의 신호를 받으셨다면, 그래서 어떻게 행할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침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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