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사진 기자 케빈 카터의 생각이었습니다. 힘든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작은 노력 따위는 무의미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그 순간 세상에 가득한 고통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을 잃은 과부가 그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과부를 도와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며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한 번에 한 사람이라는 태도로 사는 사람은 자기 앞에 있는 바로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뭘 해 봐야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는 권세를 지니셨고 이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게 그런 힘이 있다면 나도 무언가를 할 거야. 내게 재벌만큼 돈이 있거나 스타만큼 영향력이 있거나 대통령만큼 힘이 있다면 무언가를 할 거야.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우리 힘으로 무언가를 해 봐야 작은 바가지 하나로 거대한 바닷물을 퍼내는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것을 "아프카니스탄화"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머나먼 오지에 있는 극도로 혹독한 환경에 가서 대규모 구호 사역을 벌여야만 사람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내가 종종 흥얼거리는 찬양이 한곡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다니던 교회에서 배웠던 찬양입니다. 일명 "손가락 찬양"입니다. 손가락으로 가사에 나오는 숫자를 표시하며 부르던 찬양, 성경 요한복음 3장 1절에 곡조를 붙인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주셨는데 우리는 이렇게 변명만 하고 있습니다!
'ε♡з예림의집으로ε♡з > 단장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0) | 2023.01.10 |
---|---|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다 (0) | 2023.01.09 |
방관자 효과 (0) | 2023.01.05 |
긍휼의 렌즈로 볼 때② (0) | 2023.01.03 |
긍휼의 렌즈로 볼 때① (0) | 202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