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와 우매자의 다른 선택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장 1-14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전도자는 지혜자와 우매자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1절에서 "이름"과 "기름"이 순서대로 나한이 쓰인 것은 명예(이름)가 물질(기름) 보다 더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고, 우매자의 노래보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낫습니다. 탐욕과 뇌물이 지혜자를 망하게 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십니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1-10절).
삶에는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1절,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라고 진술합니다 지혜자는 "좋은 이름" 곧 하나님 앞에서 얻는 "좋은 평판"을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는 그에 맞는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땅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열정으로 재물을 쌓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음을 믿는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이름, 즉 성도로서의 명예와 품위를 선택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며,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성도의 삶은 온전한 품위를 보이신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출생"보다 부조리한 세상을 떠나 안식에 들어가는 "죽음"을 더 좋은 것으로 여깁니다. 또한 전도자는 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라고 합니다. 지혜자는 죽음을 보며 "지금의 삶"을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8-9절을 통해 우매자의 특징을 "조급함과 분노"로 규정하고, 일의 시작보다 끝이 더 낫다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11-14절).
일의 시작은 열정으로 가능하지만, 일의 끝은 그 끝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다림이 요구됩니다. 성도는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 죽는 사람이 궁극적 지혜와 생명을 얻는 나라입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그늘은 생명을 보호해 줍니다. 전도자는 "그늘"이란 이미지를 사용해 지혜와 돈을 비교합니다. 12절, 사람이 "돈의 그늘"에 있으면 가난에서만 벗어나지만, "지혜의 그늘"에 있으면 삶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기에 지혜가 돈보다 유익합니다.
그럼에도 13절,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 곧 결정하신 일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14절,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번갈아 주심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형통할 때 기뻐하고, 곤고할 때 자기의 삶을 성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데오"의 정신입니다.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우리가 포기할 부분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곤고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떠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곤고를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깊이 묵상합시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형통한 날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겸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인생의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평생의 인도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주님만을 높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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